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변화는 작은 학교이기에 가능…학년 당 열명 넘기지 않을 터"
10㎡ 남짓 조그만 교장실의 문이 갑자기 열린다. 열 살쯤 됨직한 여학생이 고개를 빠끔히 내밀고 교장선생님께 말을 건다.
"선생님, 오늘 글씨쓰기는 몇 시부터 해요?", "오늘은 글씨쓰기가 없어요."
한 학생이 나가고 십여 분쯤 흘렀을까? 또 다른 학생이 불쑥 문을 열고 같은 질문을 던지고 같은 대답이 오간다.
"아이들에게 틈나는 시간을 이용해 경필을 가르치고 있거든요. 처음에는 애들이 귀찮아했는데, 삐뚤빼뚤하던 글씨가 나아지는 것을 스스로 느끼니까 이제는 먼저 찾아와요."
평교사로 지내다 지난해 3월 내부형 교장공모제를 통해 정읍 백암초에 온 임득순 교장(59)에게 학생들은 별반 거리감을 느끼지 않아 보였다. 간혹 교장실 내 소파에 드러누워 책을 읽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위엄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평교사로 업을 마무리하기에는 가르침에 대한 열정이 너무 컸을까? 임 교장은 교장공모제에 응모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가장 열악한 학교를 찾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연을 맺은 게 이곳 백암초. 은연중에 폐교로 가는 수순을 조용히 밟아가고 있던 시골의 작은 학교는 시설투자가 제대로 되지 않아 울타리 곳곳엔 '위험' 표지판이 걸려 있었고, 학생수는 해마다 큰 폭으로 줄고 있었다.
"처음에 농산촌 초등학교를 운영하는 나름의 원칙을 세웠죠. 한 학년에 10명을 넘기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 원칙은 사실 주변사람들에게는 시골 학교 물정을 모르는 교장의 허황된 꿈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한 학년에 학생이 고작 2명밖에 안 되는 학교가 학생수 10명을 넘기지 않겠다는 꿈을 품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하지만 꿈을 갖고 악착같이 일하면서 꿈은 서서히 현실이 돼가고 있다. 임 교장의 열정에 사람들은 조금씩 움직였다. 정읍시청과 지역교육청이 백암초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고 더불어 인근 학부모와 동창회 역시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도심 학교에서 부적응 때문에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백암초에 전학 온 뒤 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꿈의 실현에 가장 큰 힘이 됐다. 인근 정읍시 학부모들을 통한 일종의 '입소문 마케팅'이 시작된 것이다.
"도시 학교에 다니면서 정말 힘들어하던 아이들 두 명이 지난해 우리 학교로 전학 왔어요. 그리고 일 년이 지난 지금 애들이 몰라보게 변했어요."
'두 학생'이 "교장선생님 행복해요"라는 말을 했을 때, 임 교장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고 말했다.
임 교장은 "아이들의 변화는 작은 학교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며 "학년 당 열 명을 넘기지 않고, 불가피한 상황이 있어도 전교생을 70명 이하로 유지하겠다는 계획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이제 정년이 2년 반 가량 남은 임 교장은 퇴직 뒤 보육교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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