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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타기

   
▲ 이해진
 

봄볕이 좋은 날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왔나보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하던 아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이의 발걸음이 그네로 향했다. 엄마가 그네를 가만가만 밀어주니 아이는 ‘까르르 까르르’ 웃기 시작했다.

 

아이의 작은 엉덩이가 그네에서 빠질까 염려스러워 엄마의 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아이를 태우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반복하는 그네를 물끄러미 바라보니 얼마 전에 읽었던 신문기사가 생각났다.

 

세 모녀가 반 지하방에서 동반자살을 했다는 뉴스다.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보니 생활고를 비관한 그들의 삶이 여실히 드러났다.

 

집은 비좁고 세간들은 난잡했다.

 

하얀 봉투 하나를 남겼는데 신문사진은 그것을 클로즈업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이다.

 

집주인에게 죄송하다는 인사도 남겼다.

 

처절한 가난 때문에 극한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던 그들이 마음에 품은 것은 미안함이었다.

 

고단하게 살던 그들이 차라리 누군가를 향해 분노했다면 어찌 그런 선택을 했느냐고 안타까움이라도 비추겠건만….

 

신문지면을 넘길 때마다 살기 힘들다는 사람이 없는 날이 있었던가.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하기에 아등바등하며 산다.

 

나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모습이 더 이상 어색하지도 않다.

 

내가 더 먹고, 더 편안히 누리려 한다.

 

누가 감히 남을 위해 양보하며 손해를 보려 할까.

 

포근한 봄볕을 고스란히 받으며 그네를 타듯 약간의 두려움과 함께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아가는 것은 그네를 타는 일이다.

 

어느새 올라탄 그네에서 동아줄을 단단히 잡고 색 고운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환한 웃음을 짓는다.

 

그네는 올라갔다가 곧 내려오지만, 멈추지 않고 푸른 하늘을 향해 끊임없이 날아오른다.

 

그네는 올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려올 때도 있다.

 

다시 올라갈 때는 앞서보다 더 높이 날아오르려고 무릎을 구부려서 힘껏 굴러줘야 한다.

 

눈을 질끈 감고 자꾸 도전해야 한다.

 

엄마 손을 잡고 나온 아이처럼 어린 시절에는 혼자서 그네를 탈 수 없다.

 

몸을 잡아주고 살살 밀어주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엄마나 언니, 때론 친구일 때도 있다.

 

점점 그네 타는 요령을 배우고 혼자서 탈 수 있어도 힘에 부친 순간에는 누군가가 그네를 밀어주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세 모녀에게는 그네를 밀어주는 이가 없었다.

 

왜 도와주거나 지켜봐주는 이가 없었을까.

 

살짝 힘을 실어주었더라면 그네 타기를 포기하지는 않았으리라.

 

주변에서 그네를 타고 있는 많은 이들을 돌아본다.

 

지쳐서 구를 힘이 없거나 오랫동안 그네타기를 멈춰서 다시 용기를 내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속도가 줄어서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 이들도 있을 테고, 급기야 그네를 멈추려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들 곁에서 약한 힘으로라도 밀어주고 싶다. 환호성을 지르며 응원을 해 주고 싶다.

 

비록 아이의 뒤에서 잡아주는 엄마처럼 온전한 희생을 보여줄 수는 없을지라도 허공의 바람을 가르며 신나게 그네타기를 하도록 함께하고 싶다.

 

△ 수필가 이해진씨는 〈대한문학〉으로 등단. 행촌수필문학회·늘푸른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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