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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 70주년을 맞이하며

그 희생을 돌아보며 평화와 인권 개념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 최진영 독립영화감독

제주도가 ‘4·3희생자추념일 지방공휴일 지정에 관한 조례안’을 공포했다. 지난 1월에는 전국 17개 광역시도의회가 제주 4·3 사건 특별법 조속 개정 촉구 건의를 상정,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제주 4·3 사건이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닌 범국가적 차원에서 논의 될 일임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2016년 12월부터 2017년 3월까지 나는 매달 제주도에 가서 다크투어리즘을 했다. 4·3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몇 달을 그렇게 돌아다녀보니 제주도라는 섬 자체가 그냥 4·3 이었다. 곳곳이 학살의 현장이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평생동안 짊어지며 살고 있었다. 빨갛게 핀 동백은 섬을 더 아름답게 표현하는 꽃이지만 그건 섬의 아름다움을 좇는 이방인인 우리의 눈에 그렇게 보이는 거고, 상처를 갖고 살아야했던 제주도민들에겐 내 가족, 내 이웃이 흘리고 간 피였다.

함덕을 거치면 북촌리라는 작은 해변 마을이 있다. 북촌리는 국제법상 전쟁중일지라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제노사이드(집단학살)의 대표적인 사례를 간직하고 있는 지역이다. 1949년 1월 17일 남녀노소 300여명이 한날 한시에 희생됐다. 또 ‘아이고 사건’, 즉 1954년 초등학교 교정에서 주민들이 모여 몇 년 전 소각됐던 자신의 마을과 희생된 사람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묵념을 하면서 ‘아이고 아이고’ 하며 대성통곡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에 ‘다시는 집단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각서를 쓰고나서야 풀려났다. 국가이성이 붕괴되고 야만이 통치하던 시절이였다. 그리고 연좌제에 묶여 남은 가족들과 생존자들은 신산한 삶을 살아가야만 했다.

그러고 보며 제주는 오래전부터 중앙정부의 가혹한 수탈이 반복됐던 곳이었다. 고려시대엔 몽골의 직접지배를 받았고 전라도와 경상도의 연안지역에 정착하여 사는 ‘두무악’이라고 불리던 제주도민은 17세기까지 일반 양인과 동등한 지위를 누리지도 못했다. 일제시대에는 태평양전쟁에 많은 도민들이 동원되었고, 일본군 7만 5000명이 진주하여 군사기시설을 구축했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끔찍한 4·3을 겪어야 했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연좌제의 족쇄까지 견뎌야했다. 수탈과 착취와 참상이 반복됐던 그 질곡한 역사를 겪어야 했던 제주도민들에게 미안함과 동시에 어떤 존경심이 피어오른다. 그들의 희생을 돌아보며 평화와 인권의 개념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본다.

사실 4·3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고민을 더 했어야 했고 잘 만들었어야 했다. 아직도 희생자들의 유족들과 피해자들이 생존하고, 유해 발굴이 되지 않은 곳도 많은데 너무 쉽게 이 사건을 접근하지 않았나 싶다. 누를 끼쳐 죄스러울 따름이고 영화라는 매체에서 재연되는 비극적 역사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야할지 고민을 해본다. 겨울 이불을 빨고 널어놓으면서 봄 햇발의 기운을 느낀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4·3 사건이 그렇고 제주도로 향하다 침몰한 세월호가 그렇다. 그렇지만 마냥 슬퍼할 수는 없다.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기억해야 한다. 그게 우리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극복이 아닐까 한다. 다시 한번 제주 4·3사건의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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