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도적을 묶어 세는 단위 '5섯'

‘꾀까다롭다’라는 말이 있다. ‘까다롭다’보다 정도가 조금 더 심한 경우에 주로 쓴다. 우리말의 숫자와 단위를 나타내는 단어들도 정확하게 가려내기가 꾀까다롭다.

 

‘예닐곱’과 ‘대여섯’과 ‘여남은’에서 가장 큰 숫자는? 어느 예능 프로에 나왔던 문제 중 하나다. 정답은 열 하고도 조금 남는 수, ‘여남은’이다. <도전 골든벨> 에서는 혹시 이런 걸 묻지 않을까. 다음에서 말하는 숫자의 합은 얼마일까요? 고등어 두 손과 오징어 한 축…. 정답은 ‘24’다. ‘고등어 한 손’은 두 마리고, ‘오징어 한 축’은 스무 마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말 겨루기> 수준으로 난이도를 높여보자. 북어 두 쾌와 달걀 다섯 꾸러미와 청어 네 두름과 장작 한 강다리와 바늘 세 쌈 중에서 가장 큰 숫자는? ‘장작 한 강다리’다. ‘쾌’는 숫자로 20, ‘꾸러미’는 10, ‘두름’은 20, ‘강다리’는 100, ‘쌈’은 24여서 그렇다.

 

시골 식당에 걸린 ‘5섯명’이 정감 있으면서도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말에는 ‘강다리’나 ‘꾸러미’처럼 숫자 ‘5’를 묶음 단위로 쓰는 게 없을까. 있다. ‘도적’이다. 그러고 보니 도적을 묶어 말할 때는 ‘5섯’이 제격이겠다. 근거가 있다. 바로 ‘을사오적(乙巳五賊)’이다.

 

도적을 세는 단위로 숫자 ‘5’를 계승한 이가 김지하 시인이다. 1970년 5월, <사상계> 에 발표한 담시(譚詩) <오적(五賊)> 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시인은 당시 지도층의 부패상을 ‘을사오적’에 풍자적으로 빗대어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 일로 시인과 출판사 관계자들은 반공법 위반에 반국가단체 찬양고무동조죄로 엮여 감옥으로 끌려갔다. 이른바 ‘사상계 필화사건’이다.

 

시인이 말했던 다섯 도적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다. 5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는데도 달라진 게 별로 없어 보인다. 이런 건 어떨까. 해마다 우리 사회의 ‘오적’ 아니 ‘5섯’을 강다리나 꾸러미로 묶어서 발표하는 것이다. 그 또한 적잖이 꾀까다로운 일일까.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정치일반이 대통령, 새만금 전북도민에 ‘희망 고문’

익산정헌율·이재명의 각별한 인연 ‘눈길’

금융·증권차기 전북은행장에 박춘원 JB우리캐피탈 대표 단독 후보 지명

경찰해양경찰청장 직무대행에 남원 출신 장인식 치안정감

사건·사고완주서 천장 강판 작업 중이던 근로자 5m 아래 추락 숨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