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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금평저수지 수변로

정석곤
정석곤

오늘은 결혼기념일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결혼식은 거의 휴일에 했다. 하지만 우리는 목요일에 결혼을 했었다. 그런데 결혼식 날과 요일이 몇 년마다 일치하는지는 모르지만, 올해는 마침 목요일이다. 그래서 산으로 갈까 바다로 갈까 망설이다가,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知者樂水)’란 고사성어가 생각나서 오늘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 물을 택했다.

정오가 넘어서야 ‘금평저수지’로 향했다. 가다가 중간에 맛집 ‘청원골’을 들러 검은콩과 검은깨로 만든 수제비를 겸상으로 받으니 오붓했던 옛 추억이 새롭다. 평소 저수지 곁을 차로 몇 번 지나가며 둘러보았으나 그냥 금산사 아래 저수지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요즘에야 TV 뉴스에서 ‘금평저수지’란 이름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이 김제시에서 시민을 비롯한 탐방객들의 여가문화와 휴식공간을 제공해 주기 위해 지정한 수변(水邊) 산책로라는 것도 알았다.

저수지에 도착하자마자 수변산책로에 새롭게 눈길이 멈춰졌다. 탐방객은 적었으나 그래도 가족, 친구, 연인, 신혼부터 나이 지긋한 부부 들이 저수지 수변산책로를 걷는 모습들이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보기 좋았다. 길섶에는 민들레가 즐비하게 피어 있었다. 노란, 하얀 꽃들이 오므라들고 꽃대는 둥그런 은빛 털모자를 쓰고 있는 게 아닌가?

모자의 털이 바람 따라 흔들리며 강소천의 동요 ‘종소리’에 나온 가사처럼 꽃씨는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타고 멀리 흩날릴 채비를 하고 있었다.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인생이라는 바람 따라 결혼 45돌을 맞은 우리의 삶을 표현한 것 같아 보고 또 보았다.

목재 데크 수변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연분홍 웃음을 띤 꽃 잔디가 돌 축대 틈 예서제서 얼굴을 내밀었다. 이웃 개나리도 활짝 웃었다. 철쭉도 잎을 단 빨간 꽃봉오리를 머금고 있었다. 줄서있는 벚나무는 바람에 꽃비를 실어 맞은 편 버드나무에게로 보내고 있었다. 꽃비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하염없이 축복을 내려주었다.

산자락 산책길에 들어서니 노란 갈대가 물 가운데서 인사를 했다. 키와 몸집이 큰 나무들이 물에 담긴 채 연녹색 가지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쭉쭉 자란 산죽들도 두 손을 흔들었다. 모진 세월을 지내온 소나무 숲 사이 산책길은 햇볕도 머물러 있어 장관이라 사진을 여러 번 찍었다. 이름 모를 새 한 쌍이 숨어 결혼기념 축하 노래를 불러준 것 같아 더 신이 났다. 조금 경사진 계단을 올라가 멈췄다 내려가니 저수지의 둑과 취수문(取水門)이 나왔다.

산으로 둘러싸인 저수지는 신평마을을 바라보며 긴 둑을 자랑하고 있었다. 둑에는 튼튼한 난간을 만들어서 누구나 마음 놓고 산책하며 사방에 펼쳐진 정경을 감상하기 좋은 관람석이었다. 봄바람을 타고 일렁이는 파란 물결은 저수지라기보다는 호수라 불러야 할 성싶었다.

멀리 연녹색으로 뒤덮인 크고 작은 산은 하얀 벚꽃으로 수를 놓고 있었다. 마치 하얀 양떼들이 산 능선으로 흩어져 기어 올라가고 있는 것 같았다. 수변산책로를 갈 때 우리는 우측 산자락 쉼터까지만 다녀오려 했다. 그러나 젊은 부부가 싱글벙글하며 오는 모습을 보고 저수지를 한 바퀴 돌았다. 결혼기념일의 세월이 많이도 쌓였다. 그럴수록 매사에 ‘거기까지만 하자.’고 선을 긋는 것도 많아진다. 저수지 수변산책로를 일주한 것도 그랬다.

사계절 각기 다른 모습으로 찾는 이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금평저수지, 그 근교에 살고 있는 우리는 매력에 흠뻑 젖곤 한다. 낭만과 추억을 선물하고 꽃과 향기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금평저수지 그곳에 하나의 꽃으로 머물다 가면 어떨까.

 

* 정석곤은 관촌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 하여 <대한문학> 수필 등단했다. 안골은빛수필문학회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전북문인협회, 교원문학회 회원으로 <풋밤송이의 기지개> 외 1권의 수필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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