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규(행정공제회 이사장)
경영환경이 급변하면서 CEO의 역할 역시 큰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인문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조직 내에 창조적 영감을 부여하는 '감성경영'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창조적 CEO의 감성경영은 문학, 철학, 역사 등 인문학을 통해 상상력과 통찰력을 습득하고 이를 기업경영에 접목하는 것이다. 단기적 성과를 의식한 일시적이고 구체적인 통제나 지시보다는, 조직원 각자가 스스로 해보려하는 창조적인 기업문화를 만드는 것이 성공전략의 핵심이다.
내가 감성경영을 몸소 체험한 것은 지난 2003년 전라북도 행정부지사를 역임할 때였다. 그전에 국무총리실에서 28년간 28명의 총리를 모셨던 경험으로는 논리와 이성이 최고의 판단 기준이었다. 각 부처의 이견을 조정하고 제대로 된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치밀한 논리와 이성만큼 합리적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판단기준을 바꾸게 만든 동기는 바로 부안 방폐장 사건이었다. 당시 부안은 혼란스러웠다. 나는 이성과 논리를 바탕으로 도민들을 만나 방폐장 사업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방폐장 부지사'라는 별명을 붙여줬을까.
하지만 28년간 갈고 닦은 논리와 이성은 부안 주민들의 감성 앞에서 번번이 무너졌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훌륭한 비전도, 상대방과 정서가 공유되지 않으면 한낱 공염불에 그칠 수 밖 에 없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배웠다.
행정공제회는 내가 이사장으로 취임하기 전인 2006년, 주식과 채권 비중이 전체 자산의 65%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안정에 무게를 두다보니 급변하는 시장에 유연하게 대응하는데 어려움이 따랐고, 성장에도 한계를 보였다. 이를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임직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3개년 운영계획을 세웠고, 2009년까지 기업투자 30%, 부동산개발사업 20%, 주식 30% 등 투자 수익원을 다양화하는 내용의 발전 전략을 제시했다.
1년 반이 지난 지금 포트폴리오 조정은 긍정적인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기업투자는 LG카드, 대우건설, 미래에셋생명 등에 투자해서 기대 이상의 수익을 나타냈고, 판교중심상업지구, 아산역세권, 광명역세권 개발사업, 원주기업도시 등 자치단체와 윈윈 전략에서 추진한 지역개발사업도 빛을 발하고 있다. 또 글로벌 시대에 발맞춰 해외로 진출한 두바이 오피스빌딩, 미국 맨하탄 임대아파트, 라스베가스 호텔, 캄보디아 주상복합, 중국 쑤조우 오피스, 라오스 바이오디젤 투자 사업에서도 큰 성과가 기대되고 있다.
이같은 사업 다각화는 시장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지속 가능한 수익 창출구조를 마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다행히 이사장 취임 이후 1년 반 만에 행정공제회 자산은 2조4천억원에서 3조6천억원으로 50% 가량 늘어났다. 순익도 3배 이상 급증했다. 2007년 말 기준 직원 1인당 영업이익은 14.6억 원으로 국내 기업중 최고 수준이다.
이런 성과는 사람을 중심에 둔 감성경영의 결과였다. 조직원의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이 발휘되지 않았다면 이러한 계획은 청사진에 불과했을 것이다. 행정공제회 이사장으로 부임한 이후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조직원들과 어떻게 하면 꿈과 비전에 대한 정서를 공유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위에 상관없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고,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와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에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투자 사업이나 중요 사안은 정보를 공유하고 투명한 의사결정을 통해 결론을 내렸다. 많은 사람들이 반대한다고 해도 담당 팀장이 강력하게 추진의사를 밝히면 나는 팀장을 전폭적으로 밀어줬다. CEO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담당 팀장은 어떻게든 사업을 성공시켜야겠다는 의지에 불타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조직원들은 자연스럽게 이사장이 강조해 온 창의적 상상력과 사고의 유연성을 이해했고, 창조적 기업문화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갔다. 감성경영은 너와 나의 꿈이 다르지 않다는 조직원들의 공감대 형성이 그 기반이다. 상사와 부하가 서로에게 감동받을 수 있는 직장 분위기, 이것이 감성경영의 첫걸음인 것이다.
/이형규(행정공제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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