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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취하고, 저것은 버려라

소재호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노자는 말한다. 저것은 버리고 이것은 취하라. 이 말, 거피취차(去彼取此)를 도올은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저것이란 모든 관념적 허구이며 형이상학적 폭력이며 감각적 허환이다. 이것은 나의 일상적 현실이며 나의 생명 중추가 느끼는 실재이며, 이 세계에 근접한 번뇌이며 보리이다. 노자가 말한 리얼리즘이며 실천주의이며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의 현실주의이다. 관념이나 이념 따위의 극단적 대립은 실학적 이로움이 없는 먼 곳의 화두일 뿐이다. 학문의 서책 안에서 논의되는 철학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우리 국민들은 느닷없이 관념적 대립, 혹은 이념적 대칭의 양극 모서리에서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해대는 양상을 띤다. 정말 느닷없고 어처구니 없는 곳으로 지향한다. 시비가 옳고 그름의 본질적 차원에서 시작되지 않고 감정의 대입으로 확대되다가 마침내 진영 논리로 양분되는 현실을 자주 보게 된다. 흑백의 양분 논리는 철학이 아니고 심리학도 아니다. 더구나 인간주의를 함유하는 인문학도 아니다. 흑과 백이 혼융하는 회색이 오히려 상생의 근원이며 만물 생성의 시발이다. 물들고 번짐으로 인해 이룩됨이 생성의 단계로 차차 나아감이다. 생성은 제2의 생성을 파생시키며 진화하는 것이 세상 발전의 이치이자 선가치이다.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 중에 대나무 송(頌)을 읊은 시조가 있다.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 대나무는 풀인지 나무인지 분류 논쟁으로 인해 실용적 가치가 달라지지도 않으며, 이런 논급은 실존적 존재를 식물 분류 그 본질성에 억지로 갈래지우려는 뜻에 다름 아니다. 부부간에 한 쪽은 기독교 신앙자이고 다른 쪽은 불교인이라 할 떄 밥상머리에서 날이면 날마다 교리에 대한 쟁투를 벌릴 일인가? 신앙의 문제는 멀리 두어 저것이고 살림살이 전반에 관한 문제는 이것의 실용으로 삼을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슬기로운 민족이기도 하면서 어느 대목에서는 저것만을 가지고 피투성이가 되는 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2000년 615 공동선언이 있었고 한국과 북한이 합의해서 개성공단지를 조성하고 생산 활동을 전개하여 매우 큰 성과를 낸 일이 있었다. 세계 인류사상 이렇게 절묘하고 아름다운 교집합을 이뤄낸 사실이 없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공리주의의 공동선의 이룸이었다. 사상 문제, 이념 문제는 먼 뒷골목에 던져 두었고 만지작거리지도 않았다. 유물사관론이 어떻고 민주자본주의가 어떻고는 저것이었을 뿐이다. 개성공단의 산업 열차는 38선을 지워가고 있었다. 참 잘 되어갔다. 그런데 대박 운운하며 박근혜 정부가 이를 철폐하고 말았다. 개성공단은 생산공장 가동의 의미를 넘어 민족의 동질성 찾아가기의 상징적 의미였다. 박근혜 정부의 큰 실수였다. 반민족적 범죄였다. 사이가 좋은 양자를 적으로 삼게 이간하는 일이 법죄의 하나인 것이다. 너무 철없었다. 개성공단의 사업은 교집합 단계의 확대였다. 교집합이란 용어는 수학 용어인데 필자가 시를 설명하는 수단으로 잘 사용한 매우 긍정적 어휘이다. 서로 물들기요, 서로 번짐을 담보하는 용어이다. 이런 문법은 저 관념적인 어휘인 융복합의 개념을 뛰어 넘는 구체적 행동 용어인 셈이다. 저것으로 인해 매몰되어 버린 이것들을 마냥 찾아내어 교집합을 만들어 가자.이 일이 공동선이요, 공리주의 실현이며 민족의 미래 비젼인 것이다. 성씨가 각각 다른 이성지합異姓之合 도 부부가 되지 않는가? 콩깍지를 서로 눈에 쓰며 사랑을 도출하지 않는가? /소재호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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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1.23 18:06

광대전(廣大戰)은 계속되어야 한다

김문성 국악평론가 지난 9월 24일 제1화- 희로애락 판소리 대결로 5년 만에 전파를 탔던 판소리 명창대첩 광대전2020이 11월 5일 제6화를 끝으로 종영했다. 번외전이라도 하고 싶다는 한 명창의 솔직한 후기는 역설적으로 번외전조차 하기 어려운 현실을 곱씹어보게 하지만, 그래도 판소리의 미래는 밝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받은 것이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싶다. 광대전2020은 시작과 동시에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았다. 우선 코로나19 재유행으로 공연장이 봉쇄되는 가운데 방송의 이점을 충분히 살려 야외를 활용한 제작이 관객의 관심을 끌어냈다. 경쟁 포맷도 관심을 끌었다. 예전처럼 회를 거듭할수록 탈락하는 서바이벌 방식 대신 4명씩 조를 나눠 매회 우승자를 내는 방식을 도입했다. 덕분에 매회가 결승전 같은 상황이 펼쳐졌다. 한번은 우승하겠다는 광대들의 간절함이 매주 브라운관으로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캐스팅도 화제였다. 8명의 소리꾼 모두 판소리 전문 대회 대통령상 출신들로 특정 대회에 쏠리지 않는 황금 비율이 돋보였다. 이전 광대전을 능가하는 캐스팅이었다. 무엇보다도 재정이 열악한 지역 방송국의 제작 선택지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판소리 프로그램을 제작해 선보인 것은 상당한 신선함을 주었다. 광대전은 국악의 대중화를 고민하던 우리 지역 방송사가 2013년 본사의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 포맷을 가져와 성사시킨 프로그램이다. 전통예술을 소재로 그것도 지역 방송에서 만든 프로그램임에도 전 국민적 화제를 불러 모았고, 그 해 많은 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꾸준한 제작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전 탈락자와 우승자가 모두 나와 재격돌했던 2015광대전을 끝으로 더 이상 광대전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재정 문제가 컸다. 최근 들어 재정이 열악해지고 있는 방송사가 화제성만으로 국악 프로그램을 런칭하기엔 리스크가 컸을 것이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로 많은 언론사 사업들이 올스톱되는 상황에서, 국악 프로그램 제작은 더더욱 언감생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광대전은 제작되었다. 계산기를 두드리기 보다는 광대들의 자존심을 지켜준 것이다. 시청률 확보에 도움이 되는 B급 감성을 택하지도 않았다. 창작과 퓨전을 앞세워 대중성을 확보하려고 발버둥치는 전통예술계와 달리, 광대전은 전통예술의 마지막 보루라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듯한 인상마저 갖게 했다. 어찌 보면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경향 각지에서 활동하는 소리꾼들이 광대전을 꿈의 무대로 부르는 것이 빈말이 아닌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당분간 광대전은 볼 수 없다. 언젠가는 이라는 희망섞인 바람이 현실이 되려면 극복해야 할 현실이 있다. 재정적 지원 문제다. 지금처럼 지역 언론사들의 뻔한 재정 상태를 알고도 광대전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는 다소 후안무치일 수도 있겠다. 대안이 있을까? 전북에 입주한 공기업, 공공기관이 지역과 상생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접근해보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언론사 직접 지원 방식이 문제된다면 예술단체나 기관과 매칭해 포맷을 지원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지역에 기반한 기업들 역시 메세나에 대한 적극적인 열린 마인드를 가질 시점이라고 본다. 예향 전북에서 광대전은 계속 만들어져야 하고, 계속 되어야 한다. /김문성(국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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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1.16 17:51

