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객이 전도됐다. 안타깝고 개탄스럽다. 수확철, 한창 무르익고 있는 지역축제가 그렇다. 싸잡아 ‘지방’이라고 부르며 서울에서부터 두탕 세탕 뛰고 내려온 연예인들에게 온통 조명이 쏠린다. 정작 주역이어야 할 주민들은 조명 밖에서 서성일 뿐이다. 다시 축제의 계절이다. 경사가 있어서 열리는 잔치가 아니다. 그저 때가 되어 판을 벌이는 것이다. 내 고장의 문화와 경관, 특산물 등을 널리 알려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취지다.
그런데 이런 지역축제 무대가 대중가수들의 지방 순회공연장이 돼 버렸다. 축제 준비는 성수기 천정부지로 몸값이 치솟는 유명 가수 모시기 경쟁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경쟁을 돈질로 뚫어낸 지자체들이 초대 가수 알리기에 열을 올린다. 대중에게 인지도가 높은 유명 연예인을 불러오는 게 방문객을 늘리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부인할 수는 없지만, 수위를 한참이나 넘었다. 현수막 등 축제를 알리는 각종 홍보물은 초대 가수 이름과 사진으로 채워진다. 축제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TV에서나 볼 수 있는 ‘트로트 페스티벌’을 메인 프로그램으로 배치해 집중 홍보하는 곳도 있다. 외딴 산속에서 열리는 야생화축제에서조차 유명 가수들을 초청해 놓고, 입장료까지 받는다. 북적이는 차량과 인파, 그리고 스피커를 통해 쾅쾅 울리는 노랫소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인데도 굳이 연예인 무대를 고집하면서 관객 동원까지 대행해준다.
잔치 경비는 대부분 혈세로 충당된다. 축제장 방문객들도 터무니없는 바가지요금을 통해 가수들에게 내어준 엄청난 노랫값의 일부를 부담한다. 지난 6월 ‘과자 한 봉지 7만원’으로 전 국민의 공분을 산 지역축제 외지상인 바가지 상술도 이 같은 구조적 문제와 무관치 않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는 ‘글로컬(Glocal)’ 시대다. 지역축제의 주인은 당연히 주민이어야 한다. 특산품을 알리는 게 주목적이라면 주민들에게 경제적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 어느 결기 있는 단체장이 당장의 방문객 감소에 신경쓰지 않고 오직 우리 지역에서만 즐길 수 있는 색깔 있는 잔치판을 만들어 선보이게 될 날을 기대해 본다. 인기 가수들을 대거 초청해 잔치판을 북적이게 만들어도 절대 전국적인, 세계적인 지역축제가 될 수 없다. 단지 해당 지자체가 낯부끄러운 자화자찬의 근거로 삼을 수는 있을 것이다. 수도권으로 떠나가는 이웃을 잔뜩 주름진 눈으로 바라보며 버텨온 지역 노인들이 구깃구깃 접어 낸 세금으로 윤기 좔좔 흐르는 연예인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워준 사실을 애써 감추면서 말이다.
축제의 정체성은 이미 잃었다. 지자체에서 발표하는 파급효과는 대부분 과시용 부풀리기라는 것을 주민들도 안다. 이맘때 어디를 가든 발에 차이는 게 연예인을 위한 지역축제다. 이럴 거면 굳이 혈세 들여 축제를 열 이유가 없다. 어차피 잔치판을 벌일 상황도 아니지 않은가.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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