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마을학개론 ③ 마을기업] 마을만들기 사업, 시·군 단위로 넓혀 공익경제 구현해야

훈련된 시민, 책임주체로 마을공동체 참여 필요 / 주민역량·조직구성 한계…범위·규모 확장해야 / 진안마을·임실치즈레인보우 주식회사 모델로

▲ ‘농업회사법인 임실치즈레인보우 주식회사’라는 출자 회사를 새로 설립한 임실 치즈마을은 자연마을과 행정리를 넘어 지역으로 사업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한국의 마을만들기 또는 마을공동체사업은 새로,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 그것도 ‘마을기업’에서부터. 또는 마을기업으로부터. 행정, 전문가, 주민 등 이른바 마을만들기 사업의 3주체 가운데, 행정과 전문가 등 상부와 외부의 간섭과 통제는 불가피하지 않다. 오히려 불요불급한 경우와 상황이 적지 않다. 어쩌면 마을공동체의 자조·자율·자치·자생을 위한 유일한 사업주체로서 역할과 책무는 행정이나 전문가의 지원과 조력이 없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때 ‘주민’이 행정과 전문가의 몫까지 온전히 감당해 내부화하려면 주민들 스스로 함께 ‘마을기업’을 세우고 꾸리는 게 상책이다. 여기서 마을기업이란 행안부의 그 좁은 의미의 마을기업만 의미하지 않는다. ‘마을공동체사업의 역량있는 책임주체’라는 넓고 근본적인 개념과 목적을 실천하는 마을기업 또는 일반적인 사회적경제조직을 뜻한다.

 

△ 의사결정구조·책임소재 명확해야

 

지난 십수년 동안 전국 수천 곳의 농촌마을에, 천문적인 농촌지역개발 사업비가 투입되었다. 하지만 성과는 애초의 정책목적과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문제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겠으나 ‘마을기업’의 부재는 명백한 주요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즉, 애초 마을공동체사업의 의사결정구조와 책임소재 자체가 불명확한 상태에서 사업에 뛰어드는 게 문제의 발단인 것이다. 현재의 마을만들기 사업판은 사업의 결정권과 예산권을 틀어쥔 행정의 지침대로, 전문가의 역할과 책임을 떠맡은 용역업자의 훈수대로, 위원장 등 일부 소수의 리더가 사업의 책임과 권한을 도맡는 형식이다. 그러나 위원장이 주도하는 사업추진(운영)위원회는 사업을 책임지고 싶어도 책임질 수 없는 처지다. 사업실무 집행조직이 아니라 사실상 요식적 회의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을공동체사업을 벌이기 전에 법적, 도의적 책임소재부터 명확히 설정하고 시작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유명무실한 위원회가 아니라 ‘마을기업’이 사업의 실행조직, 책임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마을기업이 미처 준비되지 않은 마을, 준비할 생각이나 의지가 부족한 마을에는 사업을 지원하면 안 된다. 자의든 타의든 책임을 질 준비도, 책임을 질 의사도 없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런 합리적인 원칙부터 세워두면, 이제는 아무 마을이나 마을공동체사업에 함부로 뛰어드는 만용과 욕심을 결코 부리지 못할 것이다.

 

‘잘 학습되고 훈련된 마을시민’들이 모여 ‘잘 조직된 책임주체로서 마을기업’을 만들고 마을공동체사업에 뛰어든다면 당장 사업의 책임주체부터 분명해진다. 이장, 개발위원장, 부녀회장, 노인회장, 새마을지도자 등을 비롯한 마을주민, 그리고 마을시민들은 마을기업에 출자와 참여를 결심하는 순간, “마을공동체사업을 내가 책임지겠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사업이 표류하거나 실패할 불안요소와 위험요인이 원천적으로 제거되는 셈이다.

 

△마을공동체·사회적경제 융합 고리

 

마을기업의 효용은 단지 마을공동체사업의 책임주체로만 그치지 않는다. ‘마을기업’이 사업의 중심을 잡으면 마을공동체사업과 사회적 경제사업이 서로 연계하고 융합되는 효과도 덩달아 발생한다. 무엇보다 일반적 경제가 부실하거나 부재한 농촌지역에서 사회적 경제는 마을·지역공동체 재생과 활성화를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나 방법론으로 기능할 수 있다. 사회적 경제를 기반이자 가치로 삼아야 마을공동체사업의 명분도 강화되고 실질적인 시너지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 최소한 일자리 창출이나 소득 제고라는 정책적 당면 목표의 근거없는 강박과 착오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가령 마을·지역사회 공동체사업의 사전 준비와 입문단계에서 마을기업으로서 사회적경제조직(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횔기업 등)은 마을공동체사업의 학습과 훈련을 위한 학교로서, 실습장으로서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이후 마을공동체사업이 본격 추진되는 과정에서는 사업의 관리·경영 책임 주체로서 핵심적 기능과 책무를 감당할 수 있다.

