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일 없이 이곳 과수원집에 와서 꽁짜로 복송도 얻어먹고 물외순이나 집어주고 지낸다
아궁이 재를 퍼서 잿간에 갈 때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잿간 구석에 처박힌 이 빠진 써레에 눈길이 가곤 했다 듬성듬성 시연찮은 요 이빨들 가지고 논바닥을 평평하게 고르긴 골랐었나 뭉텅뭉텅 빠져나간 게 더 많지 않았겠나 이랴 자라! 막써레질로 그래도 이골이 났었겠지
창틀에 뒤엉킨 박 넝쿨들 따로따로 떼어 뒤틀린 서까래에 매어두고 나도 이 빠진 한뎃잠이나 더 자야겠다
△과수원집 잿간에 처박힌 써레는 거친 흙덩이를 어르고 달래느라, 잡초 걷어내느라, 씨앗에게 흙이불 덮어주느라, 평생을 거친 노동에 시달렸을 것이다. 시원찮은 이만 남았을 것이다. 써레를 이골나게 부리던 영태아저씨도 아금박스럽게 힘을 쓰던, 어금니 두 개를 까마귀가 물어간 뒤로는 농사일을 접었다. 오이 곁줄기를 집어내 주고, 박 넝쿨 한 줄기에 서까래 한 가락씩 붙들어 매주고는, 잠에 든 시인은 제 손톱이 푸르게 돋는 줄도 모르고 단잠에 빠지리라. 김제김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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