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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호 교수, 문장의 발견] 화암사에 한번 가보라고

인간세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곁눈질 한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나는 그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세상한테 쫓기어 산속으로 도망가는 게 아니라/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계곡이 나오면 외나무다리가 되고/벼랑이 막아서면 허리를 낮추었습니다 (중략)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잘 늙은 절 한 채/그 절집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구름의 어깨를 치고 가는 불명산 능선 한 자락 같은 참회가/가슴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화암사 안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나는,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하였습니다//화암사, 내 사랑/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

완주군 운주면에 있는 화암사로 가는 길에 안도현 시인의 시 <화암사, 내 사랑> 앞에서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절을 두고 잘 늙었다고 함부로 입을 놀려도 혼나지 않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나라의 절치고 사실 잘 늙지 않은 절이 없으니 무슨 수로 절을 형용하겠는가. (중략) 잘 늙었다는 것은 비바람 속에 서로 비뚤어지지 않고 꼿꼿하다는 뜻이며, 그 스스로 역사이거나 문화의 일부로서 지금도 당당하게 늙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화암사가 그러하다. 어지간한 지도에는 그 존재를 드러내고 밝히기를 꺼리는, 그래서 나 혼자 가끔씩 펼쳐보고 싶은, 작지만 소중한 책 같은 절이다. 십여 년 전쯤에 우연히 누군가 내게 귓속말로 일러주었다. 화암사에 한번 가보라고, 숨어 있는 절이라고, 가보면 틀림없이 반하게 될 것이라고….’

그가 쓴 <잘 늙은 절, 화암사> 에서도 ‘소중한 책 같은 절’에 대한 곰삭은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듯했다. 깊어가는 가을, 한 번쯤은 화암사로 마음을 이끌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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