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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대중의 통일 의지 - 박성훈

박성훈(호원대 초빙교수·전 청와대 통일비서관)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여러가지 논란 중에 소위 "햇볕정책"이라 불리는 대북정책은 과연 그의 진실한 통일의지였던가 아니면, 국 내정치용 정략적 술수에 불과한 것이었던가. 어떤 것일까.

 

1993년 출범한 김영삼 정부의 대북정책은 많은 노력에 비해 지지리도 운이 따라 주지 않았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의혹을 야기하 여 말썽을 부리기 시작하더니 내내 긴장과 대결의 위기상황을 조 장하였다. 상황은 계속 나빠져 무력대결의 전운마저 감도는 위기 국면에 이르자 결국 1994년 6월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극적으 로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과 면담함으로써 획기적인 돌파구가 열리게 되었다. 중단되어 있는 미북간의 핵문제 협상을 재개하고 분단이후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자는 깜짝 놀랄만한 제안 을 받아 들고 나온 것이다.

 

한국정부를 농락하려는 북한의 상투적인 게릴라식 기습 제안이었으나 우리로서는 정상회담을 거부할 아무런 명분도 이유도 없었다. 통일부 등 관계 당국은 곧바로 정상회담 준비에 들어갔다. 초비상이었다. 매시간 전 세계 뉴스의 초점은 갑자기 들이닥친 남북정상회담 준비동향에 맞추어져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한편, 세상이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을 때에 동교동 자택에 앉아서 보도를 통해 지켜보고 있을 재야의 김대중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 당시 7월 7일 날짜로 발행한 모 시사 주간지에는 동교동 자택 마당에서 한가로이 새들에게 모이를 주 고 있는 김대중과의 장시간 인터뷰 기사를 싣고 있었다. 정치를 포기하고 조용하게 살고 있지만, 그의 통일 논리는 여전히 카랑 카랑하게 힘과 소신이 넘쳐흐른다. 평화의 소중함, 통일을 향한 전략, 민족 번영의 비전에 대해 그의 논리는 물이 흐르듯 일관성 을 보이고 있다. 남북이 서로에 대한 증오와 대결을 풀고 화해와 협력을 이루어 나가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정상회담이 꼭 필요하고, 그것은 통일문제 전문가인 김대중이 아니더라도 라이 벌인 김영삼이든 누구든 반드시 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누가 보 아도 당당하고 진실한 자세였다. 그때 김일성의 사망으로 정상회 담은 무산되고 말았지만 그로부터 6년 후 실제로 그는 노구를 이끌고 평양에 들어가 기필코 정상회담을 실천하였다.

 

과거에 서독이 처음엔 기독교민주당 보수정권하에서 패전의 잿더 미를 딛고 일어나 민주정치와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루어 냈고, 그 뒤를 이은 사회민주당 진보정권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 신있게 동방정책을 추진하면서 양독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했었 다. 동방정책은 냉전과 분단의 장벽을 넘어 용서와 화해와 신뢰 를 가져왔고 나치에 대한 악몽과 서독의 평화 공세에 대한 의구 심을 풀게 되었다. 동방정책이 시행된지 20년만에 독일은 통일 되었다. 그런데 정작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의 계기를 잡아 통 일의 대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낸 것은 동방정책을 추진했던 사 회민주당 진보정권이 아니고 그 뒤를 이어 다시 집권한 보수 기 독교민주당 정권이었다. 긴 역사의 흐름을 들여다보면, 앞으로 다 가올 미래에 대비하여 스스로 밑거름이 되거나 소중한 씨앗을 뿌 려놓는 선지자적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고 그 열매를 거두는 사 람이 따로 있다.

 

동족상잔의 상처를 안고 있는 남북이 서로 용서하기는 정말 어렵다. 그러나 용서나 화해 없이 역사는 한걸음도 발전하지 못한다.

 

일찍이 60년대에 일본을 용서하고 화해하면서 대외 개방의 문을 활짝 열어 오늘날의 눈부신 발전을 가져온 한국과, 아직까지도 하루도 빠짐없이 대미 대일 비난과 적개심으로 정권을 유지하는 북한의 낙후성이 바로 그 교훈이 아니겠는가.

 

지극히 어려운 민족 내부의 용서와 화해의 관문을 어떻게든 열어보려 했던 김대중, 그것은 그가 맡은 시대적 사명이었던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받았던 존경과 증오, 그래도 받은 존경과 사랑만큼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이루어 주고 싶었던 그는 진실했던 통일열정을 미완성으로 남기고 이제 우리 곁을 떠났다.

 

/박성훈(호원대 초빙교수·전 청와대 통일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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