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할아버지 나라사랑, 뒤늦게라도 찾아드려 뿌듯"

광복절 앞두고 만난 항일운동가 배상일 옹 손자 배효갑 씨조부, 정읍군 일대서 '사천교' 창립활동 등 독립운동 적극 참여 / 항일운동 기록 찾는데 20년…사후 65년만에 애국지사 선정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영면하신 모든 독립 운동가들이 공적이 세상에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광복 67주년을 앞두고 만난 독립운동가 고 배상일 옹(1892~1946)의 손자 배효갑씨(66). 배씨는 조부의 독립운동 행적을 밝히기 위해 지난 20년 동안 전국의 도서관, 법원 등을 배회했다.

 

배상일 옹은 지난 1938년부터 전북 정읍군 일대에서 민족종교인 '사천교' 창립활동에 참여해 '조선건국단'이라는 비밀결사조직을 만든 뒤 함경남도 책임자로 파견돼 활동하다 지난 1941년 1월 강원도 춘천에서 검거됐다. 4년여의 옥고를 치른 그는 해방을 맞은 지난 1945년 8월에 출소했지만 옥살이의 후유증으로 1946년 3월 4일에 순국했다.

 

하지만 배 옹이 독립유공자로 등록되지 못한 채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지난 1950년 7월 정읍군 입암면사무소에서 발생한 화재로 면사무소에 있는 호적 등 모든 자료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후 입암면사무소는 호적을 다시 작성했고 이 과정에서 배 옹의 생년월일이 1889년 12월 13일로 잘못 기재됐다.

 

이 때문에 전쟁이 끝난 후에도 유족들은 배 옹의 독립운동 행적을 입증하지 못해 65년이라는 기나 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배씨는 "실오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할아버지의 이름이 나와 있는 문서는 모두 뒤졌지만 독립운동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라며 힘들게 보낸 지나간 20년을 회상했다.

 

배 옹의 독립운동 행적을 입증하는데는 지난 1942년 9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내린 판결문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판결문에는 입암면사무소에서 다시 작성한 배옹의 생년월일(1889년 12월 13일)과 다른 배 옹의 실제 생일(1892년 3월 23일)이 기록돼 있어 유공자 등록을 할 수 없었다.

 

배씨는 "모든 정황은 할아버지가 맞는데 단지 생년월일이 달라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무려 2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야 했다"라며 힘들고 지루했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그는 지난해 우연한 기회로 조부의 행적을 찾을 수 있었다.

 

지난해 3월 족보 재정리 작업을 하던 중 우연히 조부의 생일이 1892년 3월 23일이란 사실을 알게 된 배씨는 보훈처에 족보를 자료로 제출했고 후손들의 20여년간 노력 끝에 배 옹은 순국한지 65년이 흐른 지난해 11월 17일에서야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게 됐다.

 

또 지난 6월 6일에는 배 옹의 고향인 정읍에서 김생기 정읍시장, 후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배상일 옹의 애국지사 유공비 제막식도 열렸다.

 

배씨는 "영원히 묻힐 뻔 했던 할아버지의 나라사랑 업적을 뒤늦게라도 인정받아 자손으로서의 도리를 조금이나마 하게 된 것 같아 가슴이 뿌듯하다"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영면하신 모든 독립 운동가들의 공적이 국민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정엽
다른기사보기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완주‘모악산 웰니스 축제’서 힐링‧낭만을

장수장수군, 홍보대사 최재명 참여 홍보송 ‘장수좋다’ 제작

사건·사고허위 중고 거래 사이트 이용해 3억 4000여만 원 편취한 일당 송치

국회·정당정청래 "단계적 정년연장 국정과제 이미 반영…노동계 의견경청"

남원남원시, 전북도 ‘블루존 프로젝트’ 최종 대상지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