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그 시절 우리의 장래 희망

▲ 송봉금 모던판소리 대표
딱 10년만이었다. 어떻게 하면 줄인 교복 치마를 들키지 않을까를 고민하던…. 수많은 규제와 단단한 울타리가 있던 곳.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다고 매일 말하던 곳. 나의 십대 반항이 무성했던 학교를 찾았다. 같은 재단의 여중, 여고를 나온 터라 단 몇걸음 만으로도 나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었다. 공모에 응시하는데 생활기록부가 필요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온라인으로도 서류를 받을 수 있다고 하던데 나는 좋아진 세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늙은 젊은이’었다.

 

자의든 타의든 꿈 꾸고 살던 때

 

꾸역꾸역 학교를 찾아가 그 시절은 몰랐던 다른 시선의 나를 보았다. 역시나 가장 먼저 시선이 가는 곳은 성적이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에 적극 동의하던 나였다. 그럼에도 의식 한켠엔 꽤나 공부를 잘 하던 학생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기대했고, 확신했다. 그러나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아주 편협한 성적표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잘하는 것만 잘하는 나였다. 좋은 것만 기억하는 나였구나. 어찌 보면 선호하지 않은 과목에 양, 가가 확실한 ‘양가집 처자’였다. 성적에 적잖은 실망을 하였지만 그 시절 이런 성적을 받고도 좋은 것만 기억에 넣어둔 10대의 내가 대견했다.

 

눈에 띄는 것은 ‘장래희망’이었다. 중학교 1학년 시절부터 고3이라는 시간 속에 나의 꿈이 변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그것은 단지 희망이었을 뿐인데, 점점 ‘장래현실’이라도 되는 마냥 선명하고 될 만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열네살 나의 장래희망 칸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판소리 인간문화재’ 아마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최고의 경지가 그 지점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문화재의 제도가 국악 예술의 다양성을 해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의문을 갖는 요즘 의 나와는 다른 시선의 나였다. 그리고 열아홉, 6년의 시간 속에 빈칸은 채워지고 또 채워지며 결국은 ‘국악인’이라고 적혀있었다.

 

육성으로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나 포괄적일 수 있다니. 범위는 커지고, 경계는 넓어졌지만 그래도 한결같은 꿈이었다. 그 시절 친구들은 나에게 말했다. ‘뚜렷한 꿈이 있는 네가 부러워, 나는 커서 뭘 하고 있을까?’ 사실 나는 그저 꿈을 적었을 뿐이었다. 그것은 직업란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것을 하니 꿈이 생겼다. 그것이 나의 희망이자, 그 해 장래희망이었다.

 

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이 생긴 책상에서 공부하던 아이들. 서로가 같은 위치에 있다고 여겨지던 친구들은 모두 저마다의 모습으로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푸르고 또 푸른 靑春의 한 때를 지나고 있기도 하고, 청춘인 줄 모르고 하루를 살아내기 급급한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다. 지금은 꿈꾸며 사는 인생이 무모하고, 허황된 얘기라 비웃음을 사는 나이 같지만, 그 시절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꾸역꾸역 꿈을 꾸고 살았다. 장래희망 빈칸을 채워야 했기 때문에도 그랬다.

 

장래 희망 속 나로 살고 있어 다행

 

그 날, 큰 서류봉투에 학생기록부와 함께 자기소개서라기보다 자기소설에 가까운 종이를 몽땅 밀어 넣고 공모에 응했다. 오랜만에 10년 전 나를 바라보는 일이 환기되는 느낌이었다. 공모의 당락보다 훨씬 갚진 것을 얻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것’. 청춘에 국한 되지 않고 우리는 모두 꿈꾸며 살아간다. 그것은 모른 체 하느냐, 바라보느냐의 관점일 뿐. 10년 전 장래희망 칸 속의 나로 살고 있어 참 다행이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군산새만금 글로벌 K-씨푸드, 전북 수산업 다시 살린다

스포츠일반테니스 ‘샛별’ 전일중 김서현, 2025 ITF 월드주니어테니스대회 4강 진출

오피니언[사설] 진안고원산림치유원, 콘텐츠 차별화 전략을

오피니언[사설] 자치단체 장애인 의무고용 시범 보여라

오피니언활동적 노년(액티브 시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