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 있는 또 하나의 기념공간. 나치 분서(焚書) 메모리얼이다. 베벨광장에 있는 이 공간 역시 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의해 자행되었던 분서 사건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이다. 1933년 괴벨스의 지시로 유태인 학자들이 쓴 책 2만권을 불태운 현장은 선뜻 눈에 띄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난 기념공간은 광장 바닥에 놓인 작은 투명 유리판이 전부. 그러나 그 곳을 들여다보면 땅 아래 빈 서가들로 가득 찬 거대한 방이 내려다보인다. 그 한쪽에 시인 하이네의 글이 새겨져 있다. ‘책이 불탄 곳에서 결국 사람들이 탈것이다.’
독일 하르부르크에는 반파시즘 기념비가 있다. 그 형식이 매우 특별하다. 땅위로 세워져 있는 기념비가 아니라 땅속으로 들어가 그 흔적만 남아 있는 기념비다. 1986년 하르부르크 시 정부가 파시즘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세운 이 기념비는 사방 1미터에 12미터 높이의 단순한 입방체였지만 비밀은 따로 있었다. 매년 2미터씩 땅속으로 가라앉는 형식으로 설계되어 결국 사라지는 기념비로 설계된 것이었다. 기념비 옆에는 이 비에 이름을 새겨달라는 안내판이 설치됐다. 글을 읽은 시민들과 방문객들은 이름 뿐 아니라 나치시절의 고통과 기억을 써넣었다. 그 기억을 담은 비는 해마다 2미터씩 파묻히면서 흔적만 남긴 채 모습을 감추었다. 안내판에는 이런 글이 남아 있다.
“-중략- 어느 날 이 탑은 완전히 사라져버릴 것이며 파시즘에 저항하는 이 하르부르크 기념탑의 땅은 비워지게 될 것입니다. 불의에 대항하여 일어서야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뿐이라는 뜻입니다.”
시대에 따라 우리가 기억해야할 역사가 축적되어 간다. 전쟁과 국가의 폭력, 예기치 않은 자연재해가 남긴 비극과 상처의 아픔이 더 무거워지고 있다는 증거다. 남겨진 사람들은 그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기념공간을 만든다. 우리의 기념공간은 지금 어떤 모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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