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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부안 앞바다와 이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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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희 수필가

불그레한 노을의 부안 앞바다 낙조를 보고 황홀경에 빠지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평선을 향해 서서히 물들어가며, 그 빛을 받아 출렁이는 바닷물은 노래 속의 멜로디를 연상케해 나도 모르게 흥얼거려진다.

저녁노을에서 잠시 깎아지른 바닷가로 눈을 돌리면 밀려오던 바닷물이 부딪쳐 부서지는 모습이 꽉 막혔던 가슴을 뚫어주며 상쾌해진다. 오랜만에 나들이를 한 아내의 눈치를 보니 흐뭇해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거뭇한 배가 멀리 황금빛 노을과 어울려 휴대폰을 꺼내 서너 폭을 담았다. 

고려시대 이규보도 63세에 부녕현扶寧縣에서 벌목의 작목사로 잠시 관직에 있을 때 여러 편의 시를 창작했다. 그가 곰소항에서 바다를 바라보니 파란 물결과 푸른 산들이 들락날락하고 붉은 저녁노을로 바다가 붉으락푸르락, 마치 만첩병풍萬疊屛風을 두른듯이 아름다웠다고 했다. 이때 시를 읊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 했는데, 부안의 주사포구를 지나다가 휘영청 밝은 달이 해변의 모래사장을 비추어 밤바다가 황홀할 만큼 아름다워 시를 한 수 읊었다고 한다. 이 시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과 조선시대 선조의 명으로 조선전기 문신들이 시문을 모아 편찬한 『동문선』 권14에 실린 ‘부녕포구扶寧浦口’이며, 부녕은 지금의 부안이다.

  流水聲中暮復朝  흐르는 물소리 중에 저녁은 다시 아침이 되고

  海村籬落苦蕭條  해촌마을은 참으로 쓸쓸하다.

  湖淸巧印當心月  호수는 맑기에 호수 복판에 당하여 달이 교묘히 찍혀 있고,

  浦闊貪呑入口潮  포구는 넓기에 어귀로 들어오는 조수를 탐내어 삼킨다.

  古石浪舂平作礪  물결이 찧어 옛날의 돌은 평평한 숫돌이 되고

  壞船苔沒臥成橋  이끼가 들어차 무너진 배는 누워 다리가 되었다.

  江山萬景吟難狀  강산의 모든 경치 시로 읊어 형상하기 어려우니,

  須倩丹靑畵筆描  모름지기 화가에게 붓으로 그려 달라 부탁해야지.

고요한 바닷가마을의 쓸쓸한 정경에도 맑은 바다에 달이 찍혔으니 아름다웠고, 넓은 포구가 조수를 탐내어 삼킨다고 표현했다. 돌은 물결로 숫돌을 만들고 무너진 배도 예쁘게 보였으며, 포구의 모든 경치를 시로 읊어 형상하기 어려우니 화가에 그려달라고 싶다고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할 정도였다. 오죽하면 경기도 여주 출생인 이규보가 우리 고장 부안을 이렇게 아름답게 시로 읊었겠는가. 지금은 갯벌이 밀려와 썰물이 되면 바닥이 드러나 바닷물이 멀리 보이지만, 이 시를 읊을 때만 해도 원시적인 모습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부안을 찾을 때마다 곰소항 부근의 염전에서 소금을 긁어모으는 풍경, 곰소항 어시장에서 펄펄뛰는 활어를 떠 소주 한 모금에 회 한 점을 넣고 씹는 맛이라니, 그 맛이 그리워 이곳을 찾는다.

 이규보의 ‘부녕포구’라는 시를 접하면서 나도 모르게 이곳에서 있었던 추억을 더듬게 되었다. 고려시대 이규보가 본 부녕포구의 정경이 내가 그려본 모습과 다르지 않아 감상에 젖은 듯하다. 부녕포구의 아름다움을 노래해준 이규보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머지않은 날 이 시를 들고 우리 고장 전북의 아름다운 부안을 아내와 다시 한 번 찾으리라.  

△이종희 수필가는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직하고 ‘대한문학’에서 수필로 등단했다. 안골은빛수필 회장을 역임했으며 수필집 <임도 보고 뽕도 따고>, <초원을 찾은 나그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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