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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슬'을 보고

아무 죄도 없는데 정치 권력에 의해 희생 당한 민초들

▲ 김고은 원광대신문 편집장
독립영화 '지슬'이 관객 13만 명을 넘어섰다. '지슬'은 제주도 방언으로 '감자'를 뜻하한다. 이 영화는 흑백영화다. 한국말이지만 제주도 방언이 나오기 때문에 자막이 있는 영화다. 이 영화의 배경인 4·3 사건은 1948년 '섬 해안선 5㎞ 밖의 사람을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으로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 1이 희생된 사건이다. 해안선 5km밖은 사실 바다 밖에 없다고 한다. 즉, 제주도 주민들 대부분은 이념이 뭔지도 모르고 자본주의가 뭔지도 모른 채 그냥 죽으라는 소리다.

 

영화에서 나오는 몇몇 대사 중에는 "밥 쳐 묵을라믄 폭도들 목을 따오라고!", "근데 폭도가 있긴 한거냐"에서 사람들은 무지한 채 삶과 죽음이 오가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갈등한다.

 

마을 사람들은 동굴 속에 숨어서 군인들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감자로 버틴다. 이 안에서 오고가는 마을사람들의 대화 내용은 순수하기하다. '일제 총, 미제 총'을 두고 승강이하는 대목, 순덕이의 짝사랑 이야기, 제 목숨 위태로운데도 '홀로 남은 돼지 밥'을 걱정하는 원식이 삼촌의 대사에서는 웃음이 터지고 무동 어멍(어머니)이 불에 타 죽으면서 남긴 감자, 군인에게 유린된 순덕의 주검 옆에 놓인 감자를 보면서는 눈물이 흐른다. 제목이 '지슬'인 까닭이 여기 있을 것이다.

 

왜 힘없는 사람들이 권력의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을까? 라는 의문과 씁쓸함을 남기며 영화가 끝나고 제주 민요 '이어도 사나'가 엔딩곡으로 흐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쉽게 자리를 뜨질 않았다. 아마 영화가 주는 가슴 저린 감동 때문이었을 것이다. 관중들은 무언가 여운을 가지고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4·3 사건을 생각했을 것이다.

 

인권보다 이념이 중요했던 시대, 순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직 목숨을 지키기 위해 도망을 다니고 죽음을 맞이했다.

 

여기서 정말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의 거대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무고하게 희생당하는 수많은 민초들의 고통과 죽음이다. '지슬'에서 토벌대를 피해 산에 숨어든 사람들이 삶은 감자를 놓고 벌이는 갈등과 나눔은 진정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박진감 있게 그려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 왜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생략돼 있음으로 인해 관람자들은 사실의 한 면만을 두드러지게 바라보게 된다.

 

잘잘못의 가르기 시작하면 서로가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더 깊이 주민들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4·3의 진실이 어두운 동굴 속에 갇혀 의문을 증폭시켜 나갈 때 한국현대사는 부당하게 왜곡되고 비참하게 희생당한 주민들은 다시 정치권력의 이용물로 전락했다. '지슬'은 담담하게 사실을 그려내려고 했다는 점에 감동적이다.

 

그러나 역사나 사실의 해석에서는 부분적이다. 투쟁할 힘도 이유도 모르는 사람들의 고통과 희생을 잊지 않고 역사에 기록해야 하는 것은 후대의 의무다. '지슬'은 남북분단으로 인한 정치적 분열과 통합의 과정에서 한국현대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 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방향성을 시사한다.

 

이제는 말과 역사가 잊혀져가고 있다. 4·3과 감저(고구마)와 지슬(감자)이 모두 잊혀져 간다. '지슬'이라는 말에는 잊혀가는 '4·3'과 사라져가는 제주 사투리에 대한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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