이날치가 이날치에게

곽병창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날치라 하데-. 내가 엉덩이로 줄을 튕겨 하늘로 날아오를 때마다-. 사람들이 짙푸른 바다를 박차고 허공으로 자맥질하는 날치를 떠올린 거였다네, 줄광대 어름사니, 줄 위의 인생이었지. 한때는 그저 세상이 다 만만하였네. 저 아래서 거드름 피우는 양반, 환호하는 군중들 모두가 발아래 까마득하였으니 말일세. 아비는 평생 땅만 보고 굽실거리던 머슴, 나는 하늘을 보고 싶었네. 문득 박차고 나와 줄을 탔지. 봐라, 떵 더러러러러, 누가 더 높으냐, 누가 이 세상에서 젤 높은 데까지 솟구칠 수 있는가 봐라-. 그러다 소리판에 홀렸네. 줄 위에서 호통 치던 소리가 너무 크다고, 걸걸하게 십 리 바깥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아깝다고들 했지. 소릿길로 마음을 정한 뒤에도 고분고분 수행고수나 하는 일은 성에 차지 않았네. 갑질 하는 명창 세숫물 엎어버리고 뛰쳐나왔지. 내가 사람을 울리고 웃긴다는 소리에 조정 높은 양반이 내기를 걸기도 했다네. 심청이 팔려가는 대목에서 그만 울음을 터뜨리더니 큰돈을 내어놓더군. 그렇게 소리로 한 평생 거리낌 없이 살았다네. 새타령을 하면 새가 날아들었다는 소문이사 어지간한 소리꾼한테는 다 따라붙은 것이니 그리 내세울 것도 없네. 나는 그저 나랑 비슷한 사람들 이야기를 내 방식으로 외치고 터뜨렸을 뿐이고, 내 소리에 함께 울고 웃은 밑바닥 청중들 덕분에 한 평생 낭창낭창 잘 살았네-. 양반, 부자들 덕에 밥, 술, 고기도 잘 먹고 살았으나 그들 비위에 맞춰 내 소리 굽혀본 적 없으니 그것만으로도 복 받은 인생일세. 이날치밴드라니, 이 무슨 묘한 이름인가?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장림 깊은 골로 대한짐승이 내려온다. 잔디뿌리 왕모래를 촤르르르르 흩치며,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는 듯 범이 내려오는 대목을 어찌 그리 신통방통하게 갖고 노는지, 저 세상 가던 명창들까지 다 나와서 사지를 나풀거릴 지경일세-. 내 이름을 갖다 쓰다니, 아마도 날렵하고 부르기도 친근하니 그리 했을 터이지만 나로서는 새삼 가슴이 벌렁벌렁 오지고도 반가운 일일세. 요즘 여기가 어딘지 나는 누구인지 이승과 저승이 헷갈리어 분간이 안 될 참이네. 내가 백여 년 전에 심청가나 춘향가의 슬픈 대목을 즐겨 불렀던 건 다 처량하기만 하던 시절 덕이었네. 그대들이 수궁가를 들고 나오면서 사설을 새로 짠 것도 아니고 쉽게 알아들으라고 풀어놓은 것도 아닌데, 지금처럼 온 세상이 들썩거리는 건 다 그 오묘한 성음과 장단 덕인 듯싶네. 한없이 반복하는 자진모리의 쑥덕거림에 온갖 선율악기들이 들락날락 노니는 품이 영락없이 내 청춘시절의 천방지축 발걸음을 닮은 듯도 하네. 그 발걸음 잃지 마시게. 이리저리 치이고 지친 세상 사람들 그저 너나없이 흔들흔들 놀게 해주는 게 으뜸광대 사는 길이라네. 게다가 배운 대로만 따라 하기보다 그대들 사는 세상의 희로애락을 담는 게 진정한 소리꾼이라는 진리를 그대로 실천하고 있으니 더 보탤 말이 없네. 허나 자네들을 규정하고 붙들어 두려는 이런저런 시도에는 부디 거리를 두시게. 광대라는 이름은 돈으로도 명성으로도 다 잴 수 없는 것일세. 그것들마저 가지고 노시게. 그래야 더 빛날 것일세. 하나만 더, 애매모호한 춤패(Ambiguous dance company) 하고도 그 판 오래오래 잘 꾸려 가시기를-. 나도 내내 곁에 있겠네. 흔들흔들-. 촤르르르르르-. /곽병창 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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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1.09 18:02

미술감상, 귀명창에 버금가는 눈명창

김선태 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 요즘 대부분 사람들은 코로나 때문에 가급적 외출을 삼가고 집에서 스마트폰과 TV 시청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소위 뽕짝이라고 할 수 있는 폭스트롯(foxtrot)풍의 우리 대중가요로 가히 전국적인 열풍은 식을 줄 모르고 얼마 전 나훈아 비대면 지상파 공연으로 트롯 신드롬에 정점을 찍었다. 소리명창은 아니더라도 귀명창에 근접한 사람들은 각자 스타일과 취향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음정과 박자와 목소리 톤을 기준으로 가수의 노래 실력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가늠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그림 감상과 평가의 기준은 무엇인가? 색채, 균형, 조화, 밀도, 시대성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있으나 음악처럼 객관적인 평가보다는 주관적 평가가 절대적인 우위에 있다. 19세기 이전까지는 미술 감상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고 화가는 천재성과 결부되어 비교적 일반인이 범적 할 수 없는 아우라로 포장되었다면, 오늘날 현대미술은 다원화라는 다양한 얼굴로 모습을 드러내고 도무지 이해 할 수도 없는 난해함과 곤혹스러움을 누구나 다 한 번쯤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일찍이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이 예술은 사기다라는 말로 일갈했듯이, 현대미술 감상에는 명확한 척도가 없어서 평론가의 글을 참고로 하지만 오히려 작품을 이해하는데 더욱 더 혼란스럽고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꿈보다 해몽이 좋은 자본에 침몰된 미술계를 비꼬기 위해 작품을 제작하는 미술 판의 테러리스트 얼굴 없는 화가로 알려진 영국의 낙서화가인 뱅크시는 그의 작품가격이 오히려 청정부지로 치솟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몇 번이고 되새겨 보아도 하늘의 섭리로 지어진 자연과 인간을 그림이나 작품과 비교 할 수는 없지만, 화가의 그림에는 우리가 보는 그 이상의 무엇이 분명히 담겨 있다. 모든 예술의 형태가 그랬던 것처럼 언제라도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왔고 그럼으로써 작가가 처한 현실이 투영되어 하나의 예술을 펼쳐 보여 주었던 것이 곧 예술의 조건이자 역사였다. 야스퍼스는 인간의 유형을 두 가지로 분류한바 있다. 하나는 자신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스스로 많은 짐을 지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전진 해 갈 기백도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전자가 엘리트적 인간이라면 후자는 대중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엘리트적 작가란 자기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작가로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 나오기 까지는 많은 갈등과 고통을 수반하는 사람이다. 미술평론가 입장에서 창작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바로 독특함이라 말 할 수 있다. 이 세상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래도 새로움을 추구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자세는 예술가의 본성이고 바로 아방가르드(전위) 정신으로 예술가의 숙명이요 본질이다. 가령 많은 화가들이 꽃을 소재로 작품을 제작하면서 꽃을 어떤 대상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미국의 여류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꽃 그림과 네덜란드 고호의 꽃 그림, 한국화가 천경자의 꽃그림은 분명 다르고 세상 어디에다 내놓아도 구분된다. 같은 사물과 대상을 보고 각자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조형미술에서 말하는 창작이요 차별화와 다름의 미학인 것이다. 화가들이 사물과 대상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어떻게 독특하고 다르게 작품에 표현하였는지를 발견 할 수 있는 감상자의 눈이야 말로 귀명창에 버금가는 예리한 눈썰미를 가진 눈명창(?)이라 말 할 수 있겠다. /김선태 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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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1.02 20:16

생(生)은 ‘의미’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데

소재호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죽은 뒤에까지 의미로 남지 않는 일이라면 하지 말라 미켈란젤로의 준엄한 훈도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살아서도 의미요, 사후에도 의미인 것이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의미 있는 일이란 가치 있는 일일 터요, 크게는 인류를 위해서, 작게는 이웃이나 가족을 위해서 보람있게 공헌하는 일일 터이다. 태양이 하루의 난간에 걸릴 무렵에 스스로 무위도식(無爲徒食)했다고 반성될 떄 그 무위로 난파된 시간들에 대한 회한이 가슴을 칠 것이다. 소설에서도 주인공의 생애 중 가장 응축된 정채(精彩) 있는 부분만을 다룬다 하였는데, 바다의 파도만큼이나 굽이쳐 오는 온갖 사상(事象)이 의미 없이, 또는 가치 없이 명멸하여 인생을 덮쳐 지나가고 만다면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무슨 보람된 것이며 무슨 존엄한 것이겠는가. 선종(禪宗)에서 수행하며 무념무상에 드는 면벽(面壁)하는 일도 무위도식으로 보는가 하는 의문도 든다. 아침을 열며 귀한 시간을 명상한다면 이 또한 무의미의 일인가. 깊이 사유(思惟)에 골똘하며 침잠(沈潛)에 드는 일은 역시 무의미요, 무가치인가. 다만 그 수도와 그 사유로 연유하여 큰 철리(哲理)를 얻어 인류에게 인문학적 큰 업적을 남긴다면, 아니면 이로 말미암아 다음 날에 자신이 한층 고귀한 삶을 누리게 된다면, 수천 수만 번 연습으로 골프채를 휘둘러 골프왕 타이거 우즈에 이른다면 그 수도와 수련의 과정을 무위로 셈할 일은 아닌 성싶다. 그리고 또한 자기 성찰로, 자기 정신 도야로 시간을 낭비한다고 여기면 이것 역시 무의미의 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러나 여기에서 인문학적 철학적 의미론을 부각시켜 갑론을박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으로서 마땅이 사람에게 유익한 일을 찾아 도모하고 시혜하는 일로 국한하는 협의의 일반적 의미론에 안주하고 싶다. 의미 있다, 의미 없다의 구분법은 인정물태(人情物態) 제반이 아니라 가시적 물상의 이룸에만 국한할 일은 물론 아닌 성싶다. 필자는 여기서 의미 유무를 근원적 본질에 입각해 생각하지 않고, 애초에 의미가 존재해 있었던 게 아니라 사람이 의미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하는 창조적 의미론에 매달리고 싶다. 김춘수의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어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중략)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앟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라는 시구를 인용해 본다. 여기서 의미는 상징성을 띤다. 또한 의미란 내가 만들어 부여하는 것이란 암시를 품는다. 우리의 만남은 큰 의의가 있었어 우리 모임은 유익한 의미가 있었어하고 언급했다면 사람들 일상의 만남도 의미의 창조가 아니겠는가. 자꾸자꾸 이토록 의미를 창조해 간다면 생은 빛나게 될 것이다. 노자의 무위자연은 예술에서나 찾고, 현실의 유의미를 찾아 나서자. 꽃을 심으며, 음악을 감상하며, 독서하며,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며 하루를 묶어 내자. 가족끼리 정리를 쌓고 효도하며, 상추 심고 가꾸며 하루씩 유의미로 묶자. 그 하루하루들이 축적되어 빛나는 인생이 되리라. 이토록 참 의미를 쌓는 인생을 펄펄 휘날리자. /소재호(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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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26 18:03

