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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자전거

▲ 정곤

인간의 삶은 참 이상한 것이다. 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 생선처럼 냉장고 속에 보관하였다가 꺼내어도 금방 싱싱한 생선이기를 바라지 케케묵어 냄새나는 청국장 같은 삶을 좋아하지 않는다. 생선은 적당히 말려가지고 구워서 한 입에 넣고 먹을 수 있어야 제 맛이듯, 삶 또한 그렇게 제대로 손을 보아가며 살기를 기대한다.

 

오래된 자전거 한 대를 가지고 있다. 가까운 거리는 승용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이 좋아서다. 자전거는 주로 퇴근 후 운동할 때 사용한다. 홀쭉하고 날렵한 안장과 기름칠한 페달이 언제이고 달릴 준비를 하고서. 자전거는 내가 바쁘거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내 다리가 되어주기도 하고 발이 되어 준다. 시장에 가서 무와 배추를 사올 때도 그랬다. 어떤 땐 짐칸에서 생선냄새가 역겹게 나는데도 코를 옆으로 돌리거나 싫어하지 않고 말없이 나의 분신이 되어 내 삶처럼 군소리를 하지 않고 늘 함께한다.

 

어느 날 점심 약속이 있어 자전거를 음식점 마당 귀퉁이에 세워 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 이야기를 듣다보니 시간이 많이 지났다. 밖을 나와 주위를 살펴보니 허전했다. 자전거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나는 친구와 함께 주변을 샅샅이 뒤지며 찾기 시작했다. 음식점 주변을 돌아다니고, 주변 아파트를 기웃거렸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옆에 누워 잠자던 집사람이 왜 잠을 자지 않고 뒤척이느냐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아무튼 오늘은 참 가슴 벌떡거리는 하루였다.

 

물건과의 인연이란 쉽게 잊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수년 동안 내 분신처럼 다리가 되어주고 발이 되어 주었던 그와의 인연을 생각하며, 인간이란 정이 들면 오래가는 거. 물건 또한 내 손때가 묻고 지문이 묻어있는 인연을 생각하니 더욱 정이 느껴졌다. 그와의 인연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수년 동안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고갯길을 달린 적도 있었고, 어떤 땐 돌멩이와 부딪쳐 개울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기어 나오던 생각도 났다.

 

그러던 어느 날, 천변에서 중고 자전거 한 대가 물속에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전거는 안장과 핸들이 뽑혀 휑하게 비어 머리가 없는 흉악한 몰골이었다. 타이어 한쪽은 찢어져 볼품없고 바람이 빠져있어도 내 것임이 틀림없었다. 인간도 타이어처럼 바람이 빠져 있으면 천시를 받는다. 물건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때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버리고 갈까. 몇 번 생각했다. 아니다. 그래도 나와 정이 들었던 세월을 생각하여 버리기가 쉽지 않았다. 냇가에 앉아 병든 몸을 씻듯 깨끗이 닦아 어깨에 메고 가서 수리를 맡겼다. 수리하는 곳에서는 이젠 그만 버리고 새것으로 바꾸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새로운 부속을 넣고 기름칠하여 안장을 끼워 넣으니 반듯한 모습으로 변했다. 나는 안장을 툭툭 때리며 인사를 했다. 정말 겁나게 멋지고 좋아보였다. 오래간만에 천변을 신나게 달렸다. 그날 밤 깊은 잠이 들었다.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오래 된 인연을 쉽게 버리는 사람이 더러 있다. 그렇지만 사람과 물건과의 인연, 그 인연은 인간의 삶처럼 정으로 연결되어 있다. 한번 인연을 맺게 되면 소중하고 오래간다는 것을.

 

※수필가 정곤씨는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 현재 '덕진문학회'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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