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충효동처럼 가마가 집중 분포돼 있는 것으로 미뤄 고창 용산리 연기 유적도 조선초 요업의 중심지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27일 고창 용산리 가마터를 둘러본 김영원 학예연구실장(광주박물관)은 분청사기와 백자가마가 혼재된 상태의 규모가 큰 도자기가마군이 발굴된 예가 드물다고 소개했다.
김실장은 고창 용산리 가마터에서 제작한 백자가 조선왕실에 진상됐거나 중앙관청에 납품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는 현자명 접시와 함께 ‘內資(내자)’등 인화문이 시문된 백자가 출토됐다는 것을 증거로 제시했다.
“현자명 백자는 광주 관요의 제품일 수도 있지만 고창 현지에서 만든 것중 품질 좋은 제품을 공납하거나 진상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설사 진상품이 아닐지라도 지역에서 광주 관요 제품과 똑같이 만들려고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점에서 특이할만 합니다”
김실장은 지난 97년 학예연구관으로 전주박물관에 재직할 당시 도내 도자기가마터를 조사, ‘전북의 도예지’를 발간한 도자기분야 전문가. 그는 고창 용산리 가마터의 기형이 독특한 것은 아니지만 분청사기와 백자, 흑유가 다량으로 출토됐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15세기 초반은 분청사기, 15세기 후반부터 백자 등으로 구분하는 것은 잘못된 연구입니다. 이번에 발굴된 유물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백자이면서도 분청사기 장식이 혼합된 형식이 보입니다. 15세기는 분청사기와 백자 양식이 혼합된 시기라고 볼 수 있어요”
백자에 분청사기 문양이 혼합된 사례는 일제시대 조사된 적이 있는 전남 함평 무안 유적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것이 김실장의 설명.
“공주 학봉리와 광주 충효동가마터와 함께 고창 용산리 가마터는 대규모 도자기 생산지로 주목받을만 합니다. 이와 함께 경기 광주 관요가 생기기전 중앙관요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도 발견된 만큼 보존가치가 충분합니다”
광주와 공주처럼 고창 가마터도 사적으로 지정돼 더이상의 훼손을 막아야한다는 것이 김실장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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