트롯 유감

김문성 국악평론가 건국 이래 트롯이 이렇게 주목받은 일은 없었습니다. 트롯이 대중음악계를 리드하고 있다. 아이돌도, 록가수도, 포크가수도, 성악가도 트롯을 부르지 않으면 스폿라이트를 받지 못한다. 불과 2년여 전, 제작비 절감을 이유로 유일한 공중파 트롯 가요 프로그램은 출연 라인업을 A급 트롯 가수에서 소위 B급으로 대거 변경했고, 출연자 대기실 한켠에 울리던 국악계보다도 못한 트롯이라는 트롯가수의 절규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말그대로 상전벽해요, 경천동지할 일이 아닐 수 없다. 2019년 한 종편사가 미스트롯 런칭을 예고할 때만 해도 이를 주목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방송가에서는 아이돌 중심의 케이팝이 대세인 시대 흐름에 역행한다는 조롱까지 나왔다. 하지만 아이돌 문화가 활성화될수록 문화소비 주도권을 쥐고 있는 40~50대의 소외는 극에 달했다. 결국 40~50대는 트롯을 택했다. 그리고 1년여가 지난 지금. 방송계의 음악콘텐츠 대부분이 트롯 물결이다. 코로나19로 문화예술계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트롯은 여전히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있다. 리모콘을 돌려봐야 손가락만 아플 정도로 트롯 프로그램뿐이며, 심지어 언텍트 공연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그러니 트롯 가수들의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몇몇 비평가들은 무분별한 트롯 프로그램 양산이 급격한 트롯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대중문화 속성상 트롯 열기도 언제든지 식을 가능성이 있는데, 현재의 과잉 양상이 그 시기를 앞당길 수 있으며, 꿀만 빨아먹은 기획사나 미디어 관계자들이 이를 걷어차고 대체 콘텐츠로 눈을 돌리게 되면, 결국 가수 양성 체계가 다소 허약한 트롯계만 한탕주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체질적 허약함은 트롯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자들의 주전공으로도 고스란히 확인된다. 이러한 이유로 안정적인 수익창출 모델을 고민하는 검은 손들이 국악계로 드리우고 있다. 기획사나 방송 작가들이 국악과 등에 마구잡이로 연락하며, 숙련된 젊은 국악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국악 소울과 트로트 소울이 한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트롯에 발을 담근 젊은 국악인들이 성공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송가인의 성공을 롤모델 삼기엔 아직 국악에 대한 국민의 이해가 많이 부족한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젊은 국악인들의 활동이 타지역에 비해 월등히 많은 전북 지역 젊은 국악인들 역시 이러한 유혹에 심하게 노출되어 있다. 트롯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며 대중음악계에 외연을 넓혀가는 현상은 축하할 일이다. 40대 이상 음악 소비층들의 니즈를 잘 파악해 케이팝 일변도로 성장하던 대중음악 시장에 추의 균형을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반갑다. 그러나 실현 방식은 페어해야 한다. 국악계의 젊은 인재들을 쌍끌이하는 방법으로 확장하는 것은 우려스럽고 유감스러운 일이다. 트롯을 국악과 사촌격인 것처럼 생각하는 젊은 국악인들 역시 국악과 트롯 음악은 전혀 다른 DNA임을 인식하고, 잠시 잠깐의 화려함에 취하지 않아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 젊은 제자들에게 뻗친 마수를 보고도, 이들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는 처지 때문에 쓴소리 한 번 못 하고 눈감아주는 국악계 어른들의 대오각성이다. 더불어 젊은 국악인들이 맘 편하게 공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많은 무대를 만들어주는 정부와 국악계의 지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인다. /김문성 국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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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19 15:35

‘테스 형’이 이겼다

곽병창 우석대 교수 한때 나훈아와 남진이 숙명의 라이벌이었던 적이 있었다. 하나는 부산 출신의 거칠고 가난한 터프 가이, 하나는 목포 유지 집안의 귀공자 같은 미남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때는 바야흐로 이른바 통기타와 청바지를 앞세운 포크송의 물결이 대학가를 휩쓸어오기 시작하던 즈음이었다. 라디오나 TV와는 달리, 대학가에서 남진이나 나훈아, 이미자에 열광하는 이들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 당시 트로트는 적어도 대학생들에게는 너무 값싼 신파였고, 그 리듬은 촌스러운 뽕짝의 단순반복에 지나지 않았다. 적어도 트로트를 듣지 않는 것은, 그 시절 지식인들의 일종의 구별 짓기였던 셈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른바 민중가요의 시대가 열렸고, 그 다음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쏘아올린 X 세대 음악들이 청년들을 사로잡았다. 그리고도 세월은 한참 더 흘렀다. 그랬던 트로트가 최근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2020년의 트로트가 가히 부활의 경지를 선보이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원래의 트로트가 결코 가보지 못 했던 세계를 너무도 짧은 순간에 너무도 강력한 힘으로 열어젖히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 등장하는 트로트는 단순히 애상적이고 처량한 정서를 단조 위주의 유장한 가락에 얹어서, 꺾고 떨고 밀고 당기는 화려한 기교로 들려주는 노래 정도가 아니다. 때로는 격렬한 댄스와 어우러져 코믹하거나 섹시한 감성을 유감없이 드러내기도 하고, 때로는 오리지널 트로트보다 훨씬 진한 애상과 그리움의 정서를 표현하기도 한다. 최근의 랜선 콘서트에서 나훈아는 테스 형을 외치며 비뚤어진 세상을 향해 신랄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발라드, 랩, 판소리, EDM 등을 가리지 않고 주변 장르를 빨아들여 소화해내는 흡인력으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오죽하면 어떤 이는 국악과에 트로트 전공을 신설해야 할 판이라며 자조 섞인 푸념을 내뱉기도 한다. 트로트에 대한 이 모든 열광은, 오랫동안 이른바 B급 감성이라 불리던 것들의 총체적 반란을 상징한다. 누가 지었는지도 모르고 당연시하며 사용하던 B급이라는 용어에는 사실 매우 낡은 구별 짓기와 선민의식이 전제되어 있다. 지식인, 중산층이라 자부하던 이들이 즐기는 예술만이 A급이라는 생각, 클래식 또는 고전이나, 정전(正典, canon)을 둘러싼 오래된 권위의식이 만들어낸 시대착오적 언술이, 곧 B급 예술, B급 감성 등의 용어이다. 두말할 것 없이 서둘러 사라져야 할 단어이다. 지금 새롭게 세상의 전면에 나서는 대중들은 그런 용어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는다. 이제 대중은 클래식도 팝도 재즈도 즐길 줄 안다. 하지만 삶의 희로애락을 가식 없는 언어로 드러내고, 가슴 속 깊은 곳의 원초적 심성을 직설적으로 터뜨려주는 트로트를 내숭떨며 외면하는 이들을 지식인이라 우러러 보지도 않는다. 이런 판에 잘 늙은 노가수가 노래하다 쉬면서 세상 이야기 한 마디 한 걸 두고, 사이비 지식인, 위정자들이 되지도 않은 정치적 덧칠을 해대는 꼴이야말로 저급하기 짝이 없는 B급 상상력이다. 그의 신곡 테스 형을 두고 소크라테스를 오독한 것이라는 둥, ~형이라는 호칭이 가부장제의 유산이라는 둥 요설을 붙이는 일도 그다지 심오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 섣부른 지식인들이여, 함부로 분석하지 말고 겸허히 받아들이자. 바야흐로 대중의 시대이다. 그리고 그냥 테스 형이 이겼다. /곽병창 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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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12 18:06

서양미술, 인물 초상화의 역사

김선태 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 대부분 유럽 관광을 다녀온 사람들은 교회와 성당과 유명미술관을 필수 코스로 방문하고 수많은 인물화를 보고 온 것이 기억에 남을 것이다.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건축물과 실내 인테리어를 배경으로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 중에 종교화를 비롯하여 인물화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서양미술은 인물화의 역사이다. 이는 서양의 역사가 기독교와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인물화가 많이 제작되었던 반면에 조선시대는 화원화가를 선발할 때 산수화가 인물화보다 배점이 많았듯이 동양은 도가 및 자연사상이 주가 되는 사상적 배경에서 산수를 우위에 두는 가치관이 다르다. 평소 유명화가의 인물화를 화집으로만 보다가 미술관에서 원작을 감상한다는 흥분과 설렘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인물화가 주는 감동의 깊이는 풍경과 정물화하고는 다르다. 서양미술사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성화나 인물화는 부유한 고객의 주문에 의해서 당대에 가장 유명한 화가가 제작했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말하는 순수미술과는 거리가 멀고 시장의 논리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아카데믹한 인물화의 대가를 추천한다면 러시아 사실주의 화가인 일리야 레핀(1844-1930)과 미국 인상주의 화가인 존 싱어 서전트(1856-19250)를 꼽을 수가 있다. 일리야 레핀은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와 더불어 최고의 인민작가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인물 심리 묘사에 탁월함을 보였다. 현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학교가 레핀 아카데미 전신이고 사회주의 국가 화가들을 다수 배출한 곳으로, 국내 소수의 인물화 작가들도 단기코스로 레핀 아카데미를 수료한다. 여기에 비해 존 싱어 서전트는 아주 활달한 붓 터치로 부유한 상류층의 인물을 근사하고 우아하게 보이도록 그리는 천부적인 재능으로 마치 사진사가 인물을 촬영하듯이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당대에 최고의 인물화가임에는 틀림없다. 이들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에 일본제국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해방이후 월북한 서양화가 이쾌대(1913-1987)는 서사적이고 장엄한 화풍으로 한국의 미켈란젤로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인물화에 능했다. 서구적 화풍을 토대로 지극히 향토적이고 민족주의적 색채가 농후한 여러 명이 한꺼번에 한 화면에 등장하는 무리그림으로 유명하다. 요즘 인터넷 동영상에 실린 다양한 인물화 제작과정을 얼마든지 참고 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지만, 예전에는 유화 인물화기법서라고 해도 외국서적을 카피한 선명도가 떨어진 조악한 번역서 정도가 고작이었다. 본인이 대학 강사 시절 인물화를 지도하면서 홍보용 리플레까지 배포하고 인물 초상화를 주문받아 제작하여 경제적인 부분에 다소나마 보탬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내친김에 아이부터 노인을 대상으로 스케치부터 완성단계까지 유화로 그리는 인물화 제작 기법서를 2007년에 재원출판사에서 발간하여 지금도 인터넷 서점에서 판매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 근대화가 중에서 박수근 화백은 미군군부대에서 초상화를 주문받아 제작하여 생활고를 해결하면서 후대에 명작을 남겨놓았듯이, 화가들에게 작품이 밥이 되고 생활이 되는 것은 가장 현실적이고 매우 신성한 행위에 속하는 일이다. 해외에는 초상화 전문화가도 많고 권위 있는 인물 초상화 공모전만도 따로 열린다. 시대가 디지털기기로 손쉽게 찍는 사진을 선호하지만 오히려 손으로 그림 인물화는 더욱 더 그 가치가 빛날 것이다. 미술 판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서라도 인물 초상화 시장이 더욱 커지고 많은 젊은 화가들도 관심을 갖고 다양한 인물화가 제작되기를 바란다. /김선태 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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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05 16:19

