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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일기

▲ * 아동문학가 김여울씨는 1983년 동아일보신춘문예 공모에서 당선했다. 동화집'눈새와 난쟁이'등 30여권이 있다.
산골의 겨울은 유난히도 길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산골마을 한 구석에 오두막 하나 짓고 닻을 내린 지 세 해째 난다. 닻을 내리던 당시의 생각은, 이제부터 바깥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일체 관심 갖지 않기였다. 현대판 무슨 도사 따위가 되겠다는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살아온 날보다도 장차 살날이 짧은 삶의 등잔불을 조용하고 아늑하게 바라보고 싶다는 나름대로의 생각에서였다.

 

산골마을에 터를 잡고 나서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이 있다. 농사를 짓는 일이다. 농사를 짓기 위해선 밭이나 논이 있어야 했다. 마침 대처로 나가게 된 원주민이 있어 그것을 사들였다. 너마지기 남짓 되는 밭이었다.

 

밭을 샀다는 소문을 듣고 마을 사람들이 걱정을 앞세웠다. 농사가 장난인줄 아느냐고, 여태껏 애들 가르치는 일만 해온 사람이 중노동이나 다름없는 농사일을 어찌 감당하려고 그렇게 큰 밭을 덥석 사들였느냐는 거였다. 심심풀이 삼아 텃밭이나 가꾼다면 모를까.

 

마을 사람들의 말에 내심 걱정이 되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남 일에 웬 참견을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다. 뿌리고 심는 일이 무에 그리 힘든 일이라고 감 놔라 배 놔라 하는지 모르겠다고 혼자 속으로 투덜거렸다.

 

첫해 농사, 남원 장수 장날이면 중뿔나게 나다니며 길가에 그득그득 내놓고 파는 이름도 낯선 작물 모종들을 사다가 밭에 꽂았다. 덕분에 너마지기의 밭은 한 곳도 빈틈이 없이 채워졌다. 비오는 날을 제하고 날마다 밭에 나가 작물들을 둘러보며 무럭무럭 쑥쑥 자라주기를 간절히 고대했다.

 

그 밭을 근처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먼 산 바라기 하듯 둘러보며 내던지 듯 한 마디씩 했다. 뭘, 요러크럼 골고루 심었당가잉? 콩이면 콩, 고추면 고추, 요런 것들을 심어야제 수확이 많이 나는 것인디. 그래야 몸도 덜 고단한 벱인디……. 그러거나 말거나 열심히 밭의 작물들을 돌아보며 수확할 날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결과는 도저히 농사를 지었다고 내놓고 자랑할 만한 것이 없었다. 뭔가 하나쯤은 툭 불거진 수확거리가 있어줘야 했건만 그렇지를 못했다. 수확물의 대부분이 벌레가 먹지 않으면 쭈글탱이가 태반이었다. 귀촌 첫해 농사 이야기다.

 

엊그제 입춘이 다녀갔다.

 

지난겨울 모질다 싶을 정도로 참 길고 추웠다. 요러크럼 추운 삼동 날씨는 세상 구경을 하러나온 이래 첨이라고 동네 어른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내던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눈도 엄청나게 쏟아져 내렸다. 덕분에 눈 치우는 가래와 댑싸리비를 손에 들고 살다시피 했다. 찾아올 사람은 없어도 찾아 나설 곳은 있기에 무릎이 묻히게 쌓인 눈을 필히 치워야 했다. 오두막에서 마을회관까지 이어진 길을 거침없이 오가기 위해서였다.

 

산골 마을회관은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하는 곳이다. 보고 듣는 것이 별로 없으니 어제 했던 이바구 오늘 또 하고 내일 해도 무방할 이바구 오늘 앞당겨 쏟아놔야 성깔이 풀리는 곳이 바로 마을회관이다. 이바구 중에는 다가올 농사 거리가 자연 한 몫을 하게 마련이다.

 

이태째인 작년 농사는 첫해와는 달리 평년작은 되었다. 영 글러먹은 첫해 농사일을 교훈 삼아 마을회관에서 귀동냥을 한 농사 이바구가 아주 유효했다.

 

어서 봄이 왔으면 좋겠다. 금년 농사는 더 알차고 멋들어지게 지어봐야겠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손끝이 간질거려 못 견디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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