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지나간 자리에
노란 병아리 주둥이 만큼
싹이 나오더니
뻐꾸기 소리에 깜짝 놀라 한 뼘 크고
까치 소리에 뜀뛰듯 또 한 뼘 자란다
구름 보고 훌쩍 한 뼘 크고
익어간 산 빛이 좋아 또 한 뼘 자란다
밤하늘 별을 세면서 한 뼘
아침 이슬 반짝이자 또 한 뼘
식욕이 왕성한 들짐승도 아닌 것이
기차를 타고 먼 나라 여행이라도 하는 줄 안다
이윽고 호박 넝쿨은 온 언덕을 덮더니
들깨 밭까지 내려와 허리를 칭칭 감으며
이젠 하늘마저 덮을 듯 기세가 등등하다
샛노란 호박꽃 활짝 웃음 짓듯
내 알량한 신앙도 그렇게 자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름 내내 밭두렁을 타고 무성하게 벋어나가는 호박 넝쿨을 보고 있다. 푸른 숨소리가 귓전에 닿아 기세 좋게 벋는 호박 넝쿨을 바라보는 것이 무섭기까지 하다. 햇볕과 바람, 세상 모든 것이 여름 내내 호박 넝쿨을 키운다. 뻐꾸기, 까치, 구름, 산, 별, 그리고 아침 이슬까지 모두 호박 넝쿨을 키우는데 골몰하고 있다. 드디어 넝쿨손이 하늘에 닿았다. 삶의 부기를 다스리는 달짝지근한 성품이 완성되었다.
김제 김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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