모순이 거듭 겹치는 아이러니 양산의 시대

소재호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위렌이란 사람은 시(詩)를 아이러니의 화염이라 했다. 또 호프만 콤이란 사람은 시란 모순의 불꽃이라 했다. 두 주장은 서로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어서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하나의 시 이론으로 받아들인다. 이 말을 필자는 모순과 모순의 화해 쯤으로 변용(變容)해 보았다. 부딪치고 대질린 것들의 화융, 다른 속성을 지닌 것들의 통일된 본질 찾아가기 쯤도 이에 부합하리라고 생각해 본다. 그러므로 대립과 대칭하는 사상(事象)들이 조화와 합일로 나아감을 일컫는 말일 터이다. 이 때에 상기되는 말로 앙상블이란 말이 있다. 이 어휘는 음악에서 여러 악기가 중주되어 조화로운 화음을 낸다는 말인데, 조화의 의미는 예술에서 심경적정서적 통일을 뜻하기도 한다. 사회 관계에서도 앙상블은 매우 긍정적 개념으로 활용된다. 시가 아이러니의 화융이라 할 때,그 피사체 대상은 상상의 세계일 수도 있다. 모순된 미래 환상을 끌어다 대칭시키고 화해로 이끎을 말한다. 이에 비교하여 신문 기사는 현실을 직시하거나 현시적 사항을 적시하여 이를 널리 알리며 선목적 지향으로 변화시키는 데 사명이 있다고 보는데, 기사가 미래 예측 상황을 미리 끌어다 부정적으로 비판하고 있다면 이는 매우 불손한 악의가 숨어 있다고 본다. 신문 기사가 현실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이를 근거로 유추해 나가는 글이라면 그 문장이 아무리 미사여구로 또는 현학적으로 도배됐어도 화융을 분쇄하는 빌미의 악문일 게 분명하다. 모순을 치유하는 것이 예술이든 철학이든 그 본질면에서는 같다고 본다. 변증법적으로 말하자면 정반합(正反合)의 이론일 터이나 모순의 극복에 그 지향점을 두어야 마땅하다. 신문은 민중의 숨결이다. 따로 아가미로 숨 쉬는 그런 기사는 배척되어야 마땅하다. 자연 재해가 겹쳐 오는 양을 머피의 법칙이라 일컫는다. 그 재앙이 겹쳐 오는 현 시국을 인위의 그것으로 매도하는 것은 지성인들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우리는 미증유의 질병 코로나19 시대에 처해 있다. 이 땅의 예술도 이 환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전북예총이 행사하는 여러 발표도 무관중 비대면으로 치르므로 무한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관객 없는 예술이 얼마나 모순된 상황인가? 이 때에 영상 매체를 이용한 유튜브, 온라인 등의 방식을 끌어 쓸 수밖에 없다. 지금 전북예총은 그렇게 운영된다. 보수적 예술체계가 가장 진보로 비약하고 있는 셈이다. 모순의 극복일까 하고 생각해 보니 씁쓸한 입맛이다. 그런데 첨단 기술이 준비 단계에서 미숙했다고 혹독하게 졸속 추진으로 명명해 버린 경우는 몰상식에 가깝다. 도민을 위한 도민에 의한 도민의 예술이 우리가 선목적하고 공동선하는 공리적(共利的) 예술행사인데 무참히 가치 폄하를 선언해 버린 처사가 도민의 숨통을 코로나 마스크보다 더 심각하게 막는 처사이다. 졸속 추진된 예술 발표를 누가 시간 낭비하여 관람하겠는가? 거창하게 말하면 혹세무민인 셈이다. 와서 관람하면 좋으리라 여겨진다. 졸속 예술제인가? 그리고 유튜브로 보고 들으면 감동 받으리라 생각된다. 전북 예술의 발전된 모습을. 그리하여 이 삭막한 시대에 정서적 여유도 좀 찾기를 소망한다. 인류의 궁극의 삶 목적은 예술의 향유에서 그 이유를 찾아라 했다. 우리 예술이 미약하다면 창대하게 나아갈 수 있게 후원하고 응원도 많이 해 주면 좋겠다. 이 바람은 간절하고 또한 절실한 것이다. /소재호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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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28 16:07

코로나가 바꾼 국악 경연대회 풍경

김문성 국악평론가 투명 페이스 실드 마스크를 쓴 경연자가 앉아서 경기잡가 적벽가를 부른다. 박수도 없고, 관객도 없다. 마스크를 착용한 고수의 추임새와 충분히 긴 간격을 두고 앉은 심사위원들의 숨 꼴딱이는 소리만 간간이 흘러나온다. 지난 금요일 전주 소리문화관에서 열린 전주대사습놀이 풍경이다. 매년 잔치집같은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던 것과는 달리 매우 엄숙하고 조용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국악경연대회는 우수한 신인을 발굴하고, 국악인구 저변확대를 목적으로 실시하는, 주최 단체들 입장에서는 일년 중 가장 큰 사업이다. 전북지역에서는 매년 대통령상 상훈격을 가진 전주대사습놀이, 남원춘향국악제, 전주전국고수대회를 비롯, 전국 대회를 지향하는 수 십개의 가무악 경연대회가 열린다. 대사습놀이와 춘향국악제는 라이벌처럼 인식되면서, 경쟁적으로 판소리 명창을 배출하고 있다. 전국고수대회 역시 명고수 배출의 산실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전주, 정읍, 남원의 시조대회나 익산, 군산, 장수에서 열리는 경연대회도 최근 들어 전국적으로 권위가 크게 높아져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이러한 성장세에 제동이 걸렸다. 9월 12일 개최 예정이었던 남원 춘향 국악제를 비롯, 익산 대회 등 몇몇 대회는 국가방역에 일조하는 차원에서 경연을 취소하거나 무기한 연기하였다. 종목 특성상 고령자 출전이 많은 시조 대회 역시 정읍대회를 시작으로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되었다. 특히 시조대회는 관행적으로 관객에게 주류며 식사를 대접하는 등 마을 잔치처럼 운영해왔으나 당분간 이런 모습은 보기 어렵게 되었다.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대회들은 종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연을 치르고 있다. 전주대사습놀이 예선은 각 종목별로 날짜를 달리해 무관객 경연으로 치르고 있다. 이 때문에 두 달째 경연이 이어지고 있다. 본선은 10월에 열린다. 코로나19가 결선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벌써부터 관심사다. 그런가 하면 동영상으로 평가를 대체하는 대회도 있다. 유튜브 등에 영상을 찍어서 업로드하면 심사위원들이 영상을 보고 심사하는 방식이다. 다만 실시간 평가가 아니어서 부정적인 의견이 만만찮다. 현장성이라는 변수가 없어 긴장감이 떨어지고, 실수가 적은 영상을 업로드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평가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장점이 부각되고 있다. 좋은 실력을 갖고도 무대울렁증 때문에 대회 참여를 꺼리는 경연자들에게 유용한 평가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번 찍은 동영상을 재사용하는 경우도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세밀한 눈썰미가 요구된다. 이 모든 상황은 코로나19가 연출한 경연대회의 낯설은 풍경이다. 한편에선 경연대회 개최 자체를 문제삼기도 한다. 전국 단위 대회가 열릴 경우 타지역에서 방문하는 불특정 다수의 경연자와 심사위원들이 전염을 매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경연대회를 통해 성장해 온 국악계와 전북 문화예술계의 이익을 생각하면, 취소만이 능사는 아니다. 다만 전처럼 동시다발적이고 규모있는 방식은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경연 주최 측 역시 이런 점을 충분히 고려해 대회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가 내년까지도 유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니, 당분간 경연대회는 상당히 낯선 언텍트 방식으로 도민과 만날 것이다. 이러한 방식들이 전북 지역 경연 대회의 퀄리티를 높이며, 국악계를 선도할 수 있도록 그 어느 때보다 도민의 관심과 응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문성 국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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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21 16:16

