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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인류의 기억’이 된 제주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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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정윤성

제주 서귀포에 있는 동광리는 해발 300m에 있는 산간마을이다. 300여 년 전, 관의 침탈을 피해 쫓겨온 사람들이 모여 화전을 일궈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니 역사는 그리 길지 않지만, 깊게 패어 있는 현대사의 궤적은 특별하다. ‘무등이왓이란 별칭을 갖고 있던 이 마을은 조선 말기, 관의 침탈에 항거하여 농민봉기를 일으킨 진원지였다. 일제강점기에는 2년제 동광간이학교가 건립되었을 정도로 주민들의 교육열이 높았다.

마을의 비극이 시작된 것은 국가 폭력에 맞서면서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일본군이 철수한 제주도에는 미군정이 들어섰다. 직접 통치에 나선 미군정은 제주도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한다는 이유로 다양한 조치를 시행했다. 공물(세금)징수도 그중 하나였다. 이 마을 사람들은 미군정의 공물징수에 항의하며 보리 공출에 응하지 않았다. 마을에 가해진 군경의 탄압은 집요하고 악랄했다. 대부분 청장년이 탄압을 피해 산으로 피신했지만, 군경의 토벌작전으로 수많은 주민은 목숨을 잃어야 했다.

19484.3 사건 당시에도 마을은 군경의 토벌 대상이 됐다. 마을 사람들은 군경 토벌을 피해 숨어 지낼 곳을 찾아야 했다. 동광리 중산간에 있는 천연동굴 큰 넓궤가 그곳이었다. 1948년 가을부터 두 달여 동안 주민 120여 명은 그 좁은 동굴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추위와 굶주림을 이겨냈다. 토벌대에 발견되었지만, 다시 피신해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결국 붙잡혀 주민 대부분이 희생을 당했다. 제주 곳곳에는 동광리처럼 수난과 비극의 역사를 안고 사라졌던 마을이 많다.

제주 4.3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가 승인한 제주 4.3아카이브(Revealing Truth : Jeju 4.3 Archives)'는 진실 규명과 화해의 과정을 담은 14,673건의 기록이다. 놀랍게도 이 중 대부분은 1990년대에 제주도민들이 경험과 기억을 직접 써서 낸 피해신고서들이다. 4·3의 비극을 세상에 알린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 진상규명과 화해를 위한 시민운동기록, ·사법기관 재판기록, 정부 진상조사 관련 기록도 포함됐다.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역사적 가치와 진정성, 보편적 중요성을 인정받았다는 증거다. ‘역사적 비극 속에서 제주 공동체가 걸어온 치유와 회복의 과정을 보여주는 기록’, ‘화해와 상생을 향한 지역사회의 민주주의 실천이 이룬 성과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제주 4.3사건은 이제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인류의 기억이 됐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왜곡과 폄훼가 여전히 맞서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진실 규명의 의지와 힘이 단단해져야 하는 이유가 더 분명해졌다. /김은정 선임기자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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