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세상을 밝히는 얼굴없는 천사

작년 12월 28일 오전 11시쯤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에 50대 남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주민센터 뒤 공원 나무 밑에 상자가 있으니 가져가시고 어려운 소년소녀 가장을 위해 써주세요.” 상자 안에는 지폐 다발과 돼지저금통이 담겨 있었다. 세어보니 무려 5천만 원이 넘었다. “소년소녀가장 여러분 힘든 한해였지만, 우리에게는 희망이라는 선물이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적힌 A4 용지도 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고 한다.

 

2000년부터 연말이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무려 17년째 이어져 온 일이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 써달라면서 거액을 내놓으면서도 그는 자신의 얼굴은커녕 이름조차 끝끝내 밝히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동안 그가 ‘몰래’ 가져다 놓은 금액을 합하면 무려 5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또 그 후원금 덕택에 4,000여 불우한 가정을 보살필 수 있었다고 한다. 전주 시민들이 언젠가부터 그를 ‘얼굴없는 천사’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2009년에 그가 상자 안에 남겼던 메모도 시민들은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대한민국 모든 어머님들이 그러셨듯이 저희 어머님께서도 안 쓰시고 아끼시며 모으신 돈이랍니다. 어머님의 유지를 받들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여졌으면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하늘에 계신 어머님께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그런 걸 보면 ‘천사’의 원조는 아무래도 그의 어머니였지 싶다.

 

노송동주민센터를 지나다가 작은 비석을 보았다. ‘당신은/어둠 속의 촛불처럼/세상을 밝고 아름답게/만드는 참사람입니다/사랑합니다’ 상투적인 문구여서 하나도 시 같지 않은데 그 어떤 시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풍편에 듣자니 시에서는 적잖은 예산을 들여서 ‘천사의 길’을 조성해서 관광객 유치에 나서고, 철없는 언론사 기자들은 또 그의 얼굴을 기어이 밝혀내고야 말겠다면서 ‘잠복근무’까지 선 적도 있는 모양인데, ‘천사’가 그걸 과연 바랄지는 의문이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익산정헌율·이재명의 각별한 인연 ‘눈길’

금융·증권차기 전북은행장에 박춘원 JB우리캐피탈 대표 단독 후보 지명

경찰해양경찰청장 직무대행에 남원 출신 장인식 치안정감

사건·사고완주서 천장 강판 작업 중이던 근로자 5m 아래 추락 숨져

정치일반대통령실 “캄보디아 내 한국인 스캠 피의자 107명 송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