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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셀프세요?

“한 잔에 천오백 원이세요.” “이 넥타이가 훨씬 잘 어울리세요.” “10분 후에 버스가 도착하세요, 손님.” “영화 상영시간은 세 시 오십 분이세요.” “화장실은 문밖으로 나가서 오른쪽에 있으세요.” 이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신종 대화체다. 말끝마다 꼬박꼬박 ‘~세요’다.

 

우리말에서 존대 표현을 만드는 ‘-세-’나 ‘-시-’는 사물에는 쓸 수가 없다. 사람에게만 쓰는 게 옳다. ‘이분이 제 할아버지세요.’는 옳지만 ‘제 아버지가 쓰시던 컴퓨터세요.’는 우리말법에 어긋난다. 앞서 보았던 것처럼 돈, 넥타이, 버스, 영화 상영시간, 화장실은 존대표현의 대상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하긴 “그렇게 먹으면 건강에 안 좋으세요.”라는 말도 들은 적 있다.

 

도대체 자꾸 왜들 그러는 걸까. 과거에 없던 이런 말법이 생겨난 까닭은 무엇일까. 요즘 젊은 친구들이 우리말에 대한 개념이 부족해서일까. 얼핏 그럴 것 같은데 사실은 그거, 우리 사회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사회적 관점에서 원인을 찾으면 몇 가지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경제적 양극화의 심화’, ‘청년실업의 증가’, ‘갑을 관계’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셋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부의 분배가 공정하지 않다 보니 사회 양극화는 날이 갈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다. 값싼 외부 노동력의 유입에 따라 물가 상승률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저임금 때문에 청년실업은 증가하고, 고용불안 심리의 작용으로 대부분의 ‘을’은 ‘갑’의 부당한 횡포에 맞설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앞서 보았던 것처럼 이 잘못된 ‘-세요’는 한마디로 ‘을’의 용어지 ‘갑’이 쓰는 말이 아니다. 어쩌다 말 한마디라도 삐끗 잘못했다가는 언제 어떻게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저 유명한 김수희의 노래 <애모> 의 가사처럼 ‘갑’인 그대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는 ‘을’의 처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회적 현상 중 하나인 것이다.

 

발길 닿는 도처에서 귀에 딱지가 붙도록 들었던 ‘-세요’를 눈으로까지 발견하다 보니 조목조목 떠오른 생각이다.

 

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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