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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세한도정신 - 이규일

이규일(미술평론가)

이번 겨울에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호남지방은 50년만에 기록적인 폭설로 달갑지 않은 겨울을 보내고 있다.

 

게다가 예년에 비해 날씨까지 몹시 추워서 그야말로 몸과 마음이 얼어붙은 겨울이다. 고통받는 이웃이 많지만 그래도 눈은 겨울의 꽃이 아닐 수 없다.

 

내일이 입춘이다. 봄을 부르는 눈밭에서 추위를 의연하게 버티고 있는 소나무 ? 대나무 ? 매화나무를 우리는 예부터 세한삼우(歲寒三友)라 일컬었다.

 

늘푸른 소나무는 불변을, 곧고 꼿꼿한 대나무는 절조를, 혹한을 이겨낸 매화는 청향(淸香)을 자랑한다.

 

이 세한삼우는 동양화에서 그림소재로도 각광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1974년에 국보 180호로 지정된 추사(秋史)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세한도> (종이에 먹, 23.8x70.5cm)는 우리에게 몇가지 교훈을 전하고 있다.

 

<세한도> 는 겨울 추위속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의젓하게 서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황한(荒寒)과 적막가운데 고고한 풍모를 살린 <세한도> 는 그림이기 이전에 추사의 심경이 그대로 살아 숨쉬는 귀양지 풍경이기도 하다. 갈필을 사용한 간결한 필의와 전예(篆隸)의 필법이 가해져 자연미의 고담한 맛과 화면을 추상화한 구성이 돋보인다. <세한도> 를 그린 취지는 발문으로 쓴 글에 잘 나타나 있다. 추사의 제자인 우선(藕船)이상적(李尙迪)이 중국에서『대운산방문고통례(大雲山房文稿通例)』,『황조경세문편(凰朝經世文編)』(120권)등 많은 책을 사보낸 것을 받아보고 그두터운 정에 감복하여 1844년, 귀양지 제주도에서 그린 것이다.

 

추사가 쓴 자제(自題)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세상 사람들은 권력이 있을 때는 가까이 하다가 권세의 자리에서 물러나면 모른 척 하는 것이 보통인데 내가 지금 절해고도(제주도)에서 귀양살이 하는 처량한 신세 인데도 우선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름없이 생각하여 이런 귀중한 책을 만리 타국에서 부치는 그 마음을 무어라고 표현해야할 것인가…. 공자는 ‘추운 철이 된 뒤라야 송백(松柏)이 푸르게 남아있는 것을 볼수 있다’하였으니 잘 살때에나 궁할 때에나 변함없는 그대의 정이야 말로 바로 ‘세한송백’의 절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고 자신의 처절한 심정과 우선에 대한 고마음을 적고있다.

 

이는 오늘날 이해에따라 조석으로 변하는 우리사회의 얄팍한 인심을 경계하는 금과옥조(金科玉條)가 아닐까…. 이 <세한도> 는 일제 강점기에 경성제대 사학과 교수였으며 추사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지즈까(藤塚?)의 손에 들어 갔다가 2차대전 말기에 서예가 소전(素?)손재형(孫在馨)의 정성으로 조국의 품에 돌아온 것이다. 1944년, 종전을 한해 앞둔 토쿄는 연일 공습으로 아수라장 이었다. 소전은 폭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후지즈까 교수집 근처에 여관을 얻어 진을 첬다. 그때 후지즈까는 노령으로 병석에 누워있었다. 소전은 매일 아침 찾아가 문안 인사를 올리고 되돌아 왔다. 이렇게 하기 90일째 되던 날에야 후지즈까는 소전의 속셈을 헤아리고 큰아들을 불러 그앞에서 “내가 죽거든 조선의 손재형에게 아무 대가도 받지말고 <세한도> 를 돌려보내라”고 했다. 유언이나 다름없는 이말을 듣고도 소전은 서울로 돌아오지 않고 열흘동안 문안을 더드렸다.

 

일백일째 되는 날 비로소 후지즈까는 “전화(戰禍)속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여기까지 찾아온 성심을 저버릴 수 없어 선비체면으로 그냥 주는 것이니 부디 잘 모셔가라”면서 <세한도> 를 내놓았다. 소전은 귀국 즉시, 33인의 한분인 위창(葦滄)오세창(吳世昌) 어른께 달려가 <세한도> 를 찾아왔다고 보고했다. 위창은 이자리에서 “전화를 무릅쓰고 사지에 들어가서 우리의 국보를 찾아왔노라”는 내용의 제발(題跋)을 <세한도> 에 써 넣었다. <세한도> 에는 추사가 작의(作意)로 밝힌 변함없는 사제의 정과 공자가 말한 송백의 절조, 그리고 소전이 그토록 우리 문화재를 찾고자 노력했던 애국심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규일(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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