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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엔 홀로 술을 마시자

▲ * 수필가 최화경씨는 2003년 '좋은문학'으로 등단. 수필집'음악 없이 춤추기' '달을 마시다'가 있다.
작가, 이문열이 어느 인터뷰에서 우울증 예방엔 술이 묘약이라고 말했다. 이문열은 술로도 유명하다. 그것도 혼자 술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터뷰어가 혼자 술 마시는 비율을 묻자 100번에 97번은 혼자 마신다고 했다. 바쁜 술친구 불러내기가 미안해서 술이 먹고 싶으면 혼자 술집에 가거나 집에서 마시다가 습관이 됐다고 한다. 이 대목에선 왠지 김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누구라도 그랬겠지만 내 젊은 날의 우상이기도 했다. 한때 위인이자 우상이었던 그가 혼자서 술 마시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도무지 쓸쓸하고 싱거워서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어떤 이유로든 혼자 술 마시는 모습은 유쾌하고 근사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독작은 뭔가에 상처받아 괴롭거나, 대작할 사람이 없는, 고단하고 우울한 사람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로썬 이 또한 할 만한 생각 아니겠는가? 요즘 젊은이들은 혼자 술을 따라 마시는 사람을 보면 3년 동안 애인이 안 생긴다고 질색을 하며 술병을 빼앗는다.

 

자작과 독작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째든 혼자 술 마시는 모습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 건 꼭 내 생각만은 아닌 것 같다. 세상을 원망하며 쓰디쓴 모습으로 혼자 술을 마시는 모습에 너무 익숙한 탓일까. 그러고 보니 기쁜 일 앞에서 혼자 기뻐하며 술 마시는 모습은 별로 본적이 없는듯하다.

 

꽃 사이에 앉아

 

혼자 마시자니

 

달이 찾아와

 

그림자까지 셋이 됐다.

 

달도 그림자도

 

술이야 못 마셔도

 

그들 더불어 이 봄밤을 즐기리.

 

내가 노래하면 달도 하늘을 서성거리고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춘다.

 

이리 함께 놀다가

 

취하면 서로 헤어진다.

 

담담한 우리의 우정.

 

이것은 이백의 '독작'이란 시다.

 

이 시를 읽은 어느 날 독작에 대한 촌스럽고 독한 나의 편견은 마땅히 버려져야 했다. 사람은 물론 온 우주 만물을 감화시키는 그윽한 도를 풍류라고 한다. 꽃과 달을 벗 삼아 혼자 술을 마시는 이백의 풍류가 가히 신선의 경지다. 혼자 술 마시는 일은 막막하고 외로워 보여 궁상맞은 모습으로까지 격하시켰던 내 생각의 어리석음이라니. 하기야 소주 석 잔을 채 못 마시고 울렁증에 시달리는 내 못난 주량을 생각하면 독작이나 자작의 격을 운운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른다.

 

어설프지만 내게도 독작의 기억은 있다. 살다 보면 술이 꼭 필요한 날이 있긴 있었다. 노엽고 쓰라려 우울함이 극에 달 할 때 어디든 기대어 위안 받고 싶은 날 말이다. 그런 날의 내 독작(?)은 침대위에서 아메리칸 식으로 마시는 맥주가 고작이지만 주체할 수 없는 취기에도 별 고통 없이 곧 바로 잠들 수 있어 이것도 좋았었다.

 

꽃이 지천인 이 봄밤, 꽃 밑에 앉아 흥타령이라도 부르면서 혼자 술을 마시고 싶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술잔에 꽃잎이 떨어져도 좋고 눈물이 떨어져도 기꺼울 것 같다. 술을 모든 나쁜 일의 화근처럼 여기는 사람과 술을 몰라 술에 휘둘리는 멋없는 사람이 어찌 그윽한 술의 정취를 알겠는가. 진동하는 꽃 내로 진저리를 치며 전전반측 잠 못 이루는 봄밤, 어떡하든 혼자 술을 마셔 볼 일이다. 그것은 독작이 주는 몽환의 자유가 얼마나 매혹인가 알아버리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꽃잎 한 장 떨어져도/ 봄볕이 줄거늘/ 수만 꽃잎 흩날리니/ 이 슬픔 어이 견디리.

 

가는 봄 탄식하는 두보의 시구 가 아니라도 봄밤은 아쉽고 허망하다. 환장 할 것 같은 마음에 엉망으로 흐트러져도 좋으니 그대들이여, 봄밤엔 홀로 술을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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