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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격양가를 부르는 봄까치꽃

왕태삼
왕태삼

바야흐로 에메랄드빛 봄까치꽃이 온 산하에 피고 있다. 하얀 겨울을 지우는 푸른 별들의 향연이 보석처럼 빛난다. 얼음장 개울가에도 잔설의 밭둑에도 피더니, 대문 밖에도 올망졸망 아기들처럼 무더기로 몰려왔다. 푸른 은하수가 백주대낮에 가장 낮은 땅에서 지천으로 흐르고 있다. 이에 비해 매화는 게으른 미녀처럼 이제야 기지개를 켠다. 언제부턴가 봄의 전령사는 빙자옥질 고매한 매화가 아닌, 장삼이사 봄까치라 생각했다. 봄까치는 지조와 절개의 매화보다 단연 봄의 선구자들이다. 단지 뽐내지 않았을 뿐, 무관심 속에서 묵묵히 피고 지는 신비한 코발트빛 선남선녀들이다.

그들은 나에게 근면과 희망, 지혜와 순수, 겸양한 신화를 가르친다. 향기 대신 몸으로 보여주는 처절한 봄까치 - 새끼손가락만 한 키에 새끼손톱만 한 꽃을 보노라면 나는 절로 무릎을 꿇고 숙연해진다.

봄까치는 근면과 희망의 연주자다. 엄마보다 일찍 일어나 스스로 박수치며 노는 돌배기를 닮았다. 칭얼대지 않고 아침 햇살을 튕기며 옹알거리는 아기의 목소리는 지친 어른들을 눈 녹듯 풀어준다.

봄까치는 지혜로운 천사다. 농부의 발걸음이 들녘으로 나오기 전, 다른 풀들이 깨기 전, 미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마치 지금쯤 깊은 산 속에서 얼음을 이고 피어오를 노란 복수초 같다. 그러나 복수초는 외로이 멀리 살지만 봄까치는 들판, 개울가, 길가, 화단 등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 봄소식을 한 아름 직접 보듬고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사회복지사나 요양보호사처럼 작은 체온을 싣고 골목골목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봄까치는 겸양한 무리들이다. 늘 ‘상대를 배려하고 낮은 자세로 임하라’는 공자의 말씀〔려이하인慮以下人〕을 새긴다. 저렇게 궁벽지고 냉혹한 벌판에서도 봄의 불쏘시개로 들어가 세상의 배경으로 타오른다. 그들은 진정한 보석 같은 사람들이다. 결국 작은 꿈과 꿈들을 모아 푸른 언덕을 함께 쌓아간다.

봄까치는 벌들의 놀이공원이다. 벌들은 한 오라기 미인의 속눈썹만 한 봄까치의 꽃대에 올라 롤러코스터를 탄다. 마치 벼룩의 간을 빼먹듯 잔인해 보이지만 벌들은 아이들처럼 곡예 부리며 신나게 꿀을 딴다. 눈 깜짝할 새 꽃대는 활처럼 휘어져 내리고, 벌들은 화들짝 놀란다. 봄까치가 통째로 춤을 춘다. 벌들은 또 오르며 즐겁게 소스라친다. 나의 고개도 방아깨비처럼 절로 끄덕인다. 벌은 꿀도 먹고 놀이도 즐긴다. 이것은 자기의 수분 값을 지불하는 봄까치의 상도덕이 선사하는 자연의 놀이다. 자기보다 몇 배 덩치 큰 벌들을 부르는 봄까치 - 그들은 외유내강의 꽃이다.

이처럼 봄까치는 가장 작지만 가장 큰 고요한 평화를 구가한다. 그 화평한 세상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봄까치를 본받을 일이다. 풍요로운 음식을 싣고 가는 이 시대, 그 수레바퀴는 왜 삐걱거리며 절며 가는지? 과적은 아닌지? 수레바퀴는 짝짝인지? 즐거운 격양가는 왜 부르지 못하는지? 시대착오적 망령들이 수레바퀴의 핸들을 썩어버린 자기 방죽이나 이념의 투기장으로 꺾는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 들판에 달려 작지만 화평한 세상, 푸른 봄까치를 만나 심리치료라도 받아 볼 일이다. 무릎 꿇고 자세를 낮춰 태평성대를 귀담아 들어볼 일이다.

 

* 왕태삼 시인은 계간 <문학시대> 를 통해 등단했으며 전북문인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작촌예술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나의 등을 떠미는 사람들>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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