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은 보수 야당인 국민의힘에게는 동토나 다름없다. 지난 13대 총선 때 황색돌풍 이후 보수 야당 간판으로 전북에서 금배지를 단 인사는 지금까지 단 4명에 불과하다. 14대 때 민자당 황인성·양창식 의원과 15대 때 신한국당 강현욱 의원이 당선됐고 20대 때 새누리당 정운천 의원이 천우신조로 금배지를 거머쥐었다.
지난 30년 가까이 보수 야당이 전북의 빗장을 열려고 공을 들여왔지만 지역정서는 요지부동이었다. 전북인이 보수 야당에 냉소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전북에 대한 진정성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선거철마다 사탕발림식 개발 공약을 내걸고선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안면을 바꿔왔다. 게다가 새만금과 탄소산업 공공의대 등 지역 현안마다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 와 전북인은 보수 야당을 전북 발전의 걸림돌로 인식해왔다. 그러니 미우나 고우나 민주당에 몰표가 갈 수밖에 없었다.
지역 정서의 장벽을 깨려는 의미 있는 시도가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비례대표로 재선에 성공한 정운천 의원을 중심으로 보수 야당에서 국민통합위원회를 구성하고 호남 껴안기에 나섰다. 57명의 호남동행 의원을 선임하고 호남지역 시·군과 제2지역구 갖기 결연을 했다. 지난해 기습 폭우로 인해 전북지역에 막대한 수해가 발생하자 당 대표와 원내대표 국회의원 당직자 등이 총출동, 수해 현장을 찾아 복구 작업을 도왔다. 정부 예산 심의 땐 전북현안 챙기기에 나서 국가예산 8조 원 시대를 여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앞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호남 없이는 전국 정당도 정권 교체도 불가능하다며 5.18 민주묘지를 찾아 무릎 꿇고 호남의 용서를 구했다. 지난 6월 2030세대 돌풍의 주역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취임 후 첫 공식 일정으로 전북행을 선택했다. 보수야당으로서 호남친화정책에 나서겠다는 강한 의지를 엿보였다. 이러한 노력 덕분일까. 전북지역에서 온라인을 통한 국민의힘 입당자가 한 달에 300명이 넘었고 이중 대다수가 2030세대였다. 유례없는 일로서 보수 야당의 불모지인 전북에서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힘 유력 대권 주자들이 이러한 지역통합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지난 8월 전북을 찾은 국민의힘 홍준표 후보는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은 조금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며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이어 지난 11일 열린 호남권 합동토론회에서는 “호남의 공항은 무안공항 1개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홍 후보의 이러한 언행은 광주·전남 표만을 의식한 이간계가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야권 유력 주자인 윤석열 후보 역시 전북의 제3금융중심지 지정에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윤 후보는 유승민 후보의 금융중심도시 조성 공약과 관련, “금융 업무는 지금 거의 전산으로 처리하니까 어려울 것”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그는 토론 질문 중에 900조 원이 넘는 국민연금기금 규모를 600조 원이라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윤 후보가 전북의 제3금융중심지 지정을 반대하는 부산과 서울의 입장과 궤를 같이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홍준표 후보나 윤석열 후보에게 과연 국가균형발전 의지가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득표 전략으로 지역 구도를 교묘히 이용하려는 노림수라면 더더욱 국가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 과거에도 정치권에서 망국적인 지역 구도를 부추겨서 선거 전략으로 악용한 사례가 많다. 그 결과, 지역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국민통합을 가로막아 국가발전에 해악을 끼쳐왔다. 이번 대선에서도 지역 구도를 조장하거나 지역 정서를 자극하는 세력이 있다면 국민의 이름으로 심판해야 한다. 적어도 국가지도자가 되려면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국가 미래 비전, 그리고 지역과 세대, 계층과 진영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통합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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