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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과 망치의 변주곡 - 이연희

며칠 전 운동 삼아 삼천천 근처를 걸었다. 걷다가 '꿈꾸는 목공방' 이라는 가게 안을 들여다보며 기웃거렸다. 원목으로 만든 침대며 책상, 장신구의 선반 등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왕 내친 김에 문을 밀고 들어갔다.

 

집 주소가 바뀐 지 두 해째이나 거실 벽 한 면의 허전한 구석이 그대로이다. 그 자리에 무언가를 장식하고 싶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어 왔던 터라 찬찬히 둘러볼 요량이었다. 주인 없는 가게에 인기척이 있자 삼십대로 보이는 남자가 작업실에서 나왔다. 동글납작한 얼굴에 잔뜩 먼지가 묻어있는 감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뽀얀 나무먼지로 덮인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해서 흰머리처럼 보였다. 그는 아마 톱으로 나무를 자르거나 대패로 깎아내는 일을 하다 나온 모양이었다.

 

맘에 드는 물건을 주문해 놓고 밖으로 나와 조금 더 걷기로 했다. 한참을 걸었는데도 이상하게 목공방 아저씨의 톱밥먼지에 절은 수더분한 얼굴하며 유순한 눈매가 뒷전에 머물더니 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아버지에게 나무며 톱, 망치, 못 등은 평생 친구이자 밥줄이었다. 중학교 때였던가. 한솥밥을 먹던 직공이 그 밥줄을 통째로 집어들고 줄행랑을 쳤다. 그 때 우리 집 형편이 곤궁해서 아버지의 상심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새 연장을 마련할 때마다 아버지 얼굴에 주름이 하나씩 더 늘었다.

 

이삼십 평 남짓한 공간은 잘라 맞추고 두드리는 일로 조용할 틈이 없었다. 나무먼지와 나무냄새로 인해 아버지의 모습은 안개 속에 서 있는 느티나무 같았다. 반세기동안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허리 펼 날이 없었다. 못과 망치, 날카로운 톱과 대패날은 아버지의 손에 늘 피멍과 함께 깊고 얕은 상처를 남겼다. 톱날의 우렁찬 소리가 공장 안에 그들먹해질 무렵이면 거북이 등껍질 같은 아버지의 손에서는 씩씩하고 경쾌한 못과 망치의 변주곡이 흘러 나왔다. 못과 망치의 절묘한 어울림은 어깨며 팔뚝 근육을 불끈불끈 솟구치게 했다. 굵고 가는 나무들은 자르고 맞추기, 문지르며 두드리고 깎아내기 등의 과정을 거쳐 아름다운 자개농이나 찬장, 고풍스러운 무늬가 있는 문으로 완성되었다. 그것들로 인해 우리는 허기를 면했으며 가족들의 배가 부를수록 아버지의 허리는 휘고 또 휘었다.

 

일상에서 아주 가끔 못을 사용해야 할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버지를 연상하면서 자신 있게 망치를 휘둘러대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못이 휘어지거나 비스듬히 박히고 더러는 톡 튀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잘못하여 못이 뽑힌 자리에는 반드시 흔적이 남아 눈엣가시가 되었다. 누군들 상처 없는 생이 있을까! 그래서인지 아버지도 가끔은 신세 한탄을 하셨다. 그러나 오랜 세월 아버지는 기꺼이 못이 되었고, 그 못은 가족에게 삶의 원동력이었다. 그것이 삐그덕거리는 의자에, 흔들리는 기둥에 중심이 되었다면 아버지는 나에게도 영원한 못이었다. 내 몸이 헐렁해지거나 느슨해져 비틀거릴 때마다 텅텅 못질에 녹슬지 않도록 윤활유까지 칠해주셨으니 말이다.

 

젊은 날 소음에 시달린 탓으로 귀가 어둡고 다리가 불편해 조금만 걸어도 비척거리는 아버지를 보면서 이제는 옛이야기가 되어버린 젊은 날의 아버지를 그려본다. 다시 들을 수 없는 못과 망치의 힘찬 변주곡이 무한정 그리운 날, 저 산 너머 언덕 아래에 살고 계시는 아버지를 소리쳐 불러본다. 아버지의 화답일까? 햇빛 한 줄기가 시린 어깨에 내려앉는다. 참 따숩다.

 

 

* 수필가 이연희씨는 1993년 전주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수필집'풀꽃들과 만나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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