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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역사 이야기] ②골프

연덕춘, 일제때 프로골퍼 첫 명성…스코틀랜드서 현대식 경기 규칙 유래

▲ 언제 어디서 시작됐나

 

골프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일단 다수설은 스코틀랜드이다.

 

하지만 '일정한 구장에서 정지된 볼을 어떤 도구로 쳐서 정해진 구멍(홀)에 넣는 게임'을 골프의 범주에 넣는다면 발상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 로마시대엔 깃털을 넣은 가죽볼을 막대기로 치는 '파가니카'라는 경기가 있었고, 영국의 '칸브카', 프랑스의 '주드메이유', 네덜란드의 '헤트콜벤'도 골프의 기원으로서 충분한 요건을 갖췄다.

 

더욱이 골프는 서양만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중국 원나라 '추환도벽화'에 냇물이 흐르는 들녘에서 4명의 남자가 게임을 즐기는 장면이 골프의 한 종류라는 '원나라 골프설'이다. 중국 명나라 '선종행락도'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출신 골퍼들을 중심으로 골프 규칙이 만들어 졌고, 현대 경기장과 장비의 틀이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스코틀랜드가 최소한 현대 골프의 개화기를 주도했다는 데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스코틀랜드 해안가는 모래땅에 초원이 발달해 자연이 선사한 최고의 골프코스를 제공했다. 특히 이곳은 공유지여서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고, 양떼들이 밟아 만들어진 길이 페어웨이로서 손색이 없었다.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현대 골프는 19세기 후반 신대륙까지 세력권을 확장했다. 1887년 미국 최초의 폭스버그골프클럽이 발족되었고, 20세기 들어 미국이 종주국 영국을 추월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1904년 미국의 월터 트래비스가 영국 아마추어선수권대회의 정상에 올랐고, 1913년 US오픈선수권대회에서 미국 위멧이 영국의 제1인자 바든을 꺾고 우승컵에 입맞춤하는데 성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의 독무대가 펼쳐졌고, 1970년대에는 '세계 빅 3'라는 호칭이 미국의 아놀드 파머, 잭 니클라우스를 비롯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게리 플레이어에게 주어졌다.

 

▲ 한국의 골프 역사

 

우리나라에 골프가 수입된 때는 1897년 무렵. 당시 원산항구에서 한국정부 세관관리로 일하던 영국인들이 인근 산지에 6홀로 구성된 골프장을 만들어 즐긴 것으로 알려졌다. 황해도 구미포에도 외국인 전용 골프장이 있었지만, 한국인의 출입을 막았기 때문에 규모는 외부에 누출되지 않았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도 일본에서 골프를 배운 후, 한국에서 가끔 라운딩에 나섰다.

 

일제시대인 1921년 조선철도국은 서울 효창공원 부지에 9홀 규모의 골프장을 조성한 이후, 1924년 규모를 18홀로 확장해 청량리로 이전했다. 이 골프장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골프클럽인 '경성골프구락부'가 탄생했다.

 

한국인으로서 프로골프에 뛰어들어 이름을 알린 사람은 연덕춘. 그는 일본에서 골프 수업을 받고, 일본오픈대회에서 패권까지 거머쥐는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우리나라에서 골프가 첫선을 보인지 100여년이 흐르면서 이미 대중화의 길을 걷고 있다. 전국 단위 유관단체만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한국시니어골프협회, 한국대학골프연맹, 한국중고골프연맹 등 성별 계층별로 세분화 되었고, 각 지역별로도 체육회 산하 골프협회가 설립되어, 전국체육대회 경기 종목으로까지 발전했다.

 

▲ 근대 이후 세계적 프로골퍼들

 

19세기 이후 세계를 무대로 활약한 프로골퍼는 영국의 존 볼, 바던, 테일러, 트레이(이상 남자), 마거렛 스콧, 파멜라 바턴, 발렌타인 등을 꼽을 수 있다. 미국에선 월터 헤이건, 보비 존스, 벤 호건, 샘 스니드, 아널드 파머, 잭 니클라우스(이상 남자), 패티 버그, 샌드라 헤이니, 조앤 커너, 낸시 로페스 등이 그린의 정상에 섰다. 물론 '골프 황제'에서 '밤의 황제'로 추락한 타이거 우즈는 현대 골프사에서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불멸의 업적을 쌓았다. 그는 1996년 PGA 신인상을 받은 이후 세계 골프계를 평정했다.

 

우리나라 선수로는 남자 부문 최상호와 여자 부문 구옥희가 대표적이다. 이후 박세리, 최경주, 양용은, 김미현, 박지은, 펄신, 송아리 등이 미국 PGA와 LPGA에서 세계적 스타 대열에 합류했다.

 

▲ 18홀의 유래

 

골프의 발원지인 스코틀랜드에서 초기 골프는 링크스(links:스코틀랜드어로 '해안의 모래땅')에서 이뤄졌다. 따라서 홀수의 명확한 개념이 없었다.

 

현대 골프장 코스는 18홀. 하지만 19세기말까지 골프장의 홀수는 정해지지 않았고, 자연 상태에 따라 들쭉날쭉했다. 당시 스코틀랜드 '프레스트윅CC'는 12홀이었고, '노스 베어위크'는 7홀, '몬듈즈'는 25홀이었다.

 

구장마다 다른 홀수는 골퍼들의 기량을 견주는데 상당한 불편을 주었다. 표준 스코어 계산을 위한 필요성이 대두되 가운데'로열 윔블던CC'를 중심으로 18홀이 정착되었다. 당시 로열 윔블던CC는 전반 10홀, 후반 9홀이어서 후반 9홀을 10홀로 늘려 20홀로 맞추려 했지만 부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전반 10홀을 9홀로 줄여 전후반 18홀을 한 라운딩으로 결정했다.

 

▲ 당신도 혹시 골프 중독증?…골프홀릭은 시대 초월한 현상

 

길거리를 걷다 자신도 모르게 바닥면의 라이를 살피면 당신은 골프 중독증을 의심할 정도의 골프홀릭(Golfholic).

 

'인간이 서서 하는 경기 가운데 가장 재밌는 것은?' 농담 삼아 시시덕거리며 건네는 질문에 대한 답은 골프이다. 골프의 재미가 다른 경기에 비할 바 없이 쏠쏠한 만큼 빛과 그림자도 극명하다. 최근 들어 골프가 자타가 공인하는 '공직자 잡는 운동경기 1순위'에 등극했지만, 이는 현 시대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시대를 뛰어 넘는 현상이다.

 

골프가 꽃을 활짝 피운 스코틀랜드를 통치하던 제임스 2세는 1457년 필드를 누비는 골퍼들의 열정이 도를 넘어 국방에 악영향을 준다고 판단, '골프금지법령'을 제정했다. 당시 병사들의 필수 기술인 궁술이 골프에 밀려 국방이 위태로울 뿐만 아니라, 신앙 생활에 방해를 준다는 것이 법령 제정 이유었다. 이 법령은 화약의 발명으로 궁술의 활용도가 떨어진 15세기 말에야 폐지되었다. 16세기엔 왕실마저 골프홀릭에 동참, 귀족들과 경기를 즐겼다.

 

17세기 미국에서는 클럽을 들고 교외까지 나가는 것도 귀찮아, 길거리에서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골칫거리 중 하나였다. 이에 따라 1659년 길거리에서 골프를 금지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취지문이 장관 이름으로 고시되기도 했다.

 

김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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