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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바보 노무현의 삶과 죽음 - 김성주

김성주(전라북도의회 의원)

 

끊었던 담배를 15년 만에 다시 피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가 도착한 봉하마을회관 뒤뜰에 우두커니 앉아 피워 문 슬픔 위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바보 노무현! 평생을 바보로 살아온 그가 죽음도 바보로 맞이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전에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나선 여러 번의 선거에서 낙선했을 때에는 출간한 책 제목처럼 '여보 나 좀 도와줘'를 외칠 수 있었으나 이번에는 그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더욱 그를 좌절하게 한 것은 80년대 민주화를 위해 온 몸을 던졌고 90년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쓰라린 선거 패배를 자초했고 탄핵을 당하면서까지 이루고자 했던 정치개혁의 가치를 더 이상 내세울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으니 나를 버려달라'고 했다.

 

조금만 더 견뎌낼 수 도 있었건만 그는 바보처럼 외길 낭떠러지를 선택했다.

 

그가 스스로 몸을 던져 지키고자 한 것은 개인의 명예나 가족의 안위가 아니라 그가 평생 추구했던 시대적 가치였다.

 

2006년 8월, 인기 없는 대통령이라 찾아오는 이 없는 청와대에서 외로움을 달래던 그와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대선 때 희망돼지저금통 거리홍보로 기소되어 벌금형을 받은 사람들을 초청한 모임에서 노대통령은 지난 4년여를 회고하면서 권력기관도 중립화시키고 수출액, 외환보유고, 신용불량자 감소 등 경제지표도 좋아졌고 많은 일을 했는데 꼭 한 가지 이루지 못한 것이 있어 미안하다고 했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말하고선 이내 펑펑 울어버렸다. 장내는 모두 울음바다가 됐지만 당신은 '오랜만에 실컷 울었다'며 후련해 했다. 다행히도 우여곡절 많은 임기를 마치고 퇴임 후 고향으로 내려 간 첫 대통령으로 소박하게 살아가며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전직 대통령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말하면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 가장 비열하고 치사한 정권의 공격을 온몸으로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검찰은 두 달에 걸쳐 매일같이 모욕을 주면서 낭떠러지로 몰았다. 재임기간 내내 사이가 좋지 않았던 언론들은 사냥감을 만난 하이에나처럼 물고 늘어져서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안주삼아 씹어댔고 그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그도 다른 정치인과 다를 바 없다는 데 실망했고 그를 믿는 몇 안되는 사람들마저 '친노'가 찍힐까 두려워 침묵했다.

 

과거 독재정권의 고문이 물리적 고문이었다면 MB정부는 정치적 고문을 자행한 것이다. 잘못이 있다면 검찰은 기소하면 되고 사법부는 심판하면 되는 것이다. 개인이 인터넷에 글을 써도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처벌하는 나라에서 연쇄살인범의 얼굴도 친절하게 가려주는 인권국가에서 전직 대통령의 명예를 난폭하게 짓밟고서 고작 심문과정에서 예우를 했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고 변명한다.

 

전쟁터에서도 패배한 적장에 대해서는 정중한 예를 갖추는 법이다. 하물며 전직 대통령을 이렇게 궁지에 몰아넣어 죽음으로 내몬 잔인한 세상이 두렵다. 용산철거민 참사,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 등 MB정부 하 무수한 죽음의 행진에 전직 대통령도 피해가지 못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야만적인 일이 되풀이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이번 죽음은 정치적 고문에 의한 타살이다.

 

이제 그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소망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기고 떠났다. 그가 진짜 바보가 아니라는 것, 그가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줄 무거운 책무가 남겨졌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우리는 그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바보 노무현님! 이제 세상 걱정 놓고 부디 편히 쉬십시오.

 

 

/김성주(전라북도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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