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재산가 등 거주자의 해외 이민 또는 해외법인 설립 사례가 늘고 있다. 삶의 질, 자산관리 또는 글로벌 비즈니스 확대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조세부담을 줄이기 위한 전략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싱가포르·말레이지아 등 상속세가 없는 국가로 이민을 떠나고, 홍콩·BVI 등 저세율 국가에 법인을 설립해 사업 거점을 해외에 둔 것처럼 꾸미거나 명의신탁을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문제는 이들의 사업 의사결정이나 생활 중심지가 실질적으로 한국이라면 무거운 세금과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모펀드 A사는 홍콩에 지주회사를 두고 국내 주식에 투자하여 큰 차익을 거두었지만, 국세청은 투자 의사결정 및 자산관리 활동이 실제 한국에 거주하는 경영진에 의해 수행되었다는 이유로 실질적 관리장소를 국내로 판단해 법인세를 추징했다. 또한, 대재산가 B씨는 싱가포르로 이민을 갔지만, 실제 B씨와 가족들은 연중 상당한 기간을 한국에 머물며 사업체의 주요 의사결정을 직접 챙기고 있다. 이 경우 향후 한국 거주자로 판정되어 무거운 세부담을 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법률상 국적이나 주소 이전만으로 거주지 변경이 인정되는 시대는 지났다. 세법은 “형식이 아니라 실질”을 본다. 외국에 등록된 법인이라도 실질적 관리장소가 한국에 있으면 내국법인으로 간주되고, 이민을 갔더라도 생활근거, 가족, 자산, 사업 의사결정이 국내에 존속한다면 한국 거주자로 보게 된다.
거주지 국외 이전을 통한 절세전략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첫째, 형식적 해외 이주는 당장은 세부담이 가볍지만, 추후 세무조사에서 소득세·법인세·상속세가 한꺼번에 부과될 위험이 크다. 이제는 조세회피처 국가에 설립된 법인, 신탁 및 금융계좌 정보까지도 과세당국 간 정보교환의 대상이 된다. 둘째, 법인과 개인 모두 국제조세 기준이 강화되었다. 우리나라 등 대다수 국가는 실질 기준에 따라 과세권을 배분하는 OECD 권고안을 이미 국내법에 반영했다. 단순히 해외에 주소를 두거나 페이퍼컴퍼니를 세우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한 절세수단이 아니다. 셋째, 형식적 해외 이전은 내부 지배구조나 자금흐름의 투명성을 떨어뜨려 회사 가치에도 부정적이다. 해외법인이 국내에서 사실상 운영되는 구조는 회계투명성, 이전가격 리스크 등 여러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해야 할까? 첫째, 해외 이주나 해외법인 설립이 필요하다면, 생활·경영의 중심을 해외로 실질적으로 이전해야 한다. 체류기간, 가족거주, 사업 의사결정구조의 재편이 모두 함께 움직여야 한다. 둘째, 기업의 경우 해외법인에 독립적 의사결정구조, 직원과 사무실, 회의·계약체결 등 실질 활동이 존재해야 내국법인 간주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셋째, 개인·기업 모두 국제조세, 상속세, 이전가격 규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사전 세무진단 서비스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민, 지배구조 변경, 해외 자산이전은 전체 구조 속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거주지의 국외 이전은 선택이다. 그러나 세법은 그 선택의 실질을 평가한다. 형식만 해외로 옯겨 놓는 조세회피 시도는 결국 더 큰 세금과 위험으로 돌아온다. 해외 이전이 필요하다면, 그만큼 정직하고 투명한 구조 설계가 필요하다. 법과 현실 모두에서 정당한 글로벌 세무전략을 세워야 할 때다.
김명준(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前 서울지방국세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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