공공재 또는 공공의 재앙에 대하여

곽병창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공공재(公共財, public goods)-. 백과사전을 보니 사유재, 또는 사적재(私的財, private goods)와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구성원 모두가 소비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재화 또는 서비스랍니다. 예술은 공공재일까요 사유재일까요? 오랜 논란이지만 둘 다라 말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결론일 겁니다. 원래의 출발이야 당연히 공공재의 성격이 아주 강했겠지요. 이른바 나랏무당 시절에는 예술행위 자체가 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일이었으니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담당자들 또한 한 부족,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지도자의 면모를 지닌 존재들이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점점 더 사적인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일조차 재화를 들여 사고파는 대상이 되어 갑니다. 당연히 예술가 또한 권세 있는 자들의 기호와 지원에 기대어 생존해야 하는 운명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막강한 자본주의의 논리 앞에서 예술도 시장에 적응한 예술과 그렇지 못 한 예술로 나뉠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된 것이지요. 가장 오래 된 예술행위인 연극, 무용, 음악 등이 시장의 논리 앞에서 무기력해진 것은 슬프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진실입니다. 그래서 다시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는 논리가 예술 공공재론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예술은 시장에서 매우 취약합니다. 특히 공연예술은 그 노동집약적 성격으로 인해서 산업사회의 수지타산을 맞춰낼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예술행위가 시장의 논리에 맞춰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런 예술행위야말로 재화를 생산할 수는 없지만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을 알고 있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만들어낸 게 관립예술단을 포함한 각종 지원제도들입니다. 국가가 공들여 준비하는 이런 지원제도가 없으면 상당히 많은 예술행위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예술에 대한 공적 부조제도는 그 자체로 예술이 공공재라는 사실을 웅변하는 증거입니다. 물론 예술계에도 어떤 공적 부조도 받지 않고 자생적으로 성공한 개인들, 단체들이 존재합니다. 대중예술의 스타들을 포함해서 그들은 누구보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 엄청난 재화를 창출하면서 국가경제에 크게 이바지하기도 하고 전 세계의 어려운 이들을 돕는 데 발 벗고 나서기도 합니다. 이처럼 어느 분야든 시장 적응력이 뛰어난 부분과 그렇지 못 한 부분이 공존하는 게 현실입니다. 하지만, 공공의 영역에서 헌신하는 예술가들을 나라가 나서서 지원하거나 예술 감상의 기회가 부족한 지역에 관립예술단을 세워 그 기반을 튼튼히 하는 일을 두고, 예술시장에서 잘 나가는 예술가들이 나서서 우리는 공공재가 아니라며 폄하하는 경우를 본 적은 없습니다. 치열한 예술시장에서 성공을 향해 매진하는 예술가들이 공적 영역의 예술을 경쟁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말할 것 없이 이 두 영역은 공존해야 합니다. 사적 재화의 축적에 몰두할 이들은 내내 재화가 주는 풍요를 즐기면 될 일, 조금 덜 벌더라도 공적 영역에 스스로를 던진 이들은 또한 그 일에 충실하면서 더 큰 내면의 기쁨을 누리면 되는 일입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공공재로서의 길을 열등한 이들이나 가는 길이라 폄하하면서, 그 일이 자신들의 사적 영역을 침범할 거라 우려하는 태도는 참 이율배반적입니다. 애초에 공공재가 될 리도, 그럴 의지도 없던 이들이, 공공의 안녕과 평화를 위하여 헌신하려는 이들을 조롱하는 것, 그것은 공공의 재앙입니다. 적어도 예술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디서든, 공공재는 못 될망정 공공의 재앙은 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요? /곽병창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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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14 16:21

한지 물성(物性), 세계미술계를 매혹하다

김선태 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 1980년대 초 한국 현대추상회화 중에서도 앵포르멜(주로 마티에르, 질감에 중점을 둠) 회화 발전에 상당한 역량을 발휘해 온 한지조형작가들은 대부분 한지 닥 펄프 작업이 주를 이루었다. 닥 펄프를 이용한 한지작업은 서구의 합리주의사상과 그 영향에 식상하여 한국고유의 사상과 얼을 담은 재료와 소재의 추구라는 공통된 숙제를 안고 있던 일련의 작가들에 의해 부활된 매체였다. 한지 닥 펄프 작가들의 공통점은 우리 고유의 전통인 한지를 사용하여 회화세계를 개척해왔는데 한지라는 재료의 다양한 조형실험을 통하여 회화매체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한지 닥 펄프의 질료적 물성을 끈질기게 탐구해왔다. 한지를 재료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라 명성과 부를 축적한 한국작가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들 공통점은 한지를 덧붙이고 두드려 인간의 동작을 형용하는 다양한 행위들과 더불어 한지와 닥 펄프의 특유의 물성을 충분히 효과적으로 끄집어내는 작업으로 세계 미술계를 매혹하고 있다. 유럽화단의 중심인 프랑스를 무대로 이진우(1959~) 작가는 한지를 겹겹이 붙여 한지 물성을 추구하는 조형작업으로 신체의 행위와 긴밀하게 결부되어 수십 겹의 한지를 붙이는 반복된 행위를 통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차세대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전광영(1944~)의 작품은 세계 미술시장과 아트페어에서 작품 한 점당 수억 원을 호가하는데, 그는 조각으로 자른 스티로폼을 고문서가 인쇄 된 한지로 감싼 뒤 무수히 많은 한지 조각을 픽셀처럼 화면에 촘촘하게 붙여 마무리한다. 백호주의로 유명한 호주 고등학생용 미술교과서에 동양의 대표적인 작가로 소개되어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고 주목받는 작가이다. 이보다 젊은 작가인 서수경(1977~)은 자존심 강한 독일에서 활동하면서 세오(Seo)라는 이름으로 통하고 있는데, 몇 년 전에 국내 모방송사에서 그녀의 성공 신화에 대하여 다큐로 방영된 적이 있다. 주로 전주에서 생산한 여러 가지 색 한지를 공수하여 물감처럼 사용하는데, 우리 시각으로 볼 때는 그저 한지를 북북 찢어서 여러 층으로 반복해서 붙인 한지 콜라주 작업으로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독일인의 눈에는 독특하고 새롭게 보였던 것이다. 세오는 독일 신표현주의의 거장 바젤리츠가 스승이기도하지만 독일 유명화랑 마이클 슐츠 갤러리에서 그녀의 독특한 작품성을 인정하고 전속작가로 받아들여 작품가격이 국내외시장에서 급등하여 블루칩 작가로 통한다. 물론 작품가격과 작품성은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 미술은 자본시장과 더불어 작품가격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예전에는 작가의 평가가 사후에 이루어진 반면, 현대에는 생전에 작품성을 인정받는 분위기이다. 이처럼 최근 한지를 이용한 한국작가들의 작업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고 현대미술에서 두각을 나타내 서구 회화재료인 유화와 더불어 한지 자체를 하나의 매체로 뚜렷이 인식하고 있다. 한지 물성을 최대한 살려 마티에르(질감)를 구축하는 것이야 말로 한국적 앵포르멜 회화의 백미이자, 한지는 단순히 재료적인 소재 역할을 뛰어 넘어 그 질료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한지를 질료적 가치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물성과 타 재료와의 차별성에 매료 되었다는 것으로 해석되고,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을 실감나게 하는 대목이기도하다. /김선태 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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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07 17:16

