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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문석 문화관광부차관

 

 

1일 문화관광부 차관실에서 박문석 차관(55·사진)을 만났다. 지난 75년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27년동안을 문화분야에서만 근무해 다소 부드러울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만났으나 실제는 전혀 딴판이었다.

 

자그마한 체구이지만 인터뷰 내내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낼 정도로 괄괄했다.(그는 학창시절에는 완력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고 했다.) 또한 당당하면서도 자기관리는 철저하게 하는 등 성격이 무척이나 강인해 보였다. 반면 업무에서는 한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을 정도로 치밀했다.

 

문광부의 전체 업무를 꿰뚫고 있는데다 업무처리에서는 철두철미한 것으로 소문난 박 차관이 취임하게 되자 문광부 직원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거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격상 문화관광부와는 맞지 않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박 차관은 “제 자신도 한때는 시인이나 소설가를 꿈꿔온 문학청년이었다”고 답했다. 공무원이었던 부친의 반대로 문학에 대한 꿈을 접고 법대로 진학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문학에 대한 향수는 간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지금도 책읽기가 취미로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장서만도 5천여권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박 차관은 2년전 계간지 ‘오늘의 문학’을 통해 시인을 데뷔했다.)

 

시인, 소설가 꿈꾼 문학청년

 

이어 그는 “행시에 합격했을 때 고건 전 서울시장처럼 정통 내무관료가 되거나 경제관료가 되고 싶었다”면서 “그러나 부서배치는 그와는 전혀 다른 문공부(문광부 전신)로 발령났다”며 문광부와 연을 맺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한때는 후회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업무에 관한 한 철저하게 준비하고 연구했습니다.”

 

그는 “당시만 해도 호남출신들은 인사에서 철저하게 소외됐다”면서 “행시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했음에도 주요 보직을 맡지 못하고 변방으로만 떠돌게 됐다”고 당시 술회했다.

 

이후 그는 ‘나만의 전공을 갖춰 경쟁력을 키우자’며 ‘지적소유권’연구에 몰두했고, 20여년간 이 분야에 주력해 온 덕택에 최근 관련 저서를 2권이나 발간했으며, 이로인해 대학 강단에 서기도 했다. 현재는 ‘지적소유권’ 분야에 관한 한 국내에서 몇 안되는 권위자로 손꼽히고 있다.

 

“여기까지 배짱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동안 직원들의 질시와 모함 등 숱한 역경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당당하게 대처했습니다. 그 때문에 승진 등 인사상의 많은 불이익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정부부처에서 전북출신 장·차관이 여러명 배출됐지만 문광부에서는 박 차관이 전북출신으로는 첫 번째 차관이라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최근 문화산업과 관련된 ‘황금거위를 잡아라’라는 저서(8월10일 출간 예정)를 탈고하는 등 문화산업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는 그는 “전북은 전통과 문화 분야에서는 전국적으로도 경쟁력이 충분합니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화에 뒤진 전북은 문화로 승부를 낼 수 밖에 없다”면서 “그러나 문제는 누가 어떤 비전을 제시하면서 이끌어가느냐”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현실적으로 예향만으로는 힘들어 첨단산업을 끌어들여야 한다”면서 “시설이나 사업계획만을 너절하게 늘어놓는 것 보다는 영상산업 및 판소리 등 전통문화를 산업으로 접목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도내에서 실시되고 있는 일부 전통문화 시설 및 이벤트 사업이 알맹이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무분별한 난개발 허용 안돼

 

또한 그는 “전주는 난개발로 스카이라인이 사라졌다”면서 “전통문화산업으로 경쟁력을 갖추려면 더 이상의 무부분별한 개발을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이와함께 지역 관광산업 발전과 관련해 그는 “관광도 다목적 포석을 깔아야 된다”면서 “어느 한 지역만을 개발할 것이 아니라 군산·옥구·부안·남원 등으로 연결되는 관광벨트를 형성해 외지인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끝으로 박 차관은 “작은 힘이나마 고향발전을 위해 힘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한편 박 차관은 서천군수를 지낸 부친을 따라 이사하는 바람에 서천초등학교를 졸업했으나 ‘남자는 뿌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부친의 말에 따라 중학교때부터는 전주에서 학교를 다녔다.

 

술은 두주불사형이며, 한계수 현 전북도 행정부지사와는 친구, 김대곤 정무부지사와는 선후배사이로 가깝게 지내고 있다.

 

◇약력

 

△47년 남원 운봉
△북중-신흥고-고려대, 동 대학원 박사과정, 미국 프랭크린피어스로센터
△행시 16회
△동국대 법대 강사
△문공부 종무행정과장, 문화부 저작권·예술1과장, 주 뉴욕한국문화원 문화관, 국립중앙도서관 지원연수부장, 문광부 문화정책국장, 기획관리실장·종무실장
△저서:뉴미디어 시대의 방송과 저작권, 멀티미디어와 현대 저작권법

 

 

 

김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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