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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금실’의 힘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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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이 지난 7일 스웨덴 한림원의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에 섰다. <빛과 실>이란 제목의 강연은 창고를 정리하다가 발견했다는 유년 시절의 일기장 사이에 섞여 있던 중철 제본 작은 시집 이야기로 시작한다. 시집의 시는 모두 여덟 편. 한강이 여덟 살 때 썼다는 시들이다. 그중 한강의 눈에 들어온 시가 있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엇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시를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 구두 상자 안에 넣어두었었다는 그는 이 시를 휴대폰에 담았다. “그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는 그는 뛰는 가슴 속 내 심장.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걸 잇는 금()- 빛을 내는 실을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소설가로 살아오면서 담금질 해온 질문과 고뇌를 소개한 그는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자문한다. 그가 찾은 사랑의 정체는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었다.

123일 대통령의 계엄 선포로 대한민국은 미궁의 늪에 빠졌다. 더 참담한 것은 이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 놓여 있지만, 그 길이 쉬이(?) 열리지 않는 현실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소년이 온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정말 비가 쏟아지면 어떡하지.’

돌아보면 우리의 현실이 그랬다. 뭔가 터질 것 같은 불안함의 예후. 더러는 분노하고 더러는 포기하며 직면해야 했던 암담한 현실은 이제 온전히 국민의 몫이 되었다.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했던 그 날의 상황을 마주하며 떠오른 소설 속 문장이 있다.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대원이 있었다. (중략) 어딘가 흡사한 태도가 도청에 남은 시민군들에게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을 받기만 했을 뿐 쏘지 못했다.’

계엄령 포고 진상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진실의 실체를 묻으려는 간교한 획책이 나부댄다.

한강의 강연 문장을 다시 빌린다.

학살이 벌어진 모든 장소에서, 압도적인 폭력이 쓸고 지나간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밝혀지는, 작별하지 않기를 맹세하는 사람들의 촛불은 어디까지 여행하게 될까. 심지에서 심지로, 심장에서 심장으로 이어지는 금()실을 타고.”

시민들이 다시 선 거리.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 그 힘이 지금 금실을 타고온다. / 김은정 선임기자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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