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전라북도교육청 교육국장)
오월은 안개처럼 피기 시작하던 황금빛 신록이 차츰 그 색을 진하게 물들여 산천을 푸르게 하는 계절이다. 노랑에서 초록까지 이어지는 나날은 꽃보다 아름다운 신록의 잔치를 펼쳐 보인다. 신록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오월은 또한 사람들의 정이 더욱 돈독해지는 달이기도 하다. 5월 5일,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까지 이어지면서 서로의 애정과 관심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행복으로부터 등을 돌린 청소년들이 있다. 현실이 고통스러워 자살을 생각하는 청소년들이다. 자살은 15~19세 사이의 3대 사망 요인 중 하나로 통계에 나타나고 있다. 청소년기의 자살률이 높은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청소년기가 갖는 특징을 먼저 든다. 청소년기는 신체적, 인지적, 정서적으로 급격한 변화가 진행되어 많은 혼란을 겪기 때문이다.
치열한 학업 및 입시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학교 폭력?왕따도 중요한 자살 요인으로 제기되고 있다. 성적과 관련한 갈등은 때로 청소년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기도 하고, 성적을 자신의 미래로 동일시하여 존재의 이유를 스스로 포기하기도 한다. '작은 철학자'로 불리는 청소년들 특유의 깊고도 변화무쌍한 사고의 폭이 영향을 준 탓이다.
그런데 청소년기 자살은 진짜 죽으려는 의도가 없다는데 그 특수성이 있다. 첫 번째 자살을 시도하고 실패한 청소년이 1년 이내에 자살을 재시도하는 비율은 10%에 불과하며 자살시도 후 한 달 정도 지나면 정상적인 일상 기능을 회복한다. 이로 보건데 자살을 시도하는 청소년들은 죽음에 대한 확고한 신념보다는 단지 현실의 고통을 회피하거나 주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 또는 복수를 위한 수단 정도로 인식한다고 보겠다.
잭 캔필드와 마크 한센의 작품 『내 영혼의 닭고기 스프』에서는 자살을 생각했던 아이가 자살에서 벗어나게 되는 과정이 나온다.
마크는 하교 길에 한 소년이 넘어지면서 들고 있던 책이며, 스웨터, 야구 글로브 등이 길바닥에 흩어지는 것을 본다. 반사적으로 달려간 마크는 소년이 물건 줍는 것을 도와준다. 그리고 짐을 함께 들어주면서 소년의 집에 도착할 때까지 대화를 나눈다. 소년의 이름이 빌이라는 것, 비디오 게임과 야구와 역사 과목을 좋아하지만 다른 과목들은 점수가 형편없다는 것, 얼마 전에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후 둘은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되고 고등학교까지 무사히 졸업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졸업을 앞두고 빌은 마크에게 말한다.
"그날 나는 사물함에 있는 물건들을 전부 챙겨가지고 집으로 가고 있었어. 집으로 돌아가면 자살을 할 생각이었거든. 그런데 너와 웃고 이야기하는 동안 만약 내가 자살을 한다면 다시는 이런 즐거운 순간을 갖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마크, 네가 길바닥에 떨어진 내 책들을 주워 주었을 때, 넌 내 생명을 구한거야"
자살을 생각하며 모든 짐을 싸들고 집으로 돌아가던 빌을 구한 것은 마크의 작은 관심이었다. 빌의 상황은 극단의 선택을 하려는 청소년들의 상황과 다를 바 없다. 만약 그들의 이야기를 누군가 들어주고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짐을 들어준다면 그들은 그 순간을 넘기게 된다. 한 생명을 구한다는 것은 거창한 일임이 분명하지만 그 실천은 아주 작고 미세한 관심에서 비롯된다고 하겠다.
우리 교육자들이 긴장해야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아이들의 고통을 살피고 이해하고 받아주어야 한다. 그리고 오월의 초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여름의 땡볕에서도 고통만이 아니라 얼마나 강렬한 삶의 에너지가 느껴지는지, 고민뿐인 세상인 것 같지만 그럼에도 세상이 왜 살만한 것인지에 대하여 얘기해줄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작고 세심한 관찰과 배려임을 잊지 않아야겠다.
/김영진(전라북도교육청 교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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