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 2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벌의 날’이다.
벌은 가장 중요한 화분매개곤충으로 다양한 농작물의 꽃가루를 옮겨 종자 형성과 과실 생산을 유도한다. 농작물 생산에 있어 꿀벌을 비롯한 화분매개자가 기여하는 경제적 가치가 전 세계적으로 연간 약 2350억~5770억 달러, 국내 꿀벌의 화분매개 경제적 가치는 5조 800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또 꿀벌은 유엔의 지속가능 개발목표(SDGs)의 17개 항목 중 11개 항목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등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생명체다.
그러나 최근 질병과 기후 변화로 전북을 비롯한 전국의 꿀벌 개체 수가 급감, 생태계 대혼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21일 전북도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지난 2월까지 도내 등록 양봉 농가의 피해를 조사한 결과 1723가구 중 1078가구에서 꿀벌 피해가 접수됐다. 피해를 본 벌통(군)은 24만개 중 11만 8000개 정도로 파악됐다. 벌통 1개에 꿀벌이 평균 2만 마리 정도 산다고 볼 때 약 23억 마리가 사라진 것으로 추산된다.
실제 장수에서 양봉 농가를 운영하는 A씨는 “벌통 한 개(2단 짜리)에 4만~5만 마리 정도 꿀벌이 살았는데 올해 100통 정도 손실, 400만~500만 마리의 벌이 사라졌다”며 “피해 규모만 70~80%에 달한다”고 전했다.
김종화 한국양봉협회 전북지회장은 “2단 짜리 벌통 200개를 운영하고 있는데 지금 수확 가능한 벌통은 85개에 불과하다”며 “양봉을 한 지 44년 가량 됐는데 올해 같은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다”고 토로했다.
꿀벌이 사라지는 현상은 비단 전북 뿐만이 아니다.
지난 4월 기준 한국양봉협회 소속 농가 벌통 153만 7000여개 가운데 61%인 94만 4000여개에서 꿀벌이 폐사한 것으로 조사돼 꿀벌군집붕괴현상(CCD)이 심화하는 실정이다.
그린피스와 안동대 산학협력단이 지난 18일 발표한 ‘벌의 위기와 보호정책 제안’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3월까지 지역별 양봉 농가 꿀벌 피해는 경북 47.7%, 전남 43.2%, 전북 31.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 식량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중 70% 이상이 꿀벌의 화분매개에 의존한다는 것에 비춰봤을 때 꿀벌의 실종은 식량안보에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
보고서는 꿀벌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기후변화를 지목했다.
보고서는 “지구 온도가 200여 년 만에 1.09도 오르면서 벌이 동면에서 깨기 전 꽃이 피었다가 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면서 “겨울철 온난화와 이상기상 현상 증가는 월동기 꿀벌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벌의 건강성을 위해 꿀벌에게 꽃가루와 꿀이라는 먹이를 주는 '밀원'(蜜源)의 면적이 최소 30만㏊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최태영 그린피스 생물다양성 캠페이너는 “벌을 가축으로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화분매개체 친화적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며 “꿀벌의 집단 폐사는 기후위기가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증거로, 기후위기 대응에도 더욱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엄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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