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주머니 말대로라면 이렇다. 더 먹고 싶은 반찬이 있으면 ‘이모!’든 ‘여기요!’든 ‘저기요!’든 주방에 대고 누군가를 불러야 한다. 아무 반응이 없으면 빈 접시를 들고 주방으로 가야 한다. 그게 번거롭거나 괜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남은 반찬이나 알뜰히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겠지,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손님’이….
‘~니가 있다는 것이 나를 존재하게 해 니가 있어 나는 살 수 있는 거야~’ 김종환이라는 가수가 오래전에 불렀던 <존재의 이유> 라는 노래의 일부다. 여기서 말하는 2인칭 ‘니’는 1차적으로 ‘사랑하는 그녀’일 터, 살아가는 동안 ‘나를 존재하게’ 하는 ‘니’가 어디 한둘일까. 존재의>
사랑에 빠진 이라면 당연히 이성인 ‘그’ 아니면 ‘그녀’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한테는 자식들이야말로 ‘존재의 이유’ 아닐까. 교사나 교수한테는 학생들이, 음식점 주인에게는 손님이 바로 ‘나를 존재하게’하는 ‘니’들이다. 정치인들한테 가장 확실하면서도 영구불변인 ‘니’는 국민일 것이고….
‘사랑’에 대한 하고많은 정의 중 하나가 ‘as you want’ 아닐까 싶다. 자식이 바라는 부모, 학생들이 요구하는 교사나 교수, 손님이 먹고 싶은 반찬을 미리 챙겨주는 주인, 굳이 촛불을 들지 않아도 국민들이 아파하는 곳을 알아서 어루만져줄 줄 아는 정치인이야말로 ‘고객 만족’의 진정한 실천자일 것이다. 어느 음식점 벽에 걸린 ‘손님이 짜다면 짜다!’를 보고 두서없이 떠오른 생각이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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