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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농촌학교의 할머니 신입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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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닫혀 있던 교문이 활짝 열렸다. 학교의 새해는 3월에 시작된다. 이맘때면 각급 학교의 이색 신입생이 화제가 된다. 올해 전북지역에서 가장 눈길을 모은 입학식은 단연 익산 함열여고다. 풋풋한 10대 여고생들 사이에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앉은 18명의 할머니 신입생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이 학교는 전북지역 일반계 고교에서는 처음으로 올해 성인반을 개설했다. 

만학도들의 향학열이 만들어낸 훈훈한 미담으로만 보일 수 있다. 물론 고령에도 학업의 끈을 놓지 않고 도전한 할머니들의 열정은 높이 살 만하다. 그런데 그 이면을 들춰보면 우리 농촌, 그리고 농촌 학교의 안타까운 현실이 드러난다.

적령기에 학업 기회를 놓친 만학도들의 정규학교 입학 열풍은 대학에서 시작됐다. 학생수 감소로 존폐 위기에 몰린 지방대학들이 만학도 특별전형을 통해 늦깎이 학생 모집에 나섰고, 어르신들이 용기를 내면서 70~80대 할머니들의 캠퍼스 생활이 낯설지 않게 됐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저출산·고령화 시대, 학령인구 감소로 폐교 위기에 몰린 몇몇 농촌 초등학교들이 마을 할머니들을 주목했다. 한국전쟁 직후 사회 혼란과 빈곤, 남존여비의 가부장적 사회관습 등으로 인해 학업기회를 놓친 할머니들에게 평생학습시설 대신 정규학교 입학을 권유한 것이다. 그리고 농촌학교 할머니 학생들의 발길은 자연스럽게 중·고교로 이어졌다. 농촌 중·고교의 절박한 사정과도 맞아떨어졌다. 함열여고도 그랬다.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던 상황에서 성인반을 통해 학급수 감축 위기를 일단 벗어나게 됐다.

학생 모집난과 맞물린 할머니 신입생 모시기는 애초부터 지속 가능성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폐교를 막기 위한 미봉책’이라는 지적과 함께 논란도 있었다. 꼭 10년 전, 할머니 신입생들로 전국적 화제가 됐던 김제 심창초등학교는 올봄 교문을 열지 못했다. 이 학교는 지난 2015년 50~60대 만학도 6명이 한꺼번에 입학한 후 한때 전교생(18명)의 절반이 할머니들로 채워지면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교실의 모습은 지속될 수 없었고, 결국 올해 폐교를 막지 못했다.

올해 개설된 함열여고 성인반도 지속 가능성은 높지 않다. 머지않아 일반 학생처럼 할머니 신입생도 줄어들 게 분명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학령기를 놓쳐 ‘배움의 한’을 안고 살아가는 할머니들은 그 수가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애초 위기에 몰린 농촌학교가 찾아낸 고육책이다. 할머니 신입생 모시기, 성인반 운영이 학교나 학급 수 유지를 위한 방편이라면 분명 한계가 있다. 지방소멸 위기의 시대다. 학교를 넘어 지역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다. 농촌 작은학교 살리기는 이제 교육기관에서 감당할 수 있는 단계를 벗어났다. 국가균형발전을 끊임없이 외쳐온 중앙정부가 파격적인 정책과 범국가적 지원을 통해 진정한 지방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래야 농촌학교도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

/ 김종표 논설위원

 

 

김종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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