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거부안(生居扶安)의 역설
변산반도가 위치한 부안지역은 지리적으로 바다와 산, 그리고 평야가 어우러진 천혜의 공간이었다. 즉, 전라북도 남서부에 위치한 부안군은 호남평야의 남서부, 변산반도, 서해상의 섬이라는 세가지 요소로 특징지어 진다. 이 같은 평야, 산, 바다의 세 가지 요소가 복합되어 관련 산물이 풍족해 땅과 바다가 기름져 인심이 너그럽고 생활이 윤택하니, 고려의 문인 이규보는 목재가 풍부해 부안을 일컬어 나라의 창고(천부)라 하여 찬양하였다.
또한 부안은 영조시절 암행어사 박문수로부터 “어염시초(물고기와 소금과 땔나무)가 풍부하여 부모 봉양하기 좋으니 ‘생거부안(生居扶安)’이로다”라는 말로 살기 좋은 곳, 부안이라는 호칭을 들어왔다. 즉, 부안은 평야가 넓을 뿐만 아니라 염전이 발달하여 소금을 통한 고수익을 얻었고 바다가 가까워 풍부한 수산자원도 누릴 수 있었던 풍요로운 고장이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러한 천혜의 공간은 실상은 변산의 도적떼와 연결되어 공존하였던 고장이란 특성을 보여준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특히 영조시기 ‘변산적’이라 하여 많은 도적이 변산속에 은거하여 나라의 골칫거리 지역이었다. 이 같이 부안의 풍요로움을 노리는 변산지역의 도적떼는 조선사회의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조선사회는 후기로 갈수록 세금수취의 문란과 신분제 동요로 백성들이 유민화되고 결국 도적으로 전락하였다. 이들은 삶의 한계에 다다라 사회에 수용되지 못하고 도적으로 내몰려 피난처인 변산의 깊은 산속으로 모여들었고 백성이 도적으로 몰락하는 심각한 상황에 이르자 이러한 문제해결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조선 지식인들의 노력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조선사회 신분제문제와 대안을 제시한 홍길동전의 무대, 변산
 
    가장 먼저 조선 양반사회가 갖는 문제점을 토로한 존재가 시대의 기린아 허균이었다. 허균은 부안 변산지역과 독특한 인연을 맺었는 데 공주목사 재임시 당시 부안 최고의 기생 이매창(계생)과 정분이 깊어 공주지역을 벗어나 그 일로 파직되었다고 한다. 이 때 부안에 온 허균이 변산 우반동 선계안골 즉, 현재의 선계폭포 근처의 정사암에 머물며 쓴 최초의 한글소설이 ‘홍길동전’이다. 홍길동전의 내용은 조선 양반사회의 희생자인 서얼출신 홍길동을 등장시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고 형을 형이라 말할 수 없었던 홍길동이 도둑으로 전락한 백성들을 모아 활빈당을 결성하고 어려운 백상들을 돕다가 조선사회에는 정착할 수 없어 결국 이들을 이끌고 새로운 삶의 터전 율도국으로 떠난다는 내용이다.
 
    결국 홍길동전은 허균이 조선 양반 신분제 사회의 모순과 문제점 해결방식을 ‘국가가 백성을 포용치 못하면 결국 백성은 국가를 떠난다는 엄중한 경고를 제시한 파격적인 소설이다. 또한 주목되는 것은 홍길동전의 집필지가 변산이며 소설에 등장하는 활빈당의 실체가 변산에 웅거한 도적들을 모델로 하였을 것이란 점에서 부안지역이 새로운 변혁을 꿈꾸는 터전이었음을 보여준다.
△변산에서 조선의 빈부격차 해결 방안을 제기한 박지원
 
