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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체가 된 대학생

대학생들 위한 복지는 창의적 인재 양성하는 큰 수익 기대되는 투자

▲ 정상석 전북대 경영학과 3학년
"우리학교는 고시에 관심이 너무 없다. 다른 학교가 200명 지원해서 20명 합격한다면 우리학교는 100명 지원해서 10명 합격하는 꼴이다", "고시 유입인원을 늘려야 한다. 이것이 곧 학교 위상을 올리는 길이다."

 

한 대학 커뮤니티에서 발견한 글이다. 아마 이 글의 작성자는 고시 합격률이 높아지면 자신이 취업전선에서 이익을 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 추측해보건대, 이 글은 고시생이 쓰지 않았다. 고시생의 눈에는 합격생 20명, 10명보다 합격자 명단에서 자기 이름을 찾지 못해 망연자실하는 180명과 90명이 눈에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일부 기성세대는 대학생들이 보수적이고 이기적이라며 지탄한다. 근거 있는 비난이다. 비인기학과가 사라져도, 학교가 개입해 총학생회 선거를 무산시켜도, 대학언론사 예산이 삭감돼 제대로 된 학교소식을 듣지 못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계산하기에 따라 오히려 좋은 일이다. 어떤 형태로든 대학평가 순위가 올라 취업에 조금이나마 도움 되겠거니 한다. 뭐가 됐든, 나한테만 피해 없으면 장땡이다. 예능 프로 「1박2일」에서는 이런 세태를 한 마디로 압축해서 풍자했다. "나만 아니면 돼!"

 

53년 전 이맘때쯤, 이 땅의 대학생들은 부정선거에 저항한 혁명을 이끌었다. 수만 명이 동참한 시위에서 수백 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부상당했다. 홍안의 선배들이 목숨을 바쳐 투쟁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고려대 4·18선언문이 기록했다. "학생이 상아탑에 안주치 못하고 대사회 투쟁에 참여해야만 하는 오늘의 20대는 확실히 불행한 세대이다. 그러나 동족의 손으로 동족의 피를 뽑고 있는 이 악랄한 현실을 방관하랴."

 

강산이 다섯 번 변했다. 세상은 진보했고 대학생은 보수가 됐다. 취업이 우선이라는 대학의 부채질에 끓어 넘치던 혈기는 차갑게 식어버렸다. 도서관 구석에 앉아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고 감동도 느끼지 못하는 고체다. 고체화된 청년들의 모난 가슴은 서로의 연대를 어렵게 한다. 어지간한 불의는 우리의 끓는점을 자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어쩌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선배들의 투쟁기를 들으면 생각한다. '그땐 취업걱정 없었으니까!'

 

심리학적으로 볼 때, 젊은 시기에 경제적 곤란을 자주 겪을수록 보수적 성격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한국 사회 대학생 다수는 등록금과 주거 문제에 시달리는 것이 일상이다. 취업률은 나날이 떨어져 간다. 당장 먹고 살 길이 요원하다. 투쟁이니 연대니 하는 단어는 토익 단어장에나 존재한다. 20대가 X새끼니 어쩌니 하는 어른들의 질타는 그들을 꼰대로 보이게 할 따름이다.

 

한국 경제의 앞날은 '상상력과 창의력이 경쟁력이 되는' 창조경제에 달렸다고들 한다. 창조경제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두고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 중심에 대학생이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창조경제는 창의력에서 시작한다. 창의력은 진보의 유의어다. 진보적인 대학생에게서 창조경제가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극소수의 대학생을 제외하곤 고체마냥 머리가 딱딱하게 굳었다.

 

그들에게서 진보적이고 창의적인 말랑말랑한 생각을 끄집어내는 방법은 안정적인 복지정책에 달려있다. 브라질 전 대통령 룰라는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을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이를 돕는 것을 '비용'이라 말하는가?"라고 말했다. 대학생을 향한 복지는 위험은 높지만 세상 무엇보다 수익이 큰 투자다. 그 투자만이 대학생을 사회 발전의 동력으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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