한국 전통 정원 하나 근사하게 축성하자

소재호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세계 어느 민족이든 구경거리 중에 자연적 절경을 가장 많이 선호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떤 통계를 보아도, 현장 경험을 통해 보아도 관광객이 몰리는 곳은 역시 경치 좋은 풍경인 것이 분명하다. 세계적 명소가 아닐지라도 어지간한 풍광에는 사람들이 몰린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금만 이름있는 관광지일지라도 엄청나게 몰려가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가계 재정을 기우리면서까지 여행을 즐기거나, 일컬어 효도관광이란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부모 섬김의 방편으로 여행을 보내드리는 경우도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정경이다. 무슨 기념 여행 등 이름만 요지가지로 붙여서 여행의 명분을 만든다. 그렇거니와 지자체마다 관광객 유인을 위한 볼거리 확충에 전념하는가 하면, 빼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갖추지 못한 곳은 인위적으로 절경을 조성하여 누리며 즐기는 곳도 많다. 사시사철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이름난 관광지가 전북 아닌 다른 지역에는 꼭 하나 이상씩은 축조되어 있다. 예컨대 순천만의 만국가 정원은 성공한 사례 중 하나이다. 늪지를 개발하여 수로를 끌어들이고 사시사철 제철의 꽃을 심어 벌.나비 모으듯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사찰이나 고궁 등은 한번 가면 두번 가지 않는데 순천만 만국가 정원은 철마다 찾게 되고 그곳에서 기호에 맞는 먹거리도 찾는다. 정원이란 대개는 자연 정경의 축소 모방형이다. 어느 나라든지 이름있는 정원을 찾는 사람들은 계절을 타지 않는다. 축소지향의 절경을 도시 지척에 두어 타지 사람들도 유인하거니와 우리들 힐링의 시공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차로 달려 한 시간 쯤 되는 거리에 관광 목표를 정하고, 아침 나절 느즈막에 출발하여 그곳에 도착, 적정한 곳에서 점심 사 먹고 구경 후,오후는 일찍 돌아와 월요일을 준비하는 그런 슬기로운 일상을 도모케 하면 좋을 성싶다. 산과 내가 배경하고 기화요초가 만발케 하여 생태계 요모조모를 꾸려 놓으면 자녀들과 더불어 자연 공부도 하고 즐기기도 하며 하루를 효용성 높이 누리게 다면 일석이조의 성과를 거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정원 축조에 입지적 조건 갖춤이 매우 좋은 곳이 우리 전북 내에서도 많기도 하다. 다도가 연결 된 선유도 근방, 남원 광한루 근처, 고창 고인돌 군락지나 선운사 근처, 전주 한벽루 건너 남고산성 근방, 부안 해변 근방 등등 얼마든지 좋은 절경 만들기 조건 충족지가 많은 것이다. 금상첨화로 유적지가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는지역은 관광벨트화가 용이하여 더 좋을 것이다. 익산의 국화 축제나, 정읍 구절초 축제도 성공 사례이나 그곳은 일시적이고 잠시뿐인 점으로 장기 전략은 못된다. 정원의 필수 갖추어야 할 제일 조건은 꽃을 많이 심는 일이다. 꽃은 악인도 좋아 한다. 노인들이 제일 좋아 하는 것 중에 꽃이 일등이다. 정원이 산천을 배경으로 하면 매우 좋다 했는데 인위적 조형물로 대체해도 좋을 것이다. 한옥마을 골목을 가로질러 실개천 하나 흐르게 한 것도 천재성이 돋보인 기획이었다. 범상한 일상에 예술 한 줄기 얹는 기발한 발상이다. 관광 자원은 철철이 다르게 변모하고 진화를 꾀해야 한다. 갈 떄마다 다른 하나씩 첨가될 떄 경이감이 솟는다. 관광은 곧 별난 것, 특이한 것, 경이로운 것 등을 찾아 감탄 감동하기의 수단이다. 그래서 울긋불긋 요란해야 한다. 관광 단지 조성은 예술의 집중 형상화이다. 또한 생산성 높이기의 첩경이다. /소재호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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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31 16:53

코로나19의 재유행 그리고 예술인 지원

김문성 국악평론가 긴 장마가 물러갔다. 소멸된 듯 부활하더니 전대미문의 물난리를 가져왔고, 도내 곳곳에 커다란 생채기를 내었다. 장마를 따라하듯 수도권 교회발 코로나19가 맹렬한 기세로 재확산 중이다. 우리 도의 방역에도 비상이 걸렸다. 코로나19의 재확산은 특히 예술인들에게 큰 고통을 주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예술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코로나19로 아파 죽는 게 아니라, 배고파 죽을 것 같다며 현 상황을 우려했다. 모처럼 공연계가 숨통이 트이나 싶었지만, 코로나19 재유행으로 블랙아웃이 장기화할 거라는 공포감에 예술인들이 동요하고 있다. 한 젊은 북잽이는 북채를 던지고, 구직 시장으로 뛰어들었다. 코로나19는 예술인들에게 뉴노멀 시대에 적응하라는 무거운 과제를 던져줬다. 비대면 온라인 스트리밍을 통한 공연이 단적인 예다. 더하여 공연마인드와 멘탈도 변화할 필요가 있다. 집단성이 중시되는 공연 대신 독주 혹은 소수 멤버 중심의 공연으로 대체하고, 관객 소통형 공연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올드노멀 시대에는 일청중, 이고수, 삼명창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듯 관객과의 소통을 화룡점정같은 가치로 여겨졌으나 지금은 무대 완성도에 집중하는 공연이 가치를 발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예술인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한다. 코로나 블루는 예술인들을 표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연 부재 혹은 관객 대신 공연장을 메운 카메라에서 오는 우울함이 상당한데, 이를 극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주도하겠다는 긍정적인 멘탈이 그 어느때 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하지만 생계곤란을 겪는 예술인들의 경우 멘탈 훈련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다양한 구제책이 나오고는 있지만, 예술인이 처한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 공연 지원외에 별도의 생계 지원이 필요함에도 공연 지원 위주여서, 좀처럼 어려운 현실이 나아지지 않는 것이다. 공연 지원의 경우 대부분이 대관료, 음향조명 임차비, 홍보물제작비 등 제작 실비로 소진되며, 정작 예술인들에게 쥐어지는 돈은 몇 푼 되지 않는다. 공연 지원이 생계지원 효과를 함께 내려면 제작 실비 중 예술인 창작 사례비를 최대한 확보해주는 방식이 필요하다. 우선 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장 대관료 면제 사업을 한시적으로 성격을 변화하여 위원회가 주요 공연장을 장기 대관하고, 해당 공연장을 예술인과 단체가 무료로 사용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가 비대면 우수공연에 한해 영상제작비를 무료 지원하는 것처럼, 비대면으로 전환하는 공연에 대한 영상제작비와 스티리밍 공간 확보를 지자체나 국가가 지원해주는 방식도 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창작지원금사업 수혜대상자 기준과 대상자를 일시적으로 넓히는 것도 방법이다. 현재는 예술인 가구원의 소득인정액이 기준 중위소득 120% 미만이어야 하는데, 한시적으로 이 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원사업 중 자부담 의무가 전제된 사업은 이를 면제해주며, 서울문화재단처럼 단체 대표나 예술인의 직접 사례비 지급이 가능도록 허용하여야 한다. 이러한 정책에 더하여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도민들의 예술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격려다. 코로나19에 긴 장마에 당장 배추값 인상을 걱정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국민과 국가가 예술을 통해서 위기를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받던 경험들을 상기시킨다면 이들 예술인에 대한 관심이 곧 코로나19를 극복하는 백신이고, 치료제로서 기능할 것이라는 확신은 지나친 허언일까? /김문성 국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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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24 17:07

비대면 시대, 대면예술의 운명

곽병창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연극은 대면예술이다. 좀 더 넓히면 모든 공연예술은 대면예술이다. 대면예술의 분질은 얼굴을 바라보며 의사소통하는 데에 있다. 이 의사소통은 공연자와 관중 사이만이 아니라 공연자와 공연자, 관중과 관중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그러니 대면을 자꾸 말리는 세상에서 대면예술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이런 기이한 세상을 예상이라도 한 듯이 몇 해 전부터 영국의 국립극장(NT)은 연극을 전 세계에 영상으로 생중계하는 기획을 선보여 왔다. 궁여지책이던 랜선 공연이 이제 주류가 되려 한다. 연극도, 공연예술도 비대면 예술의 시대로 진입해가는 것일까? 그래도 되는 것일까? 코로나 이전에도 이미 기술의 진보는 예술의 존재와 소통방식에 대한 새로운 숙제를 던져주고 있었다. 이른바 DNA(Data, Network, AI) 생태계의 도래에 맞게 예술분야에서도 이를 수용해야 한다고 등을 떠밀고 있다. 세계적인 공공극단인 RSC(Royal Shakespeare Company)가 디지컬 플랫폼에서의 몰입형 실황공연을 선보이고, 유명한 래퍼가 자신의 아바타를 내세운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치러내는 게 이제 그다지 놀라운 소식이 아니다. 기술의 힘을 맹신하는 이들은 그리스 연극에서의 makina (신들의 하강을 돕던 기계장치, 영어 machine의 어원), 원근법을 무대 위에 실현하던 중세의 극장, 리프트와 조명장치 등을 예로 들면서 역사적으로 연극이야말로 새로운 기술의 실험장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연출가, 감독들이 마땅히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무대어법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박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는 주장이다. 하지만 마키나도, 사실주의극장이나 리프트 무대도 모두 무대와 객석의 대면을 강화하는 장치였다. 지금 우리는, 기술이 무대로부터 관객을 떠나보내는 사상 초유의 상황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관객이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배우의 뒷모습과 숨구멍을 수십 대의 카메라로 속속들이 살피고 무대 바닥과 천정의 기계장치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현장 대면예술의 가치를 대신할 수 있을까? 공연마다 달라지는 관객의 반응, 상대 배역의 컨디션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는 배우의 숨결을 기계가 다 담아내서 전달할 수 있을까? 옆자리에 누가 앉아있는지에 따라 가라앉기도 들뜨기도 하는 객석의 오래된 생명력을 가상현실 헤드셋이 채워줄 수 있을까? 어쩌면 이런 물음에 대한 답도 기술은 금방 찾아낼지 모른다. 하지만 기술의 진보가 아무리 빨라져도 인간이 인간과 함께 교감하고 소통하면서 새로운 각성을 얻고 활력을 얻던 대면 예술의 소중함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제 세계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그 격변의 복판에 인류의 가장 오래 된 소통수단이었던 대면예술의 운명이 던져져 있다. 그런 점에서 대면예술의 담당자들이 다시금 되새겨야 할 덕목은 단순하고 자명하다. 본질을 잊지 않는 것, 인간이 또 다른 존재와 소통하고 공존하는 가장 원초적인 수단, 그리고 최후의 수단이 곧 대면예술임을 되새기는 일이다.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상상력과 첨단 기술을 잘 버무려서 더 나은 인간의 공동체를 만들어낼 대면예술의 미래를 궁리해야 한다. 콩기름 냄새와 배우의 땀 냄새가 뒤섞여 풍겨오던 오래된 소극장의 퀴퀴한 향기는 잊을 수 있다. 그럴지라도, 한 공간에서 함께 웃고 울며 궁극의 교감을 나누던, 그 찬란한 순간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곽병창 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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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17 16:20

