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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예찬] 정부의 텅 빈 리어카 - 백상웅

백상웅(시인)

한 여대생이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편지를 썼다.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ICL)의 국회 처리 무산을 비판하며 학비 때문에 대학을 쉬어야 하는 대학생들의 마음을 담은 편지였다. 이 글을 읽은 이명박 대통령은 친절하게 그 여대생에게 답장을 보냈다. '오래전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이른 새벽 청소 리어카를 끌었던, 제 젊은 시절이 생각났다.'며 대통령 자신의 눈물겨웠던 젊은 시절 이야기도 들려주면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으니 대통령으로서 미안한 마음 뿐이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대통령의 답장이 언론에 공개된 후, '취업 후 학자금 상환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순식간에 홈페이지도 만들어지고, 신청자를 받을 준비까지 끝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국회를 움직이게 했고, 세종시 문제로 치고박던 국회를 바보로 만들었고, 세종시 문제를 정치적인 소요사태로 만들어버렸다. 많은 대학생들이 학자금 대출 혜택을 받게 되었으니, 잘 풀린 것이 아니겠냐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하지만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는 이명박 정부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제도다. 겉만 반짝이고, 속은 비었다. 말과 행동은 재빨랐지만, 뒷통수를 쳤다.

 

수많은 대학생들이 '반값 등록금'과 '취업'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반값 등록금이라니! 그리고 취업까지 시켜준다니!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등록금은 오히려 올랐으며, 인턴으로 회사에 들어간 청년들은 쫓겨나기 바빴다. 학자금 대출을 받으며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은 이자를 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밤샘 아르바이트 때문에 성적이 F가 나오기라도 하면 다음 학기 대출은 물 건너 갔다. 이 대통령이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리어카를 끌면 등록금을 벌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어떤가. 학교 앞에서 몇 달 아르바이트를 해도 등록금은 커녕 방값도 건지지 못한다.

 

취업에 관련된 사항도 문제다. 대통령이 기업 CEO를 만난 자리에서 직접 취업 로비를 한다. 채용을 늘려달라며 청탁을 한다. 4대강 정책을 밀고가는 것과 세종시 수정안을 밀고가는 것의 속사정에는 일자리 문제도 있을 것이다. 그 일에 매달리는 기업과 하청업체는 당분간 먹고 사는 일에 고민은 크게 없을 테니, 대통령으로서는 일자리 만들기에 열중했다고 자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단순한 정책으로는 취업률은 올라가지도 않고, 경제도 살아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롤모델로 삼겠다는 두바이는 쓰러졌다. 창의적인 건축물과 창의적인 토목건설의 현장인 두바이에 창의적인 일자리가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4대강이 성공을 하고, 세종시가 성공을 하더라도 그것 뿐이다. 먹고 사는 일과 취업률은 여전히 문제가 될 것이고 언젠가 대한민국의 발목을 제대로 잡아버릴 게 분명하다.

 

나는 우리나라 사학재단이 정부보다 양심적이고 머리가 좋았으면 좋겠다. 학문과 교육을 담보로 돈장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정부보다 창의적이고 용감했으면 좋겠다. 리어카를 끌던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리어카에 무엇을 담을까, 고민했으면 좋겠다. 나는 우리나라 정부가 그냥 가만히 있으면 좋겠다. 힘이 없는 정부였으면 좋겠다. 그들의 손가락질 하나, 하나가 나라를 바꾸는 세상은 보기에 민망한 것 같다. 시민들이 바꾸려고 노력하다가 서로 다투고, 화해하고, 웃고, 울고 하는 세상이 멋져 보이지 않을까.

 

/백상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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