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기고] 우리말이 멍들어가고 있다 - 이강녕

이강녕(前 전라북도 교육연구원장)

 

최근 들어 보도되는 언론이나 광고를 보면 이게 정말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 질 때가 있다. 우리말이 원래 중국의 한자 문활르 받아 들인지 오래 되어 순수한 우리말보다 한자식 우리말이 많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것이 오랫동안 우리말로 익어져 거부감이 없이 써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시중에 눈에 비치는 광고나 대중적 언론에 접하다 보면 이게 고유한 우리 민족의 혼이 살아 있는지 의심이 갈 때가 많다. 이게 누구를 위한 오래의 유희인지 알 길이 없다. 비교적 식자생활을 한다는 층들도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서 외래어를 써야만 식자인척 그리고 현대적 인척하는 모습들이 그야 말로 꼴불견이다.

 

그렇다고 우리말로 이미 익어 버린 말들을 구태여 되찾자는 의미는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들이 흔히 먹는 '빵'이라는 식품은 원래 포르트 갈 말이니 순수 우리말은 아니지만 중국식 우리말로 '면포'라는 말로 바꾸자 거나 축구의 용어에서 코너킥을 북한식으로 '모서리 차기'로 되돌려 놓자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필자의 소견은 우리말도 많은데 꼭 외래어를 사용함으로서 보는 사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혼돈하게 하거나 난해하게 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보자. 정부나 지자체에서 새로운 시책을 내놓으면서 로드맵이라는 용어를 많이 쓴다. 이 말의 원어는 원래 road map으로 자동차의 도로지도를 의미한다. 이 말 대신에 우리말에는 청사진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이 무엇이 나쁜가. 흔히 정책 당국자들이 쓰는 클러스터란 말이 있다. 며칠 전 어떤 지방지에서는 '식품 클러스터 전략이 없다'는 제목이 중심 가사였다. 이 클러스터(cluster)란 말도 포도나 꽃 등이 송이를 이루어 있다는 말로 집단지, 또는 집단체 라는 의미이다. 이것도 말 그대로 '식품집단지' 또는 '식품종합단지'라고 쓴다면 어디가 덧난다는 말인가.

 

더욱 기관인 것은 영업장소를 개업할때 개업대신 오픈(open)을 쓰는 경우다. 식품도 오픈, 술집도 오픈, 무엇이던 새로 문을 여는 경우는 무조건 '오픈'이라는 용어를 무분별하게 쓰는 것을 보면 실로 혐오증까지 발동한다. '개업'이면 어떻고 '개장'이라고 쓰면 세금이 더 나가는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요사이 새로 개업하는 의원(醫院)을 보면 무슨 무슨 클리닉(clinic)이라고 표기한다. 물론 본인들이야 이 말을 잘 알 것이다. 그러나 대중은 모르거나 어렴풋이 짐작할 정도일 것이다. 사전에서는 이 클리닉을 '임상강의, 진찰실, 진료소'등으로 적고 있다. 그렇다면 액면 그대로 쓰면 정말 어디가 덧나는가.

 

지난 9월 26일 대법원 청사에 열린 '대한민국 사법 60주년 기념식'에서 한 지도자는 '국민의 신뢰는 인기와 여론이 아니라 오직 정의와 양심의 소리에서 나오는 것'이라면서 사법의 포폴리즘을 경계해야 한다고 언급한바 있다. 필자는 이 논리에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거기에 사용한 용어에 대해서 우리말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 포폴리즘(populisme)이라는 말은 1930년대에 일어난 프랑스 문단 한 유파의 주장으로 이를테면 진리와 정의와는 상관없는 대중주의의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말과 우리글은 우리가 지켜가야 한다. 우리말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한자 문화와 일제 지배 36년간의 영향을 받아 우리말에 한자식말과 일본식 말이 상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제도 늦지 않다. 오늘 시작하면 내일 시작하는 것보다 하루 빠르다. 우리말을 다듬고 가꾸어 사용하는 길, 이것 또한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이강녕(前 전라북도 교육연구원장)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익산[딱따구리] 불법을 감내하라는 익산시의회

문화일반[안성덕 시인의 ‘풍경’] 모닥불

사건·사고정읍서 외국인 근로자 폭행 신고⋯경찰 조사 중

금융·증권李대통령 “금융그룹, 돌아가면서 회장·은행장 10년·20년씩 해먹는 모양”

사건·사고고창서 방수 작업 감독하던 40대 추락해 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