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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껏 울어 보내드리시게

최정선

 

며칠 전 문단의 모임에 다녀오는 길에 김 시인에게, "라대곤 선생님 건강이 어떠시냐"고 물어보았다. "문단에서 미리 조시(弔詩)를 준비하라는 전화를 받고, 펑펑 울었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 그 분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 벌써 두어 해도 더 지났지 싶다. 그래도 가끔씩 문우들께서 하시는 안부의 말씀을 곁 들으며, '잘 견디고 계시는구나.' 안심이 되곤 하였다. 그러다가 작년엔가 두 번이나 큰 상을 받으시는 자리에 나가 뵙고 인사를 드렸었다.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예의 활달하고 형형하신 기상은 여전해 보이셨다.

 

나는 가끔 문단에 모임이 있어 어른을 뵙게 될 때나 인사를 드리는 것이 모두였지만 들음들음 김 시인의 이야기를 듣자하면, 그녀가 문단의 후배로서 어른을 받들고 모시는 모습이 곁에서 보고 듣기에 참으로 대견하고 아름답게 생각되었던 터이다. 또한 어른께서도 김 시인을 문단과 동향의 후배로서 그녀의 재주를 아끼고 격려하는 마음이 남다른 듯해서 듣기에 여간 좋은 게 아니었다. 그러하니, 이제 어른의 건강이 회복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보내드릴 준비를 서두르라 하는 때에야 그 안타깝고 눈물겨운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세상에서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처럼 어렵고 슬픈 일이 또 있을까. 말로는 다 할 수 없으니, 울음을 울어 대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에게,

 

"맘껏 울어 보내드리시게"

 

그 밖에 더 무슨 할 말이 없었다. 떠나는 사람을 위하여 슬픔을 대신할 다른 방도가 없으니, 맘껏 울어 보내야 한다. 사실인즉, 떠나는 사람은 눈만 감으면 그만, 세상에 대한 미련도 연민도 한 순간에 다 버리고 구름 따라 바람 따라 홀홀히 떠나가리라. 하지만 사람을 보내고 뒤에 살아남은 자들은 말이 아니다. 떠날 때를 향하여 줄달음치고 있는 사람이 지금 어디만큼 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 이냥저냥 지내다가 덜컥 숨을 거둘 때. 후회와 탄식으로 그를 붙들고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살아서 같이한 시간들, 그것이 기쁨이건 아픔이건 모두 살아남은 자들이 감당해야할 몫이다. 그것은 어느 것이나 무겁고도 무겁고 슬프고도 슬픈 짐이다.

 

때 없이 잠 못 이루며, 꽃피는 봄날이거나, 눈 내리는 겨울이거나, 음식을 먹을 때나, 떠들썩하게 즐거운 사람들 사이에서도, 문득 창문을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소리에도, 시간이 지나 지금쯤 잊을 만한 때가 되었다고 마음을 달래며 돌아서보아도…. 눈물은 철없이, 불현듯 알 수 없는 무엇에 닿아서 어찌할 바를 모르게 쏟아진다. 하지만, 느꺼운 마음에 모두 눈물이 감응하는 것은 아니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마음이 눈물을 따라서만 비밀스런 얼굴을 내보이니, 어쩌면 눈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마음의 모습이자 소통의 길인지도 모른다. 눈물은 참 신통하기도 하고 어리석고 별스럽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니 당신도 나도, 또 다른 누구누구도 떠나는 사람은 맘껏 울어 보내야 한다. 눈물을 참는다면 이후로 가슴에 쌓이는 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방도가 없다. 옛날 우리 어른들께서 곡비哭婢를 사서 대신 울게 한 것도 나무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상주가 혼자서 사나흘을, 많게는 몇날 며칠을 울음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힘에 겨웠으리라. 내용이 모자라는 때에는 형식을 갖추어 채울 수도 있지 않은가.

 

다시 김 시인에게 문자를 보내었다.

 

"맘껏 울어 보내드리시게."

 

그녀로부터 "네"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녀는 이미 많이 울었을 것이다. 한동안은 그녀도 눈물을 감당할 다른 빌미를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글을 마칠 무렵, 라대곤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셨으며, 발인은 사흘 뒤라는 문단의 통문이 왔다. 나도 한 동안 눈물이 쏟아졌다. 어른이 보내준 수필집을 읽으며 가슴 뜨거웠던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시인 겸 수필가인 최정선씨는 '월간 에세이'와'월간 한국시'로 등단. 수필집'지나온 시간은 모두 선하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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