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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축구의 세대차이

김상용 시인의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 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삶의 의미를 한 마디말로 표현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이를 웃음으로 대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는 스포츠 관련 기사에서 전투적인 표현을 자주 접한다. ‘적군’과 ‘아군’으로 표현하던 시대는 갔지만 아직도 ‘폭격’이니 ‘용병술’ 등이 아무렇지도 않게 글제목으로 오른다.

 

월드컵 시즌인 요즈음 방송 해설자로 활동하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굴욕’ 관련 어록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를테면 하프 타임때 감독이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질문에 서슴없이 ‘후보 선수여서 잘 모르겠다’는 말을 해서 같이 해설하는 아버지를 난처하게 만든 일이 그 한 사례다. 아버지는 치열한 경쟁의 현장으로 축구경기를 기억하고 있지만 그 아들은 천진난만하게 축구를 마냥 즐기고 있는 모양이다.

 

이런 부자지간의 대담을 듣고 있으려니 1972년 뮌헨 올림픽이 떠오른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검은 9월달’이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를 습격해 모두 17명이 숨지는 비극이 일어났다. 그리고 북한 선수 리호준은 사격에서 우승한 소감을 묻자 “적의 심장을 겨누는 심정으로 쏘았다”는 발언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내면적으로야 어떤 생각인들 못 하겠는가마는 스포츠정신으로 따진다면 표적이 ‘적의 심장’으로 연상되는 선수는 분명 정상이 아니다.

 

한국과 프랑스의 새벽 4시 시합을 뜬 눈으로 지켜 본 사람들 중 일부는 선수들의 발놀림 하나하나에 자신의 감정과 혼을 싣는 과정을 되풀이했을 것이다. 마치 적국의 병사들을 물리치는 심정으로 말이다. 그런데 잔디구장에서 뛰는 대표선수들은 애인을 위해서, 동료를 위해서 아니면 더 사소한(?) 이유로 공을 찰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못한 설움도 있으련만 자신이 누벼야 할 잔디구장의 면면을 남의 일보듯 말하는 그런 청년이 낯설지 않아야 한다. 남의 불행이 내 행복이라는 단편적 사고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시를 완성시킨 시인의 심정을 헤아려 보는 것도 시를 감상하는 한 방법인 것처럼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며 경기를 즐기는 젊은 세대 선수들의 마음을 한 번 헤아려 보는 것도 경기를 관람하는 묘미를 더해주지 않을까 한다.

 

전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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