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흰지팡이 여행

▲ 노서운

흰 지팡이가 눈에 들어온다. 시각장애가 있는 내 아들 이삭이의 것이다. 아이는 학교에 갈 때 흰 지팡이를 가방에 꼭 넣어 가지고 다닌다. 나는 가방에 든 흰 지팡이를 볼 때마다 늘 마음이 쓰인다. 언젠가는 저 흰 지팡이를 아이의 손에 들게 하여 세상 밖으로 내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삭이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던 사고 전, 여섯 해에 대한 기억이 가끔 가물거린다. 그때도 첫아이였던 아이를 혼자 떼어놓는 일은 초보엄마인 내게 참으로 힘든 과제였다.

 

아이가 여섯 살 때 유치원에서 여름 캠프 신청서를 보내왔다. 난생 처음 1박2일 동안 아이와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게 불안하여 신청서에 서명을 하지 못하고 며칠을 망설였다. 캠프 당일 날, 버스에 올라 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는 아이의 동그란 두 눈동자와 마주쳤다. 불안해하는 내 마음을 혹여 눈치라도 챈 것일까? 하얀 이를 드러내 보이며 생긋 웃더니 걱정 말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다음날 캠프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마중하러 나갔다. 버스가 도착하자 개선장군처럼 내리는 아이들 틈에 이삭이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이의 맑은 눈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이렇게 무사히 돌아와 주어 정말 고마워. 이제 너를 믿을게.”

 

그날 이후로 늘 잡고 다니던 아이의 손을 조금씩 놓기로 작정했다. 그랬다. 비로소 나는 아이가 세상과 더 가까워지고 홀로 설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엄마가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해 겨울, 교통사고로 시각을 잃은 아이는 더 이상 세상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일반학교에 갈 수가 없어 익산에 있는 전북 맹아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아이의 가방 속에서 흰 지팡이를 처음 발견하던 날, 나는 가슴이 탁 막히고 먹먹한 마음이 들었다. 전래동화 ‘효녀심청’에서 지팡이를 들고 구부정하게 걷는 심청이 아버지의 측은한 모습마저 떠올라 우울하기만 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 걸까? 학교행사에 갔다가 우연히 교감 선생님을 만나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보행훈련을 하는 이삭이의 모습을 찍은 핸드폰 동영상을 내게 보여 주었다. 익숙한 학교공간에서만 지팡이로 보행을 하고 다닐 거라 생각했던 내 생각과 달리 아이는 위험한 차가 쌩쌩 다니는 길옆을 걷고 있었다. 그것도 오로지 지팡이 하나만을 의지한 채…. 하지만 아이는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려는 듯 차분하고 진지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아이는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조용히 익혀가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엄마인 내 마음이 아이를 밖으로 내보내지 못할 뿐이었다.

 

그런 아이를 보며 흰 지팡이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하게 되었다. 지체장애인이나 노인의 보행에 쓰이고 있는 지팡이와 다르게 시각장애인만이 흰색으로 사용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이 지팡이를 들고 걸으면 시각장애인이라는 걸 알고 비장애인들도 그들을 돕거나 배려할 수 있는 것이다. 흰 지팡이를 든 내 아이를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말아야겠다. 내 아이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그들에게 흰 지팡이의 의미를 알려야겠다. 내가 언제까지나 지팡이를 든 아이의 뒤를 계속 따라 다닐 순 없기에….

 

과연 엄마의 손을 놓고 길을 떠나는 내 아이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다보며 흰 지팡이 여행을 시작한 아이를 위해 정성과 사랑을 담아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

 

* 수필가 노서운씨는 군산 이삭 어린이집 원장, 군산대 평생교육원 전담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수필집 〈상처와 함께 자라는 나무〉가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국회·정당국회 산중위 전북정치권 공백…AI·에너지 현안 출혈 불가피

국회·정당국회, 내년도 예산안 종합정책질의 시작

사람들데이터로 도시를 짓다…전북 건축문화상 학생부문 대상 전주대 박인호 학생

정치일반李대통령, 울산 매몰사고 “인명구조에 가용자원 총동원하라”

정치일반전북, 1조 원대 ‘피지컬 AI’ 상용화 사업 전 실증사업 마무리 총력