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의 수려함이 온 산을 수놓고 있었다. 비슷하지만 제각각 다른 푸른빛, 그 빛에 지쳐 가슴에 우러나는 노래를 절로 흥얼거리고 있었다.
'봄날은 간다.'
이미 고전이 돼버린 우리가요, 가수 백설희가 불렀던 노래다. 한국의 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중가요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애절한 노래다. 한 시대를 살아오면서 노래 한곡쯤 좋아하게 됨이 어찌 가수 때문이랴. 이 노래의 매력은 분명 그 제목에 있다. 누구나 청춘의 한때를 스쳐 온 '인생의 봄'을 떠올리기 때문일 것이다.
이 노래를 나는 누구보다도 잘 부른다. 내 인생의 지나간 봄을 생각하며 스스로 도취되어 부른다는 말이 차라리 옳다. 정말 이 노래를 잘 부르는 분들 많다. 원조인 진짜 가수 백설희씨는 말할 것도 없겠지만 내 가까운 이웃, 돌아온 용팔이도, 친절한 금자씨도 이 노래를 잘 부를 것이다. 가창순위를 매길 수 있는 것도 아닌 이상, 내가 잘 부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내 인생의 봄'이 허무하다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친구가 이 노래를 보내왔다. 편리한 세상이라 이 메일에 보내온 노래였다. 한영애가 부르는 것이 싫지 않았다. 그러나 가슴이 아렸다. 메일을 보낸 사람은 암 투병 중이었다. 얼마 있지 않으면 가고 말 자신의 걸음이었을까, 아니면 이미 가버린 봄날에 대한 회한이었을까.
얼마 후 정말 친구의 봄날은 갔다. 그가 가버린 뒤의 쓸쓸함, 그 빈 자리가 허무해 슬픈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라는 노랫말 때문이었는지 몰랐다. 열아홉의 몇 갑절을 지낸 나이, 그 삶의 길이만큼 얽혀있던 희망도 후회도 함께 가지고 가버린 친구가 마지막 내게 보낸 노래였다. 친구나 나나 함께 지닐 수 있었을 그 처연함이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데 세상의 빛은 저리 푸르다. 그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전화기에 신호가 떴다. 시인 정재영이 보낸 문자다.
'눈 빠지게 시린 산하를 두고 이 마음이 타지 못한다면 사랑이 아닐 것 같습니다.'
마치 내 마음을 읽은 듯한 그의 문장이었다. 어찌 그는 이 시린 산하의 푸른빛을 사랑이라고 표현했을까. 하긴 이세상은 사랑이 있어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불타는 사랑이 아주 먼 곳에 있으리란 체념은 하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빛깔은 저렇게 아름답다. 그 복판에 내가, 우리가 서 있다. 청춘은 봄이었지만 세월의 영락을 따라가는 것은 정해진 이치다. 우리 모두에게 봄은 가고 있다. 봄만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고 있는 길이요, 인생이 가는 길일뿐이다. 인생의 봄은 지났어도 계절의 봄은 다시 돌아온다. 봄은 가고 다시 오는 것.
푸른 빛 휘감기는 산의 품에서 처연한 마음을 씻는다. 이 봄이 간다.
봄날이 간다.
* 수필가 선산곡씨는 1994년 '문예연구'로 등단. 수필집'LA쑥대머리''끽주만필''속아도 꿈 속여도 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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