    조선 영·정조시대의 대표적 실학자인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실린 ‘허생전’은 변산반도를 무대로 빈부격차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가난한 선비 허생은 최고의 갑부 변부자에게 돈을 빌려 양반들의 제사상에 꼭 필요한 과일을 매점매석하여 큰돈을 벌었다. 또 양반의 상징인 갓 만드는 말총을 매점하여 엄청난 돈을 벌었다. 이 때 주위에서 쌀을 매점하여 더 큰 돈을 벌자고 하자 정색하며 과일과 말총은 양반들이 귀신에 제사지내고 허울 좋은 신분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이 모든 것이 양반들에게만 필요한 것이고 일반 백성들에게는 없어도 되는 것이기에 양반의 돈을 벌어도 되었지만 쌀은 모든 백성이 먹어야 되는 것으로 이것을 매점하면 절대 안된다고 호통을 쳤다. 그리고 허생은 벌은 돈을 가지고 당시 가장 많은 도적떼가 모여있는 변산으로 가 도적들에게 돈을 주어 가정을 이루고 소를 사서 모이게 해 새로운 이상향의 땅을 찾아 떠나는 내용이 허생전의 내용이었다. 이는 부자의 여유돈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호구책을 마련해 함께 살자는 박지원의 대안이었으며 그 강상의 현장을 변산지역으로 구성하였던 것이다.
△부안에서 조선 개혁의 실체를 만든 반계 유형원
허균과 박지원 사이에 살았던 조선실학의 시조 유형원은 조선 사회가 왜·호란이후 피폐화된 상황을 개혁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 지식인이었다. 그는 집안의 사패지인 부안 우반동지역에 우거하며 조선 토지제도와 신분 문제 등 전반에 걸친 개혁 정책을 제시하였다.
개혁의 핵심은 몰락한 농민을 살리기 위해 신분제적 균전제를 주장하였다. 이는 토지를 국가가 몰수해 신분에 따라 나눠주어 먹고 살 수 있는 방편을 마련해주자는 것이었다. 또한 양반신분제 사회의 문제인 노비종모법과 서얼제 철폐를 주장하였다. 이같은 파격적인 주장은 부안지역에 살면서 조선사회의 모순을 목도한 유형원이 대안을 제시한 것으로 개혁안이 수록된 ‘반계수록’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70년이 지난 뒤에야 영조에 의해 수용, 유포되어 18세기 조선의 실학사상으로 나타났다.
이 같이 부안 변산지역은 조선사회의 풍요로운 터전이자 한계에 몰린 존재들이 모이는 곳이었고 결국 이들을 포용하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변혁과 대안의 공간이었다. 이 같은 상황은 이들 지역에 존재한 사찰의 분위기와도 연결되었다. 즉, 변산의 내소사와 고창의 선운사 그리고 장성 백양사로 연결되는 공간은 이른바 땡초라는 중들의 거점으로도 유명하였다. 일반적으로 땡초라는 표현은 파계한 승려같은 부정적인 존재를 지칭하는 표현이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못된 부자들을 혼내주고 불쌍한 백성을 도왔던 존재로도 나타나고 있다. 이는 조선사회에서 도적으로 전락되었던 백성 가운데 종교적으로 개심하였지만 과거 의적을 자임하던 기질이 남았던 존재들이 승려로서 의적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였던 존재로 활동하였던 사실이 땡초라는 못된 양반들에게는 불한당같은 그러나 일반 백성에게는 도움을 주는 존재로 이 지역에서 나타났던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역사적으로 되짚어보면 변산지역은 과거 백제부흥군의 마지막 거점인 주류성이 있었던 곳으로 이러한 백제의 부흥을 꿈꾸며 새로운 대안의 삶과 역사를 꾸려갔던 지역의 전통이 계승된 것으로도 파악된다.
변산반도지역은 현재 천혜의 공간으로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새만금의 배후공간으로 새로운 가능성이 넘치는 땅이다. 과거의 아픔과 좌절을 새로운 희망과 대안으로 바꾸길 꿈꾸었던 지역의 역사를 바탕으로 이제 ‘같이 살기’를 이루는 새로운 가치와 희망의 공간으로 바꾸어야 할 때가 되었다. 특히 2023세계잼버리대회의 개최지로서 부안은 새로운 미래비전의 터전으로 자리잡고 있다. 잼버리는 ‘즐거운 놀이’, ‘유쾌한 잔치’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새로운 대동사회를 꿈꾸었던 허균, 유형원, 박지원 등 조선 지식인의 꿈이 세계 각지에서 모인 젊은 청년들의 잔치를 통해 부각되길 바란다. /조법종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