초현실적 예술 공간, 전주시립미술관

김선태 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 요즘 트렌드로 도시재생 같은 리노베이션, 리모델링 같은 단어가 익숙하고 다양한 공간 재활용의 사례들을 무수히 많이 볼 수 있다. 세계적인 공간재생으로 성공한 프랑스 파리 오클레앙 철도의 종착역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인상파 거장들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오르세 미술관과 요새와 왕궁을 거쳐 미술관으로 재탄생한 루브르는 전 세계 관광 필수 코스이다. 2000년대에는 영국 북부도시인 게이츠 헤드 도시 재생 프로그램 일환으로 제분소를 개조하여 만든 발틱 현대 미술관이 재생 미술관의 바이블처럼 추앙받고 있다. 중국 북경 798은 본래 경공업 단지로 점차 폐업하면서 수많은 화랑과 작업실이 밀집되어 중국 현대 미술의 아이콘이자 예술 단지가 되었다. 중국 상해의 모간산루 역시 방직공장이 쇠퇴하면서 순수 예술과 사진, 디자인,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까지 예술 중심지라는 명성을 유지하고 블루칩 작가들의 성지가 되었다. 국내에도 폐교, 양곡창고, 찜질방, 공장, 국가시설 등 다양한 장소가 리모델링되어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청주시 옛 담배공장인 연초제조창을 2년간 재건축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은 복합 문화공간으로 작품 수장고와 보존과학실을 일반인에게 개방하는 것이 특징이다. 버려진 찜질방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화성에 있는 소다미술관은 옛 찜질방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독특한 외관과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충남 당진의 아미미술관은 폐교를 멋지게 활용하여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서울 마포에는 국가시설인 석유비축기지 5개의 유류보관 탱크를 리모델링하여 공연장, 강의실, 문화비축기지 관련 전시관으로 개조하고 기존 탱크들에서 나온 자재를 재활용해 커뮤니티 센터로 사용하고 있다. 전북의 경우, 임실 오궁리 미술촌은 1995년 전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중견작가들이 폐교된 오궁초등학교를 교육청으로부터 임대 받아 전국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미술촌으로 꾸민 곳이다. 전주 팔복동 공업단지에 팔복예술공장은 1979년에 카세트테이프를 제작해 해외까지 수출하였던 쏘렉스 공장이 25년 동안 방치되어 있었던 곳을 리모델링하여 미술관과 작가 레지던스 공간, 야호 예술놀이터로 변신하여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전북 순창의 옥천골미술관은 양곡창고를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하여 기획전시와 어린이 미술교실, 청소년 미술아카데미, 미술전문가 초청 특강이 수시로 이뤄져 군민들의 미술문화 갈증을 해소해주는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한다. 전북완주의 삼례문화예술촌은 일제가 수탈한 쌀을 보관했던 양곡창고로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었으나 지금은 그 상처를 치유하듯이 예술복합공간으로 리모델링되어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방문하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완주군 소양면 송광사 가는 길에 위치한 산속 등대는 본래 제지공장이 문 닫고 방치돼 있었던 곳을 민간주도하에 예술공간으로 재생시킨 성공적인 사례이다. 앞으로 3년 후에 개관을 목표로, 현재 전주종합경기장 안에 있는 야구장을 리노베이션 하여 미술관으로 재탄생시키는 사업 용역발주와 포럼이 한창 진행 중이다. 야구장과 미술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대상으로 초현실주의 작가 달리의 작품 기법인 데페이즈망(전치, 치환)을 연상케 한다. 과연 그 두 개의 조합이 어떻게 미술관으로 재탄생 될지 많은 상상력과 호기심을 유발한다. 오래 된 거울을 닦고 문질러서 묵은 때를 걷어 내 환하게 비치게 하는 일처럼 도시재생은 낡고 쓸모없는 공간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듬는 것이다. 이처럼 시공을 초월한 초현실적인 아우라가 물씬 풍기는 전주시립미술관을 기대해본다. /김선태 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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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10 16:33

국민 여론의 통합은 교집합의 확대로부터

소재호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회화 작품을 평하면서 대칭과 조화라든지, 변화와 조화라든지 하는 언설을 가끔 들었다. 대립과 대조와 대칭은 한 개념의 상관속으로 묶이는 어휘들이지만 큰 카타고리 안에서 전체 속 N분의 일로 유기적 기능을 하는 바, 조화에 응분한다는 이론이다. 그 각각의 소재들(질료들)은 상호간 철저히 조화하여 한타랑의 큰 그림으로 정채精 彩를 빚어서 아름다움의 궁극에 이른다고 말한다. 미술에서 보색 관계는 이를 극명하게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는 현상이다. 한편 완벽한 대칭보다 아주 미소한 비대칭이 미적 형상화에 더욱 접근한다고도 말해진다. 일컬어 황금비율이라는 화두가 이에 준하는 논거이다. 대칭이 조화로 연계해 나감에 있어서 변증법적 이론이나 양자 절충론으로 상황 진행을 꾀한다면 진정한 조화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양자를 넘나드는 통섭統攝,通涉의 상황이 차라리 바람직한 진화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몇몇 지인들끼리 모여 대화하는 중에 정치 이야기를 화제로 올릴 경우,당신은 무슨 신문을 구독하느냐 고 예비 질문을 먼저 던진다. 가령 J신문을 구독한다거나, H신문을 구독한다하고 하며 성향이 나뉘면 바로 이는 야당 지지자냐 여당 지지자냐로 대번에 정치 성향이 구분 되고 만다. 그때에 양자들은 정치 이야기는 바로 건너 뛰고 다른 공동 화제를 찾아 소위 교집합의 상호 교감의 단계로 넘어간다. 종교 이야기도 이렇듯이 성향 간파 후에 다른 대화 단계로 접속한다. 이러저러한 경우들을 목도하며 우리 국민들의 슬기로움과 문화적 성숙도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수많은 종류의 종교들이 한반도에 범람하였어도 종교간 대립이나 분쟁이 없는 바, 우리 민족의 수월성이 경이롭기까지 한다 . 이러한 화법에 입각하여 서로 공감 공명하는 담론만을 골라 이를 중심에 두고 상호 정리를 도탑게 쌓아가는 우리 자신들을 대견스럽게 생각해도 좋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교집합이란 상호간 공통의 성질, 동질의 속성 등이 함꼐 맞물리는 분량의 집합을 일컫는다. 한편 한쪽의 이질성의 사물로 다른쪽 이질성에 등식을 지울 때, 이에 교차 칭하면 이를 상징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을 일컬어 짐승이라 칭했다면 짐승은 그 사람에 대한 상징어이다. 상징성은 진화한다. 그러니까 교집합의 차츰 확대를 의미한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아니 자연의 현상들은 상호 물들거나 상호 번짐으로 중화에 나아간다. 이는 융합이라거나 교화라고 이를 수 있을 것이다. 푸른 색과 노란 색이 융합하면 초록이 생겨난다. 초록은 생명의 빛깔이다. 두 색은 서로 물들거나 번졌을 것이다. 조화하면 상생한다. 또는 높은 가치로 승화한다. 우리 민족에게 가장 큰 대립적 상황은 남북 대치이다. 그런데 개성공단 마련은 두 이질적 집단의 맞물리는 지점, 곧 공동 이익 창출의 교집합인 셈이다. 멀리 평양과 서울의 간격이 넓다하여도 한 수돗물을 마시던 개성은 민족 공동체를 찾아나서는 교집합이며 이 확대로 결굴 붉은 색과 푸른 색이 만나 예쁜 보라색을 만들고야 마는 것이 아니겠는가. 멀리 신라시대 최치원 선생은 유뷸선을 통합하자고 주장을 편 시절이 있었다. 조선조에 서산대사도 유.불.선의 삼교 통합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멀고 먼 종교도 그와같이 통합의 기운을 솟게 한 선각자가 있었던 바, 현대의 이념 따위가 엉뚱하게도 민족 통합을 막는단 말인가. 개성공단을 열이고 백이고 늘려가면 언어가 먼저,다음 사상이 뒤쫒아 서로를 교화할 것이다. 불근 색으로만 고집하고 집착하는 무리가 있다면 그들은 영원히 보색을 찾지 못할 것이다. 홀로 독존하기란 우주적 이법이 아니다. 서로 번지며 서로 물들자.그리하여 신성하고 신비한 생명의 빛을 창조하자. /소재호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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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03 16:03