 

최근 마을기업 등 사회적경제인들은 새로 제정될 ‘사회적경제기본법안’에 기대를 걸고 있다. 각 부처마다 경쟁적으로 양산, 도처에 산재한 이른바 ‘사회적 경제 조직’들을 한곳으로 통합해 효과적으로 관리하려는 취지의 법률이다. 차제에 ‘마을기업’을 보다 체계적으로,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관련 정책과 제도의 외형과 내실을 정확하게 재정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단지 일자리 창출과 소득 제고라는 단기적, 행정적 외형목표 추구에서 벗어나, 오히려 마을공동체 사업의 책임경영주체라는 지원 역할을 더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목표이자 가치로 삼을 필요가 있다. 마을공동체사업을 잘 관리하고 경영하는 도구이자 수단의 소임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다. 아예 이름도 마을기업이 아니라 ‘마을공동체기업’ 또는 ‘마을공동체형 사회적기업’이라고 부르면 의미와 목표지점이 더 명확해지지 않겠는가.

 

어차피 마을기업 등의 사회적 경제란 그 자체가 목적이나 완성이 될 수 없다. 차라리 지속발전가능한 마을·지역공동체 생태계의 건설이라는 목적을 실현하는 유력한 수단이나 도구에 가깝다고 해야한다. 따라서 사회적 경제라는 수단과 마을·지역공동체의 목적이 서로 돌고 돌아, 결국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선순환의 생태계구조부터 재설계해야 한다. 결국, 마을기업이라는 이름, 사회적경제라는 법안이 가장 중요한 건 아니다.

 

△마을기업 중심 ‘지자체 협동경영체’모델로

 

그런데 기존에 마을이나 권역단위의 범위와 규모로 이루어진 마을공동체사업이나 농촌지역개발사업은 근본적 한계와 구조적 취약점을 안고 있다. 바로 주민 역량의 한계, 적정 사업조직 구성 역부족, 규모의 경제 부적합 등의 실패 요인이 내재, 상존하는 것이다. 일단 마을, 권역 단위로는 적재적소에 배치할만한 기본적인 업무인력이나 역량 있는 경영자, 기획자, 관리자 조차 구하기 쉽지 않다. 마을시민과 마을기업을 준비할 수 없는데 ‘마을만들기 ‘ 사업을 제대로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사업의 범위와 규모를 최소한 ‘지자체 단위’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지자체 협동경영체’라는 ‘적정한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마을기업’을 마을공동체사업의 센터와 허브 역할로서 중심에 놓으면 어떤가. 이는 기초지자체 단위로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서로를 위해, 그리고 마을과 지역공동체를 위해 설립한 공동사업체의 모습이다. 일종의 ‘지역단위 네트워크형, 사회적 경제조직 방식의 공동사업체’를 뜻한다.

 

전북 진안군의 진안마을주식회사는 이른바 ‘지자체형 협동경영체’의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로컬푸드 사업을 목적으로 진안군 21개 마을과 11개 단체, 농업인 등이 공동출자, 2011년 농업회사법인으로 설립한 ‘진안군민이 주인인 주식회사’다. 기존 마을공동체사업의 성과를 종횡으로 묶고 엮은 네트워크로 진화한 셈이다. 마을단위 사업의 선도 사례지인 임실 치즈마을도 자연마을과 행정리를 넘어 지역으로 사업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2015년 치즈마을의 마을운영위원회가 대주주로 참여하는 ‘농업회사법인 임실치즈레인보우 주식회사’라는 출자 회사를 새로 설립한 것이다.

 

진안마을주식회사나 임실치즈레인보우주식회사나 모두 일개 마을이나 기업이 목표로 하는 사익이나 욕심을 내려놓은듯 하다. 대신 앞으로는 지자체와 군민들과 더불어 공존하고 공생하겠다는 공익의 가치를 확고히 다졌다. 기존의 마을단위 사업이 안고 있던 사업성의 한계를 뛰어넘어,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규모와 범위의 공익경제’를 구현하려는 현실인식과 목표의식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 정기석 마을연구소 소장

가령 마을공동체 단위에서는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고 가공식품을 기획하는 고민까지만 하면된다. 부가가치를 높여 가공하고 홍보하고 마케팅하는 나머지 어려운 일은 지자체 협동경영체에 떠맡기면 된다. 그렇게 믿을만한 ‘마케팅 에이젼시’가 지자체마다 버티고 있다면 사람도, 조직도 부족한 마을에서도 안심하고 마을공동체사업을 벌일 의욕과 용기가 생길 것이다. 마을공동체끼리 서로 묶이고 엮이는, 서로 채워주고 나누는 이상적인 네트워크형 지역사회 발전 모델로 진화할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사건·사고경찰, 무주 양수발전소 드론 촬영하던 30대 조사⋯"대공혐의점 없어"

정읍이상길 정읍시의원, 정읍시장 선거 출마 선언

교육일반전북교육청 내년 4조 4437억원 편성…전년 대비 2.8% 감소

사회일반백창민 전 김제시의원 “김제시장 금품 수수 의혹 공익제보자, 1%도 관련 없어”

남원지리산 단풍, 이번 주 ‘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