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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사건과 여성혐오

▲ 오민정 전주청년다울마당 위원장

지난 주말, 늦깎이로 군입대를 앞둔 후배를 만났다. 후배는 약속시각을 조금 넘겨 도착했는데 오다가 일이 생기는 바람에 늦었다고 했다. 이유인즉슨,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후배는 정류장에서 함께 내린 여자분이 있었는데 계속 같은 방향으로 가게 되자 뒤를 힐끗힐끗 돌아보기 시작하더니 불안한 걸음걸이를 보이길래 자신이 골목길을 빙 돌아서 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강남역 살인사건’ 때문에 여자들이 불안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자신처럼 체격이 크다는 이유로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은 억울하다고 했다. ‘네가 체격이 좀 크긴 하지만, 그 여자분이 조금 앞서나가긴 했다’며 후배를 다독거려주긴 했지만, 한편으로 나도 그 여자분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난 오늘도 우연히 살아 남았다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가장 유명한 추모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난 오늘도 우연히 살아 남았다’. 이 메시지는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바로 나였을 수도 있다’ 혹은 ‘조심하지 않으면 다음 차례는 내가 될 수 있다’로 해석될 수 있다. 절박하다. 마치 공포영화나 도시괴담의 한 장면이 현실로 다가온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기에 이번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해 여성들이 그저 ‘한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것이다.

 

경찰의 수사 결과 범행을 저지른 남성은 정신질환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가 문제의 원인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흔히 ‘~녀(년)’등의 여성비하와 혐오를 나타내는 표현들이 인터넷과 각종 미디어 매체에서 조롱과 유머로 통용되고 확대 재생산된다. 그러기에 범인의 진술 중 “이전 직장에서 여성들에게 무시를 받아서”라는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바로 사회적 혐오의 대상인 “여성에게조차” 무시당해서라는 뉘앙스마저 풍긴다. 그렇기에 여성혐오의 위험성은 단순히 정신이상자의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여성비하와 혐오의 표현은 이렇게 인터넷과 미디어 매체를 통해 확대재생산되며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상에 스며든다. 특히 인터넷과 미디어 매체의 접근성이 높은 젊은 연령대(10대~ 20대)에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일부에서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혐오의 시선이 일부의 여성에 대한 것이며, 우리사회에서 여성혐오를 하는 것은 소수라고 비판하지만, 실제로 여성혐오적인 발언은 특정인이 아닌 ‘여성’으로 일반화되어 표현되지 “일부 여성”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여성에 대한 비하와 혐오의 표현이 일반화되어 사용될수록 은연중에 여성혐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뿌리깊게 잡혀갈 우려가 있다.

 

'사회적 약자 혐오'로 바라봐야

 

하지만 한편으로 이번 사건이 ‘여성혐오’에 대한 문제라 하더라도 프레임 자체를 ‘여성혐오’에만 국한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에 대한 문제로 프레임을 넓혀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번 사건에서 불거진 여성혐오의 문제는 단순히 남성과 여성간의 문제가 아니다. 다양한 대상에게, 언제든 같은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는 사회적 폭력의 위험한 단면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제도적 보완과 더불어 사회 구성원들 간의 소통과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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