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시에서 발병한 코로나19의 기세가 꺾이기는 커녕, 국가와 도시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확산세를 더해가고 있다.
이제는 사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판데믹(pandemic,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선언을 주저해왔던 세계보건기구(WHO)가 결국 ‘판데믹’을 선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새로운 질병의 세계적인 대확산’이 어디까지 닿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는 증거다.
‘불안과 공포, 혐오와 배척 등 본능적 차원에서의 반응을 일으키기 일쑤’인 감염의 기능은 도처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산다는 것’의 의미와 ‘더불어 산다’는 것의 의미를 동시에 환기시킨다는 감염병의 존재가 갈수록 더 무겁고 두려워진다. 경험하지 못했던 공포와 불안이다.
날마다 감염의 전파력이 확산되고 있는 절박한 때, 무의식적으로 누리며 행했던 ‘일상적인 삶’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된다.
주말 산책이 잦아졌다. 주위에서도 외출을 자제 하는 대신 집 근처 가까운 산책길을 찾아나선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온전히 코로나 19 덕분(?)일게다. 감염병의 창궐만 아니라면, 그래서 감염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산책이어서가 아니라면 가족이, 이웃이 함께 하는 일상의 풍경은 반가운 변화겠으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프랑스 철학자 장 그르니에는 그의 저서 <일상적인 삶> 에서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산책할 여가를 가진다는 뜻이 아니다’고 말한다. 요즈음의 산책풍경에는 더없이 잘 들어맞는 말이다. 그르니에는 덧붙인다. 일상적인>
‘그것은 어떤 공백을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일상사 가운데 어떤 빈틈을, 나로선 도저히 이름 붙일 수 없는 우리의 순수한 사랑 같은 것에 도달할 수 있게 해줄 그 빈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결국 산책이란 우리가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발견하게 해 주는 수단이 아닐까?’
잦아진 주말 산책으로 만나게 되는 질문이 있다. 감염병의 존재다.
감염병을 인문학적으로 성찰한 문학평론가 정과리는 ‘감염병은 커뮤니케이션 체계가 유해한 방향으로 작동하는, 그것도 종종 지나치게 잘 작동하는 현상을 대표하는 예’라고 규정한다. 감염병이 질병 중에서도 특별히 사회적 관계의 의미를 상기시키는 것이라는 그의 해석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예리하게 들춰낸다. 들여다보면 감염병 극복의 답도 여기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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