전북 판소리, 더 높은 비상을 꿈꾸려면

김문성 국악평론가 부산의 한 방송사 간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판소리 명창 이화중선(李花中仙. 1898~1944)에 대해 인터뷰하고 싶다고 했다. 이화중선 특집 방송을 준비중이라고 했다. 인터뷰 내내 의문이 들었다. 왜 부산에서? 그것도 춤이 아니라 판소리를? 자신을 이화중선 매니아로 소개한 간부는 전북이 부럽다고 했다. 전북을 한 번 씩 다녀갈 때면 판소리 싹을 틔우는 지난한 작업에 좋은 기를 얻어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전북하면 판소리를 으레 연상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전북은 타지역과 달리 민관 모두 판소리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유별나다. 그래서인지 특정 유파가 득세를 보이는 서울이나 광주, 전남, 영남 지역과 달리 전북에서는 정정열제, 만정제, 동초제에 보성소리와 동편소리까지 다양한 판소리가 공존하며 성장하고 있다. 판소리 지방문화재 보유자 수도 타지역을 압도한다. 하지만 내실면에서 빛좋은 개살구라는 비아냥성 평가가 의외로 많았다. 적어도 올해 초까지는 말이다. 그 근거로 몇몇 전문가들은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보유자 즉 인간문화재 숫자를 들었다. 초대 인간문화재 김소희, 김여란 명창 이후 강도근, 오정숙 명창을 제외하면 전남, 광주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특히 근 십 여 년 동안 전북 출신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안숙선 명창조차도 판소리가 아닌 가야금병창 인간문화재로 되어 있으니, 그러한 비아냥에 이렇다 할 반론을 내기가 어려웠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문화재청이 남원 출신 이난초 명창과 전주에서 뿌리내린 김영자 명창을 각각 흥보가와 심청가 인간문화재로 인정하면서 이러한 비판은 수그러들게 되었다. 순차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수궁가, 적벽가에서 추가 보유자가 나올 것이라는 희망도 갖게 된다. 물론 판소리를 단순히 인간문화재 숫자의 많고 적음으로 평가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소리꾼이 맘 편하게 소리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 판소리 향유 층의 존재, 이것이 판소리를 평가하고 이해하는 바로미터여야 한다. 또한 최근 미스트롯 출신 송가인을 통해 증명되었듯, 스타성을 가진 인재의 배출이 중요하다. 더하여 판소리 역사를 제대로 알리는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도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타지역을 압도하는 공연 인프라, 공연장을 꽉꽉 메우며 추임새를 맞추는 열성적인 팬들 그리고 관의 지속적인 후원은 전북 지역이 왜 판소리에서 강세를 보이는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척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력있는 인재 배출을 위한 환경은 매우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한때 세 개의 국악과를 보유하였던 전북지역 대학 중 현재는 전북대만이 국악과를 운영하고 있다. 예고 출신 우수한 국악 인재들이 타지역으로 유출되고 있는 것이다. 판소리 역사를 알리는 일은 어떠한가? 이화중선은 미안한 말이지만 송가인과는 급이 다른 대스타였다. 그래서 전설이라는 평가가 붙는다. 이화중선이 있었기에 김소희-안숙선으로 이어지는 전북 판소리의 중흥이 가능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화중선의 삶에는 가정법과 추측이 난무하다. 이화중선이 살다간 오수 구시장 내에는 그 흔한 표지석 하나 없다. 전북이 명실상부한 판소리 성지가 되기 위해서는, 제2, 제3의 이화중선, 이난초, 김영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시 신발끈을 동여맨다는 심정으로 배출부터 관리까지 시스템 전반을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김문성 평론가는 이북5도 문화재위원, 충남도 문화재전문위원, 예경 평가위원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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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27 16:24

침묵의 무게

곽병창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모름지기 역사를 움직여온 존재들은 침묵하는 다수였다. 혁명가도 정치가도 그들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침묵하는 이들의 선택이었다. 그들은 한때 백성이었고 또 어느 때는 민중(people)이었으며, 언제부터인가는 대중(mass)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이들은 이른바 정치가, 혁명가들이 아무리 부르짖어도 쉽게 응답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어느 순간이 오면 오랜 침묵을 깨고 저자에 나서서 세상을 뒤엎는다.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들은 대체로 선거를 통해서 세상을 응징하거나 보상한다. 하지만 이들의 선택은 종종 기대와 예상을 비껴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침묵하는 다수는 무섭다. 미디어가 우리 모두의 일상을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제는 예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온갖 수단들을 동원해서 중구난방 외치고 주장한다. 그렇다. 이제 저 많은 입들을 누구도 막을 길이 없다. 그리고 그게 민주주의의 위대한 열매이기도 하다. 누구나 말할 권리가 있고 누구나 주장할 수 있는 세상은 참으로 위대하다. 이 얼마나 오랜 고통의 열매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침묵하는 다수들의 존재를 종종 잊는다. 하지만 조금만 더 찬찬히 들여다보면 여전히 이 세상엔 침묵하는 이들이 훨씬 많다. 친일파도 독립군도 아니었던 이들, 좌도 우도 아니었던 이들, 한 번도 친*이 되어본 적이 없는 이들, 이들이 특징은 기다림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이들은 순간순간의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식민지와 전쟁, 독재정권의 칼날을 피하는 길이 그것뿐이라 생각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이들의 침묵을 본능적 보신에만 급급한 비겁한 선택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적어도 이들은 나라를 팔아먹고도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친일파는 척결되어야 하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독립운동가는 예우 받아야 하며, 어떤 명분으로도 전쟁을 일으키고 양민을 학살하는 자들은 나쁜 놈들이라고 생각한다.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여 약자를 괴롭히는 일에는 함께 분노하고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 돈의 논리로 희생되는 무수한 사람들을 연민하고 함께 아파할 줄 아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쉽게 외치지 않는다. 쉽게 판단하지 않고 섣불리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의 침묵이 세상을 외면하거나 방기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숱하게 목도해왔다. 거의 우리 땅에서만 가능했던 여러 차례의 무혈 혁명, 때로 거리를 메우며 흘러넘치던 거대한 환희, 애도, 분노의 순간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선거를 통해 조용히 그러나 묵직하게 드러낸 저들의 외침을 기억한다. 침묵하는 다수의 힘은 그런 것이다. 어떤 정치가의 허망한 자살을 두고 칼날 같은 말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세상엔 여전히 침묵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침묵이 방조이거나 무관심으로 보이는가? 그의 삶에 경의를 보내면서도 공공의 장례에는 반대한 이들, 잘못 된 문화, 약자를 보호하지 못 하는 구조를 혁신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치적 언사로 본질이 왜곡되는 것을 우려하는 이들도 많다. 이들의 침묵까지를 싸잡아서 또 다른 가해라며 몰아붙이는 이의 표정에서 깊은 절망을 느낀다. 진영을 넘나들며 세상 모든 사안의 판관을 자처하는 철지난 논객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설익은 생각, 절제되지 않는 논리로 세상을 현혹할 수 있다고 여기지 말라. 그대들 말의 날(刃)이 점점 날카로워질수록 세상의 침묵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그리고 침묵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곽병창 교수는 극단 창작극회창작소극장 대표, 전북도립국악원 공연기획실장, 전주전통문화센터 관장, 전주세계소리축제 총감독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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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20 16:39

아르누보 가치 실현, 전주공예품전시관

김선태 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 서양미술사에서 19세기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프랑스에서 출발하여 전 유럽과 미국까지 영향을 끼친 아르누보(Art nouveau)양식이 적용된 공예 운동을 빼놓을 수가 없다. 아르누보는 1900년에 열린 만국박람회를 통해 시대를 대표하는 공예와 디자인 양식으로 회화 영역에까지 광범위하다. 아르누보 운동은 자유롭고 아름다운 표현으로 수공예의 가치를 내세워 순수미술과 더불어 서양인들의 생활양식에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접목한 디자인을 유행시켰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이치가 그렇듯이 아르누보 공예운동도 공과 실 두 가지 양면성을 노출하며 아르데코인 모더니즘 양식으로 넘어간다. 산업혁명의 대량생산에 밀려 장인의 솜씨에 기초한 전통적 가내공업 수준의 생산 방식보다는 복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여 싸구려 공예품이 판을 쳤다. 이는 자본의 시대에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가성비를 최고로 여겼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르누보 운동의 가치인 장인의 혼이 담긴 공예품과 대량생산을 통한 이윤, 미적 가치와 실용성을 접목한 공통분모를 찾아내기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지만, 그 실천과 해답을 전주공예품전시관에서 찾고자 한다. 전주공예품전시관은 전통공예 장인의 숨결이 녹아있는 솜씨와 현대적 디자인이 잘 접목된 오늘날의 라이프스타일 가치를 담아내어 한국공예 산업의 기반 구축을 목표로 하는 곳이다. 전주시가 수공예 거점도시답게 지역 공예인들의 처우개선에 주력하고 있는 모습을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다. 먼저 현장의 목소리를 공예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간담회를 통해 공예인들과 소통하고 단체장인 시장이 직접 나서 공예인들을 챙기는 행보를 보여주어 전주공예인들의 자긍심과 공예산업 선순환구조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또한, 전주공예품전시관의 판매수익 배분율을 보면 타지역의 경우 60%인데 반해 전주 기반 공예품에는 77%로 책정돼 타지역 공예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판매실적 역시 전주 공예품이 상위에 랭크되어 수공예 중심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가고 있다. 다만 관주도의 정책이 물꼬를 트고 있는 가운데 전주 공예인들의 적극적인 상품 개발이 더해진다면, 그야말로 전주는 수공예 거점 도시로서 입지를 확고히 할 것이다. 이미 전주 수공예 상품이 세계적인 장인의 도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그 가치와 우수성을 뽐내며 해외 수출의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으며, 일본 수공예 도시인 가나자와와 더불어 세계적인 수공예 도시로 정평이 나있다. 올해 말까지 전주 공예인들에 대한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우수한 전주 공예인들을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한 전수조사를 진행하여 상품디자인, 경영개선 ,마케팅 등 맞춤형 서비스를 지원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아르누보 공예운동은 전통적 공예에서 현대적 산업디자인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현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전주공예품전시관은 아르누보 운동에서 중요시했던 전통공예 장인의 손의 회복과 쓰임새의 미학을 준수하면서 실용과 순수, 전통과 현대, 소량과 대량생산을 동시에 아우르는 한국공예의 산실이 되고자 한다. 그야말로 전주공예품전시관이 밀알이 되어 전주 공예인들의 공예품이 수공예 거점도시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그 어느 때보다도 역할이 기대된다. △김선태 원장은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했으며 전북관광문화재단 자문위원, 전북문화재 전문위원, 예원예술대 미술학부 교수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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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1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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