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기고] 나금추의 상쇠가락과 부포놀이 - 이기화

이기화(전 고창문화원장)

 

우리 전북이 낳은 호남우도농악 천하의 상쇠 나금추의 쇠가락과 부포놀이 공연을 보고 전북농악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몇 가지 제언을 드리고자 한다.

 

근래 우리 전북지방에서는 호남좌도와 우도농악을 운위하면서 농악의 정통성에 대한 전승적 표방을 임의대로 자기 중심화하고 있는데, 이는 전통의 의의를 망각한 분별없는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전통은 모름지기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성을 가지고 규범적 의의를 지니면서 순수하게 승계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뒤범벅이 된 자기류를 어느 계보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엄청난 우를 범하는 예가 너무 흔해지고 있다.

 

좌도농악하면 조선중기 이후 전라도의 동부지역, 우도농악하면 서쪽 해안지방 등지에서 전승된 농악으로 금강 이남지역의 대체적으로 동ㆍ서 지역을 운위해 온 전통이다. 장단에 있어서도 좌도지역의 가락은 좀 빠르고 장중한 리듬이 기본이며, 우도지역은 아랫녁인 목포지방이 웃녁인 익산지방보다 좀 느리고 그 가락이 섬세한 편이다. 그 중간지대인 영광 고창지역의 가락이 '간이 제일 맞아 어간이 선다’고 전해오고 있다.

 

그와 같은 전통적 가락이 6·25전란 이후 마당놀이에서 무대예술로 전환된 농악의 연출은 이른바 자반뒤집기(제한된 무대위에서 연출되는 가진가락의 소고놀이 춤사위)의 새로운 묘기를 개발, 간간히 판소리와 민요까지 덧드린 포장막의 유랑극단을 본떠 맞춘 여성농악단으로 편제 구성하여 도시지역과 평야지대를 넘나들면서 짭짤한 재미를 보았다. 여기에는 좌우도의 특징가락이 뒤범벅이 돼 엄격했던 좌·우도가락의 개념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나 나금추만은 이런 와중에서도 자기중심으로 지켜 우도농악의 정맥을 잃지 않았다. 필자가 전북 문화재 전문위원으로 있던 1987년에도 국악부문 무형문화재를 지정할 때 나금추의 상쇠가락이 이동원(부안)과 백남섭(김제)의 영향으로 받아 우도농악의 뿌리인 영무장의 쇠가락과 부포놀이를 승계한 것을 알게 됐다.

 

장고의 명수 이동원과 소고의 명수 백남섭은 고창 성내 출신으로 1947년 경복궁에서 열린 제2회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특등상을 수상한 팀의 일원으로 그 무렵 고창 출신 상쇠 신영찬, 신두억, 박성근 문하에서 예능을 익혔으며 천하 절묘의 부포놀음을 배운 제자들이다.

 

그 당시 이승만 박사의 축하사절로 미국에 건너가 한국 농악의 절묘한 가락을 공연, 미국 조야의 열열한 박수를 받았던 세계적인 민속예술로 기억되고 있거니와 신두억, 신영찬의 부포놀이는 이제 나금추의 연맥을 통해 그의 제자들에게 유일하게 전승되고 있다. 이와 같은 세계유일의 부포짓이 지금까지 겨우 지방무형문화재로 정체되고 있는 현실은 우리 전북 민속 농악계의 한심스런 수치요 지방문화의 특성 활로를 잃은 개탄지사가 아닐 수 없다. 특히나 부포놀이의 외상피 놀음, 양상피 놀음, 사사위 놀음, 산치기 윗놀음 등 24가지의 기예는 전국은 물론이거니와 천하유일의 세계적인 기예로서 만방에 떨쳐질 전북 고유의 민속유산이므로 만시지탄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전라북도의 문화당국은 하루 빨리 손을 써서 문화재청에 제청하여 국가 무형문화재로 승격시키는데 만전을 기해주길 바란다.

 

/이기화(전 고창문화원장)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기획[팔팔 청춘] 우리는 ‘늦깎이’ 배우·작가·가수다⋯"이 시대에 고마워"

익산[딱따구리] 불법을 감내하라는 익산시의회

문화일반[안성덕 시인의 ‘풍경’] 모닥불

사건·사고정읍서 외국인 근로자 폭행 신고⋯경찰 조사 중

금융·증권李대통령 “금융그룹, 돌아가면서 회장·은행장 10년·20년씩 해먹는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