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처럼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무대는 아니었으나 새로운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돋보이는 개막식으로 주목을 모았던 국제행사가 있다. 2010년 가을, 서울에서 열렸던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다. 행사 조직위원장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1988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으로 문화의 창조력과 가능성을 확인시켜주었던 그의 아이디어는 이 행사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됐다.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신명난 가락에 흩날리기 시작한 벚꽃이 다시 그 소리를 타고 흩어져 객석으로 날아들었던 개막식. 소리의 신명과 첨단 디지털과의 융합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풍경은 객석을 압도했다.
‘서울 무지개’란 주제의 개막식 공연은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과 4D기술이 접목된 세계 최초의 4D 디지로그 아트공연’이었다. 용어도 생소했던 디지로그 아트 공연은 당시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것이어서 실제 퍼포먼스를 위해 딱 하루 연습했다는 후문이 있다.
행사의 백미는 또 있었다. 코엑스 본회의장에 내걸렸던 2010장의 면 티셔츠 퍼레이드다. 배너 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게 티셔츠 물결은 생각을 뒤집는 또 하나의 ‘창조’였다. ‘티셔츠 네트워크’라 이름 붙인 이 퍼포먼스 역시 이 위원장의 아이디어였는데, 그 취지와 배경을 인터뷰로 들은 적이 있다. 아이디어의 뿌리는 2002년 월드컵 때 대한민국을 물들였던 붉은 악마의 붉은색 티셔츠. 1천만 명의 가슴과 가슴으로 이어졌던 ‘티셔츠 파워’를 주목했던 이 위원장은 이 파워를 다시 문화적으로 해석해 ‘티셔츠 네트워크’를 만들어냈다.
덧붙인 설명이 있다. “사람들은 인터넷으로만 네트워크를 맺을 뿐 생명을 가진 몸의 네트워크에 대해서는 소홀합니다. ‘티셔츠 네트워크’는 아날로그의 새로운 반역이자 반동의 표현이에요.” ‘티셔츠 네트워크’의 기발한 창조성은 퍼포먼스로만 끝나지 않았다. 2010장의 티셔츠는 기념품으로 판매되고, 그 수익 전액은 아이티 난민에게 보내졌다.
연말, 문화부가 문화도시를 선정해 발표했다. 선정된 도시들이 내세운 주제를 보니 거개가 지역의 전통적 환경과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티셔츠 네트워크’를 떠올린 것은 그 때문이다. ‘인터넷 힘이 대단하다해도 창조적인 문화의 힘을 넘어 설 수 없다’는 이 위원장의 말을 빌리자면 이들 문화도시들이야말로 주민들의 창조적 재능을 끌어내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우리 지역에서는 완주가 문화도시 지정 전에 거쳐야 하는 예비도시로 선정되었다.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문화도시로 가는 완주가 창조적 힘을 더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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